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이런 환자님들엔, 동네의사가 乙이라고요

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2017. 7.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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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이틀치 감기약 타놓고 일주일후 와 "왜 안낫냐"
한달치 당뇨약 가져가고 두달만에 "조절 안된다"

지각했다. 올 들어서만 두 번째다. 집에서 큰길로 나오는데 평소 5분 걸리던 것이 30분이나 걸렸다. 아파트 앞 교차로에서 신호를 지키지 않고 꼬리를 문 차들 때문에 매우 정체됐다. 병원에 도착하니 평소 없던 대기 환자들이 있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인사하며 바쁘게 진료를 시작했다. 첫 환자가 처음 오신 분이어서 진료 시간이 길어진다. 마음이 급해지지만 그럴수록 차근차근 진료해야 한다. 그때 접수실 직원이 보낸 메시지가 컴퓨터 화면에 떴다. '원장님, 오래 걸리나요?' 환자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 보내는 것도 아닌데 대기 중인 환자 누군가 불평을 한 모양이다.

앞 환자 진료에 시간이 걸린다는 건 그만큼 꼼꼼히 진료해 주겠다는 무언의 약속인데 환자들은 응급상황도 아니면서 좀처럼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이럴 때면 예약제로 환자를 진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하지만 동네 의원에서 예약제로 진료한다는 건 굶어 죽겠다는 뜻이다.

진료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어서 생각보다 복잡하고 섬세한 과정이다. 환자들은 대개 의사가 갑이고 자신이 을이라고 생각한다. 동네 의사인 나로서는 의사가 을이고 환자가 갑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1주일 전 감기약을 이틀치 처방해달라고 했던 환자가 이제 와서 왜 감기가 낫지 않느냐고 따질 때가 있다. 병원에 나오지 않은 것은 환자인데도 말이다. 한 달치 당뇨약을 처방받은 뒤 두 달 만에 온 환자가 당이 조절되지 않는다고 한 적도 있다. 약을 잘 드시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니 약을 잘 먹었다고 한다. '약을 잘 먹었다'는 말은 한 달치 약을 한 달 만에 먹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래도 환자가 우기면 의사는 지는 척해야 한다. 다시 검사해서 약을 조절하자니 그건 또 싫다고 한다. 그냥 약을 달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의사도 앞에 있는 사람이 환자로 보이지 않고 그저 마트에 물건 사러 온 손님으로 보인다. 을인 의사는 갑인 환자가 해달라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다. 이럴 때면 환자에 대한 애정이 급속도로 식는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소심한 복수는 진료기록부에 환자의 행동과 말을 상세히 적어놓고 다음에 왔을 때 참고하는 정도다.

환자가 없어 한가한 병원에 새 환자가 들어서면 접수대 직원과 의사 모두 생기가 돈다.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는 병원이 깨끗하다며 칭찬한다. 거기까지만 했다면 참 좋을 텐데 환자는 이렇게 말한다. "길 건너 의원은 환자가 너무 많아 오래 걸려서 이리로 왔어요." 의사 기분이 잡치는 순간이다. 기분을 다시 추슬러 열심히 진료를 했더니 "병원은 아주 좋고 깨끗한데 환자가 너무 없네요"라며 쐐기를 박고 병원을 나간다. 그런 환자에게는 마음속으로 소금을 뿌린다. 대학병원에 있는 저명한 교수들에게도 "다른 교수에게 진료받으려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왔다"고 말하는 환자들이 있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대화일 것이다. 서로 좋은 말을 해야 관계가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오랜만에 병원에 온 중년 여자 환자에게 "다이어트 하셨나 봐요. 날씬해지셨네"라고 했더니 "원장님도 멋있어졌어요"라는 덕담이 돌아왔다. 덥고 짜증 나는 계절, 돈 한 푼 안 드는 덕담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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