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통영 여중생 성매매 사건..가해 10대 법정구속 된 이유는?
"2016년 초여름 어느 날 새벽, 차를 몰고 귀가하던 한 시민의 차에 갑자기 사람이 뛰어들었다. 운전자는 놀라서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보니,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며 맨발인 채로 소리치는 어린 여성을 보았다. 다급해진 운전자는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그 여성을 차에 태워 인근 파출소로 갔다. 차 안에서 본 여성은 온몸에 이상한 낙서 때문에 성한 곳이 없었다. "저는 16살이며 학교 여선배, 남선배에게 폭행을 당하다 견디지 못해 도망을 쳤다"고 겨우 말을 하는 여학생에게 경찰에 신고를 하자고 시민이 말했다."
통영시민사회단체연대 송도자 대표가 7월 24일 한 언론에 기고한 글입니다. 통영에서 벌어진 지적장애 여중생에 대한 성매매 강요, 폭행 사건입니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사건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4월 13일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창원지법 통영지원은 지적장애 여중생에게 성매매를 시키고 이를 거부하자 여중생을 폭행한 피고인 4명에 대해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피해 여중생 가족은 고통스러워했고, 고민 끝에 통영의 시민단체에 이 사건을 공론화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 "집행유예는 부당"…어떤 사건이길래?
피고인 4명은 모두 10대입니다. 16살 1명, 17살 2명, 18살 1명입니다. 피해 여중생은 16살입니다. 지적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말, 10대 피고인 3명은 피해 여중생을 통영의 한 여관으로 데려갔습니다. "휴대폰 어플로 조건만남 남자들을 구할 수 있는데, 착한 남자들도 많다"면서 여중생이 성매매를 하도록 마음먹게 했습니다.
가해 10대 3명은 포주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휴대전화 어플에서 남성들에게 쪽지를 보냈고, 약속을 잡은 뒤에 이걸 지적장애 여중생에게 전달해 성매매를 하도록 했습니다. 지난해 6월에만 수십 명의 남성이 피해 여중생과 성매매를 했습니다. 가해 10대들은 집을 나와 모텔에서 생활하는데 생활비와 유흥비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 성매매 거부하자 담뱃불로…
피해 여중생은 참다못해 성매매를 거부했습니다. 폭행이 시작됐습니다. 1명이 가담해 가해 10대는 4명이 됐습니다. 이들은 여중생의 머리채를 잡고 뺨을 때리고, 화장품 아이라이너로 여중생의 얼굴과 팔, 목에 성적인 욕설을 썼습니다. 담뱃불을 팔과 다리에 갖다 대 지지기도 했습니다. 뭉친 휴지를 입에 집어넣어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한 뒤 폭행을 일삼았고, 신고하지 못하도록 옷을 벗긴 뒤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촬영했습니다. 그러던 새벽, 여중생은 겨우 탈출했습니다.
● 1심 법원,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면서도…
1심 재판부는 10대 4명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범행 동기와 경위, 수단과 방법에 비춰 볼 때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했습니다. 또 피해자는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고, 상당한 후유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왜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했을까요. 1심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밝힌 내용은 이렇습니다.
1심 재판부는 10대 4명에게 유리한 점으로, ① 범행사실 인정 ② 반성문 제출 ③ 나이 어린 소년 ④ 부모가 선도를 다짐 ⑤ 피해자와 합의 ⑥ 학업에 대한 의지, 이렇게 6가지 요소를 들었습니다. 이 가운데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것은 10대 피고 4명 가운데 1명입니다. 다른 3명은 합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 음란 영상통화만 찍어도 실형인데…
사실, 이번 통영 사건보다 죄질이 덜한데도 실형이 나온 사건이 있습니다. 2010년 당시 미성년자이던 A 군은 포털사이트 카페를 통해 알게 된 13살, 16살 여자 청소년들에게 수십 건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협박했습니다. A 군은 자신한테 영상통화를 걸도록 한 뒤에 음란 행위를 시켜 피해자를 강제 추행했고, 그 영상통화 내용을 저장해 음란물을 제작했습니다. 1심 법원은 A 군에 대해 장기 2년, 단기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했고, 2심과 대법원에서도 실형이 유지됐습니다. 혹시, A 군은 통영 사건과 다르게 반성하지 않거나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요? 두 사건을 비교해보겠습니다.
● 전문가가 봐도, "1심은 현저히 불균형한 양형"
두 사건을 검토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비슷했습니다. 소년법 전문가인 강릉원주대 오경식 교수는 "통영 사건의 1심 집행유예는 음란 영상통화 사건과 비교해서 현저히 불균형한 양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통영 사건은 범행 수법과 죄질,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즉 아청법상 다른 유사 사건의 판례에 비춰봤을 때 실형이 선고돼야 한다는 겁니다. 정현미 이화여대 교수도 피해자와 합의한 건 1명인데 4명 모두 집행유예가 나온 1심 판결은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이승현 박사도 통영 사건의 죄질이 더 심각하다고 봤습니다. 피해자가 지적장애를 갖고 있고, 10대 4명이 공동상해를 했다는 점, 또 성매매를 하도록 유인하고 음란물을 제작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앞서 비교한 음란 영상통화 사건보다는 형량의 가중 요소가 많다는 것입니다. 또 피고인 4명 모두 피해자와 합의한 건 아니기 때문에 양형 판단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습니다.
● 2심의 반전, 2명 법정구속
어제(26일) 부산고법 창원 제1형사부에서 2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2심 재판부는 10대 피고인 2명에 대해 징역 장기 2년, 단기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달아날 우려가 있다며 법정구속했습니다. 장기, 단기를 정해놓은 것은 수감 생활을 성실히 할 경우 단기에 석방해준다는 취지입니다. 다른 2명은 범행에 가담한 정도가 덜하다며 1심 그대로 집행유예를 유지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 여중생 가족이 1심 당시에도 합의한 1명을 제외한 다른 2명에 대해서는 엄벌을 탄원했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특히 10대 2명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을 유지하면서, "제1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이를 존중함이 타당하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었습니다. 즉 2심에서 실형을 선고한 2명의 경우에는 1심 재판부의 판결을 파기했으니까, 1심 재판부가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 19살 미만이니까…판사 재량은 어디까지?
핵심은 '소년감경'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19살 미만이 죄를 범하면 검사가 형사재판에 넘길 것이냐,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 소년원 등에 보낼 것이냐, 둘 중 하나로 결정합니다. 형사재판에 넘기면 판사는 19살 미만일 경우 소년법 제60조 2항(소년의 특성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다.) 규정에 따라 '소년감경'을 해줍니다. 규정은 '감경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보통은 다 해줍니다.
'소년감경'은 감경이라고 하니까 성인의 형량에서 얼마를 깎아준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게 아니라 성인의 형량과 상관없이 백지상태에서 판단합니다. 성인 범죄는 유사한 사건에 대해 들쭉날쭉 한 형량이 나오는 걸 막기 위해 대법원에서 정한 양형기준을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피고가 19살 미만이면 대법원 양형기준을 아예 적용하지 않습니다.
대법 양형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만큼 판사의 재량은 더 커집니다. 소년법 취지에 따라 규정대로 엄벌하기보다는 피고인의 여러 특성을 고려해 선처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소년법 1조 법의 목적에 보면, "소년법은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판사 재량이 커지는 만큼 유사 사건에 대한 형량의 편차는 성인 사건보다 커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 소년 사건, 당사자가 판결에 수긍하려면…
통영 여중생 사건 2심은 일반인들의 법 감정에 좀 더 부합하도록 나온 사례로 보입니다. 통영시민사회단체연대도 2심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피해 여중생 가족이 용기를 내어 이를 공론화하지 않았다면, 지역 시민단체가 서명을 받아 재판부에 탄원서를 내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의문도 듭니다.
사건 당사자가 판결에 수긍하려면, 소년법의 취지를 살려 판사 재량은 지금처럼 성인 사건보다 더 큰 폭으로 보장하되, 유사 사건에 대한 형량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 소년 사건에만 적용되는 양형기준을 따로 만드는 방안도 검토해야 합니다. 19살 미만 사건의 양형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법조계에서도 아직 논의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통영의 피해 여중생 가족처럼 '판결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또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박세용 기자psy05@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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