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의 간 빼먹는 EBS

입력 2017. 7. 31. 15:28 수정 2017. 12. 1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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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고 박환성 PD가 받은 정부지원금 40% 가져가…
가난한 독립PD 지원금 최대 60%까지 환수하는 불공정 계약

한국교육방송(EBS)이 외주제작사가 정부기관으로부터 받은 제작지원금의 ‘40% 선납’을 요구해온 사실이 확인됐다. EBS가 자체 규정인 ‘외주협력제작사 협력상생 방안’을 근거로 외주제작사가 정부기관 지원금을 받으면 ‘40% 방송사 회수, 40% 제작비 투여, 20% 제작사 인센티브’ 등의 명목으로 사용할 것을 종용해온 것이다. 인센티브는 EBS가 제작사에 줄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EBS는 가난한 독립PD들이 받은 정부기관 지원금의 최대 60%까지 환수할 수 있다. 단순히 ‘불공정한 계약 관행’이라는 도덕적 비난을 넘어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에 불법 회계처리를 사실상 종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억4천만원에 자연 다큐 2편은 착취”

<한겨레21>이 7월28일 입수한 고 박환성 PD와 EBS 김아무개 편성PD의 통화 녹취록을 보면, 김 PD는 박 PD에게 “40%를 이쪽(EBS)으로 선납하고, 20%를 (우리가) 제작지원비 형태로 돌려주는 게 보통이다. 그게 룰”이라고 통보하는 내용이 나온다. 박 PD는 EBS의 간판 프로그램 <다큐프라임> 2부작 ‘야수의 방주’를 제작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박 PD의 회사 ‘블루라이노픽처스’가 모든 제작 책임을 떠안고, EBS는 방송만 송출하는 계약이었다. 계약 당시 EBS가 지급하기로 한 1억4천만원은 장기간 해외 촬영이 포함된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기에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 규모였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어본 독립PD들은 EBS와 박 PD가 맺은 계약이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독립PD는 “몇 년 전 지상파 방송에서 내부 제작해 화제를 모았던 동물 자연 다큐멘터리의 경우 편당 제작비가 7억원 안팎이었다. 2편을 1억4천만원으로 제작해오라는 것은 착취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박 PD가 제작에 나선 이유에 대해, 동료 PD들은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 “(방송사 쪽에서) ‘할 수 있겠느냐’ 물으면 ‘해봐야죠’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독립PD들은 EBS가 “(오랜 시간 다큐를 제작해온) 박 PD의 노하우에 빨대를 꽂아 거저먹겠다고 덤빈 것”이라며 분개했다.

박 PD는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곁에서 지켜본 동료는 “촬영을 준비하면서 여기저기 제작비 마련을 위해 뛰어다녔다. 제작비 지원 서류를 만드는 게 일의 절반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박 PD는 구원의 손길을 찾아낸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한국전파진흥협회(RAPA)에 제작비 지원을 신청했고, ‘2017년 차세대 방송용 콘텐츠(UHD)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것이다. 이를 통해 EBS에서 받게 된 1억4천만원에 더해 1억2천만원이라는 ‘실탄’이 보충됐다. 제작비가 마련돼 한숨 돌릴 상황이었지만 문제는 여기서 다시 시작됐다.

정부기관에서 추가 제작비 지원을 받기로 한 것은 박 PD의 개인적 판단이 아니라 EBS가 요구한 부분이었다. 2016년 8월 계약 이후 제작비 부족 상황을 논의하자 EBS 김 편성PD는 박 PD에게 “내년 초 한국콘텐츠진흥원이나 한국전파진흥협회 등에 제작비 지원을 신청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막상 추가 제작비 지원을 받아내자 EBS의 태도가 돌변했다. EBS가 정부기관의 제작지원금이 ‘협찬금’이라며 “40%를 선납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박 PD가 한국전파진흥협회로부터 선지급받은 금액은 EBS가 요구한 금액과 정확히 일치한 전체 지원금의 40%, 즉 4800만원이었다. 박 PD가 받은 정부 제작지원금은 ‘1년 이내에 방송이 송출될 것’을 조건으로 하는 지원이었다. 박 PD는 이를 잘 아는 EBS가 방송 송출에 목맬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잡고 흔든다고 생각했다.

EBS, 박 PD에게 ‘편성 취소’ 압박

EBS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생각한 박 PD는 EBS 편성 담당자에게 수차례 관련 문제를 협의한다. 박 PD는 “이미 수차례 협의한 상황이고, 제작 지원 국가보조금이 협찬금에 해당한다는 법적 근거가 없으며, EBS 내부 규정이 그렇다고 해도 이는 사전 고지된 바도 없으며, 계약서에 포함돼 있지도 않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EBS는 우종범 사장 명의의 공문을 박 PD에게 보내 “EBS가 정부 주관 제작비 지원 사업 신청을 장려하는 입장”인 것은 맞지만 박 PD가 “단독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처럼 신청한 것은 계약 내용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을 바꾼다. <한겨레21>이 입수한 녹취록에는 EBS의 외주제작 편성 책임자인 콘텐츠 협력 부장이 박 PD에게 “이 건은 계약 위반이 맞고 그에 따른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상당히 고민”이라며 편성을 취소할 수 있다고 압박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박 PD와 EBS 쪽은 모두 7차례 공문과 내용증명을 주고받는다. EBS 부장은 제작 지원 신청 자체가 계약 위반이라며 ‘편성 취소’로 협박했다. 동시에 다른 EBS 편성PD는 “협력 제작업체 상생방안 기준에 따라 1억2천 수탁금 가운데 20%는 인센티브, 40%는 제작비 투여, 40%는 EBS 간접비 환수로 진행하자”고 종용한다. 1억2천만원 가운데 40%인 4800만원만 제작비에 보태고, 40%는 EBS가 간접비 환수로 회수하며, 남은 20%는 EBS의 판단에 따라 외주제작사에 인센티브로 지급할지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EBS는 독립PD가 정부기관에서 받은 제작지원금을 최소 40%, 최대 60%까지 뜯어갈 수 있다. 이 부담은 겹으로 외주제작사에 남는다. 프로그램의 질이 하락하는 것은 물론 방송사에 선납금을 주었다고 정산할 수 없으니 거짓 회계 증빙을 해야 한다. 정부의 제작지원금은 모두 프로그램 제작에만 쓰이도록 규정돼 있다.

박 PD는 출장 가기 하루 전날인 7월7일, EBS와 관련한 진행 자료를 전부 동료 PD에게 넘겼다. 그는 “다시 방송국이랑 일하지 못하더라도 이번엔 끝장을 보겠다”며 자신이 없더라도 협회 차원에서 이 문제를 꼭 대처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익숙한 일이라고 당연한 것은 아니다. 이건 나와 EBS의 문제가 아닌 방송가 전체의 적폐다”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독립PD들 “EBS의 해명은 거짓말”

이에 대해 EBS 쪽은 말을 아꼈다. 이승훈 EBS 정책본부장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다 파악되지 않았다. 지금은 고인의 장례를 수습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EBS가 독립PD들에게 장을 열어주려고 노력하는 방송사인데, 발생한 문제가 구조적 문제인지, 개인적 차원인지 확인 중이다. 공식적으로 선납금을 요구한 바 없다”고 밝혔다. 녹취록에서 40% 선납금을 언급한 EBS PD는 “해당 업무의 담당자가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고, 실무 책임을 맡은 PD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독립PD들은 EBS의 해명이 “시간을 벌겠다는 거짓말이다. 만약 EBS가 여태 선납금 문제를 확인조차 못하고 있다면 지금까지 EBS 회계처리는 전부 거짓 정산이었냐”고 주장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김지혜 교육연수생

‘벼룩의 간 빼먹는 EBS’ 보도와 관련해 알려드립니다

<한겨레21>은 제1173호 특집(2017년 8월7일치) ‘벼룩의 간 빼먹는 EBS’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EBS 외주제작 업무에 관여하는 한 부장이 박 PD에게 ‘이 건은 계약 위반이 맞고 그에 따른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상당히 고민’이라며 편성을 취소할 수 있다고 압박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기사에서 언급된 EBS 부장은 “고 박 PD를 상대로 ‘편성 취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었으며, ‘편성 취소’라는 말로 압박이나 협박을 한 사실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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