[이유미의 나무야 나무야]산수국, 과시와 진정성 사이
[경향신문]
어떤 나무 혹은 풀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간혹 받는다. 많은 식물과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으로서 한 식물만을 딱 골라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계절과 장소 혹은 상황에 따라 바뀌곤 하는데 여름이 한창인 이즈음엔 산수국이 자주 떠오른다. 여름은 산수국 꽃이 아름다운 계절일뿐더러, 남보랏빛의 산수국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나는 맑은 여름 숲은 생각만으로도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산수국 꽃을 들여다보면 두 종류의 꽃들이 원반처럼 둥글게 모여 피어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자리에는 꽃잎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누구나 꽃으로 인식하고 있는 꽃들이 있고, 가운데에는 수술은 많지만 꽃잎이 선명하지 않아 한송이 한송이 꽃으로 느끼지 못하는 수 십송이의 꽃들이 함께 모여 있다.
산수국은 왜 두 종류의 꽃들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먼저 사람이 아닌 식물에게 있어서 꽃의 존재를 생각해야 하는데, 꽃은 씨앗을 잘 맺어 후손을 번성시키기 위한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 과정을 도와줄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인데 꽃잎이 주로 그 기능을 감당하며 수술과 암술 사이에서 꽃가루받이가 일어나 씨방이 성숙한다. 산수국은 효율을 생각하여 분업을 실행하였는데, 가장자리의 곤충을 유인하는 역할을 하는 무성화(無性花)와 그 꽃들을 보고 찾아와 실제로 수분이 일어나는 유성화(有性花)로 구분한 것이다. 이런 모습들은 식물학적으로는 유연관계가 먼 백당나무나 해바라기 같은 국화과 식물에서도 함께 나타난다.
확대하고 과장하고 위장하며 결실하지 못하는 무성화는 진정한 꽃인가! 요즈음 많은 이들이 사랑하여 정원에 심고 있는 수국은 알고 보면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결실하는 유성화를 무성화로 만들어버린, 그래서 씨앗을 맺지 못하는 모습이다. 알고 보면 식물로서는 참으로 안타깝지만 우리에게는 더없이 아름답고 풍성한 꽃들이지 않은가! 산수국에 있어서 보여주기 위해 과시하는 꽃들과 치열하게 씨앗을 영글게 해가는 꽃들은 사실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보완하여 산수국을 이어가는 하나의 존재가 아닐까 싶다.
영국 출장을 다녀왔다. 콘월주에 있는 이든 프로젝트(Eden Project) 식물원과 업무협약을 위해서였다. 고령토 폐광지에 조성된 이 식물원은 열대림 바이옴과 지중해식물 바이옴 등 세계 최대 온실을 보유한 식물원으로, 못쓰게 되어 버린 황폐지를 복원하여 완벽한 식물의 낙원을 만든 대표적이고 성공적인 영국의 밀레니엄 프로젝트이다. 다채로운 전시를 보여주고 풍성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한 해 약 1조50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지역에 안겨주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인이 찾는 식물원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그 기본에 쌓여진 에너지제로, 자원재생, 식물과 인간 그리고 자원 사이의 상생관계 등 철저하게 지속가능한 지구의 환경을 미래로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 정신, 그 진정성이 실천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이 세계적인 기관에서 먼저 우리 국립수목원에 업무협약을 제의한 계기도 진정성이란 면에서 일맥상통한다. 지난해 양구 펀치볼에 조성한 국립수목원 비무장지대(DMZ) 자생식물원의 개원식에 참석한 이든 프로젝트의 식물부장은 DMZ와 북방계 식물의 보전과 생태복원을 위해, 식물을 외부에서 들여오지 않고 그 지역에서 직접 씨앗부터 채종하여 7년간이나 식물을 키워 심은 그 진정성에 감동했다. 영국에서 이든 프로젝트에 한국 정원을 만들려 한 것도, 벌거숭이 산을 울창한 숲으로 만든 기적과 노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보여주는 정원 형식이 아니라 식물이 생태적으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생태정원을 일본 정원도 중국 정원도 아닌 한국 정원의 모습으로 보여주고자 하니 우리로써는 참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는 보기에만 요란했다가 사라져가는 과시성의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 때문에 진정성 있게 해나가던 일들이 피해를 입고 치이는 일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면 진정성 있는 일들을 지키기 위해 정책이나 사업은 물론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들마저도 홍보에 많은 노력이 강요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산수국이 무성화와 유성화를 조화롭게 한 꽃차례에 담아 효율을 높이듯, 이든 프로젝트가 흥미진진한 볼거리 속에 미래 세상을 위한 철학을 일관성 있게 담아가듯, 우리는 과시와 진정성의 간극을 조화롭게 엮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싶다. 하지만 결국은 제대로 해나가는 일이 최종의 경쟁력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유미 |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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