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없는 신라·고려불교 문헌 한자리에 모았다
원효·의상 스님 저술과 초상화 등 77종 전시.. 상당수는 첫 공개
현재 전해지는 신라불교 문헌 90%가 일본 사찰·박물관 소장
원효의 '기신론별기(起信論別記)'와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 의상의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 원측의 '무량의경소(無量義經疏)', 의천의 '원종문류(圓宗文類)'….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한국불교 문헌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회가 일본 요코하마시 가나자와문고에서 이달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일본 중세 문헌을 소장한 대표적 박물관인 가나자와문고와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HK연구단이 공동 주최한 '안녕하세요, 원효법사: 일본에서 발견한 신라·고려불교' 특별전에는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중요한 한국불교 문헌이 대거 나왔다. 현재 전해지는 신라불교 문헌은 90%가 일본의 사찰과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가나자와문고는 일본 가마쿠라막부 시대(1185~1333)의 실력자였던 호조 사네토키와 그 후손이 수집한 귀중서를 소장했던 서고였다. 호조 사네토키가 세운 쇼묘지(稱名寺) 옆에 자리 잡았던 가나자와문고 서책들은 가마쿠라 막부가 몰락한 뒤 흩어졌지만 쇼묘지에 보관된 불교 서적과 미술품 2만여 점은 남았다. 현재의 가나자와문고는 1930년 요코하마시가 속한 가나가와현(縣)이 쇼묘지의 문헌과 미술품을 인수하여 설립·운영하고 있다. 쇼묘지의 불교 문헌과 호조 가문의 주요 인물을 그린 초상화 등은 국보로 지정돼 있다.
77종에 이르는 출품작 중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전시실 2층 입구에 놓인 원효·의상의 대형 초상화다. 교토의 고잔지(高山寺)에 소장돼 왔고 교토국립박물관에 위탁 보관하고 있는 한 쌍의 초상화는 15세기에 만들어졌고 비단에 채색으로 그렸다. 전시회를 준비한 도쓰 아야노 가나자와문고 주임학예원은 "고잔지에는 원효와 의상의 일화를 담은 대형 두루마리 그림도 전해 왔고 국보로 지정돼 있다"고 말했다.
그 왼쪽 벽면에는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한국인 저술인 원효의 '판비량론(判比量論)'이 보인다. 가장 먼저 알려졌고 분량도 가장 많은 오타니대 박물관의 '오타니본(本)'을 비롯해서 오치아이 히로시 교수가 소장한 '오치아이본', 이번 특별전 준비 과정에서 새로 확인된 '바이케이 구장본(舊藏本)'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의상의 '일승법계도'에 들어 있는 7언 30구 옆에 연음표(連音標)를 붙인 '화엄원융찬(華嚴圓融贊)' 네 점도 주목할 만하다. 쇼묘지에 소장돼 있던 이 필사본들은 13~14세기에 만들어졌으며 시(詩)에 가락을 붙여 독송됐음을 보여준다. 한국불교를 전공하는 오카모토 잇페이 게이오대 강사는 "법계도의 7언 30구는 한국에서도 '법성게(法性偈)'로 독송된 만큼 '화엄원융찬'의 연음표를 이와 비교하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 나온 신라·고려불교 문헌은 상당수가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쇼묘지에 있던 원효의 '기신론별기' 필사본(단권)은 1300년대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통용되는 1659년 판본보다 300년 이상 앞선다. 제목과 분량도 1659년 판본('대승(大乘)기신론별기', 2권)과 다르고, 글자도 차이가 많다. 나고야의 혼쇼지(本證寺)가 소장한 원효의 '대혜도경종요' 필사본은 1277년 만들어진 것으로 원래 나라의 도다이지(東大寺)에 있던 것이다. 지금은 보통 메이지 시대의 판본이 연구에 이용되고 있다. 고려의 제관(諦觀)이 960년경에 중국에서 천태 교리의 핵심을 정리한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 필사본은 13~14세기에 만들어져 한국과 일본에서 제작된 판본들보다 시기가 앞선다.
니시오카 요시후미 가나자와문고 학예과장은 "일본은 6세기에 백제에서 불교가 전래된 이래 한반도의 최신 불교 문헌을 받아들였다. 이번 전시회가 일본에 남아 있는 한국불교 문헌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동기획: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HK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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