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설적인 여성 로커 재니스 조플린

-히피문화 범람 60년대 가장 각광받은 여성 뮤지션
-자기파괴적 삶의 자세와 쇳소리 보컬이 어우러져
-뼛속까지 허무로 무장한 명품 보컬로 전세계 홀려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로커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독보적인 샤우팅 목소리로 자신만의 신나는 록 음악 스타일을 확립한 서문탁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자우림이라는 밴드로 한국 가요계의 한 획을 그은 김윤아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목소리는 록의 범주로만 넣기에는 지나치게 우아해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지만, 자우림 활동 시기 밴드의 프런트를 담당하며 여성 로커의 일원으로 한 세대를 풍미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때 마야라는 여성 로커가 내지르는 시원한 목소리가 무대를 달군 적이 있었다. '진달래꽃'을 필두로 몇 곡의 히트곡을 쏟아내는 그의 출현 이후 노래방에서 록음악을 부르는 여성들 숫자가 확 늘어나기도 했다.
이보다 더 올라가면 '다시 사랑한다면'이라는 걸출한 록발라드를 남긴 도원경 이름도 찾을 수 있다. '티어스(Tears)'를 불러 노래방에서 수많은 사람 목을 쉬게 했던 소찬휘도 사실 '이브'라는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로커 출신이다(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브와는 다른 밴드다). 이보다 더 올라가면 신촌블루스 출신 한영애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한국적 블루스의 대모 격인 그는 여성 로커의 범주로 묶어도 크게 무리가 없는 최고의 아티스트 중 하나다.
미국 영국의 음악계에서도 수많은 여성 로커가 있다. 한국보다 록 음악의 역사가 훨씬 길고 장구한 만큼 여성 로커의 숫자도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그중 한국의 한영애처럼 블루스계의 대모라 칭할 수 있는 전설적인 뮤지션이 있다. 마약과 술에 찌들어 살다가 27세의 나이로 요절한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이 주인공이다.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길지 않은 세월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떠난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좀 멋있게 표현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고, 날것으로 얘기하자면 음악에 미쳐, 음표에 미쳐, 자신에 미쳐, 타인의 시선에 미쳐 스스로를 학대(?)할 정도로 막 살다가 어느 날 숨을 거둔, 재능이 넘쳤던 뮤지션이라고 그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1943년 1월 미국 텍사스주에서 태어났다. 그가 지금도 살아있었다면 칠순이 훌쩍 넘은 나이로 젊은 시절 호기를 부렸던 스스로를 돌아보며 그 당시를 어떻게 평가했을지 궁금하다. 지금도 그녀에 대한 사진이 많이 남아있지만, 객관적으로 얘기해 미모가 뛰어나다고는 표현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 역시도 그런 외모를 본인의 콤플렉스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지나치게 방탕했던 그의 사생활은 히피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당시 문화 영향이 컸지만(조플린만 그렇게 산 게 아니다. 그 당시 비슷한 문화에 젖어 살았던 동년배들 상당수는 그와 비슷하게 방탕한 삶을 추구했으므로) 학창 시절 사랑받지 못했던 어두운 과거와 결별하고자 스스로를 더 한계로 내몰았던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 그는 인터뷰에서 "나를 파괴할수록 사람들이 내 음악을 좋아한다. 나도 내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빌어먹을 뭔가가 날 이렇게 살게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토머스제퍼슨 고등학교에 다닌 그는 학창 시절 블루스를 접하고 삶의 갈 길을 정한다. 그리고 사이키델릭 록이 판쳤던 미 서부 샌프란시스코로 떠난다. 사이키델릭(psychedelic) 록을 번역하면 '환각 록'쯤 될까. 마약에 취한 것처럼 몽롱한 느낌이 강한 록의 하위 장르를 말한다. 히피 문화 번성과 함께 1960년대를 수놓았던 록 스타일이다. 그리고 별로 놀랍지도 않게 사이키델릭 록에 빠졌던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거의 다 마약을 하기도 했다. 사이키델릭이란 그리스어로 '정신'이라는 뜻인 'psyche'와 '분명한'이라는 뜻의 'd'elsos'를 합성한 단어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정신이 분명해지는'이란 뜻이 되겠다. 상당수 로커들은 당시 마약을 '정신이 또렷해지는' 매개체로 활용했다. 마약에 취해 나른하고 몽롱한 상태에서 악상을 떠올려 창의적인 음악을 만들어냈고 그 곡을 무대에 마약에 취한 채로 올려 폭발적인 무대 매너를 곁들였다. 사이키델릭 열풍은 비단 록 음악계가 아니라 패션, 미술 등 예술 영역 전 분야에 파급력을 널리 미쳤던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지만 사이키델릭과 록 음악이 만났던 접점에서는 마약이라는 존재가 큰 역할을 했던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 등 이 시대 인기를 끌었던 사이키델릭 록 밴드들은 아예 작정하고 마약을 찬양하는 가사를 쓰기도 한다. 1967년 제퍼슨 에어플레인이 내놓은 '화이트 래빗(White Rabbit)'이란 곡의 가사를 보자.
One pill makes you larger And one pill makes you small(알약 하나를 먹으면 거대해지고 알약 하나를 먹으면 작아지지만)/And the ones that mother gives you. Don't do anything at all(엄마가 당신에게 준 약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지요)/Go ask Alice. When she's ten feet tall(엘리스가 10피트로 커지면, 그녀에게 물어보아요)/후략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티브를 차용해 마약과 연결시킨 가사다. 환각상태에서 경험한 것들을 아름답게 묘사한 곡이라 할 수 있다.
각설하고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조플린은 사이키델릭 록 밴드 '빅브러더스&더홀딩컴퍼니(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에서 메인 보컬을 담당하며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된다.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1967년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세계를 뒤흔들었던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의 또 한 명의 주인공은 조플린이었다. 훗날 같은 해 나란히 세상을 떠나는 헨드릭스와 조플린은 당시 범람하던 히피문화가 록 그리고 블루스와 결합되어 최적화된 모습으로 태어난 명품 짬뽕이었다. 한쪽에서는 헨드릭스가 세상에 볼 수 없던 희한한 주법으로 에릭 클랩튼 등에 열광했던 록 팬들 뒤통수를 쳤고, 다른 무대에서는 조플린이 전례 없던 허스키 보이스로 "백인 여성이 하는 블루스가 뻔하지 뭐"라고 폄하했던 음악계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 헨드릭스와 조플린 그리고 그룹 도어즈(Doors)의 보컬 짐 모리슨(Jim Morrison)은 동시대를 열광시킨 뮤지션이자 이른 나이에 요절한 공통점이 있어 이름 앞자리를 따 '3J'라고 불리기도 한다(셋 다 J로 이름이 시작한다). 헨드릭스와 모리슨에 대해서는 추후 다루고자 한다.
이들이 각광받았던 이유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을 이들이 대변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는 무슨 일이 있었나. 베트남전에 반대한 미국 대학생들이 거세게 연대하며 반전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이는 히피문화와 결합해 1969년 그 유명한 '우드스톡 록 페스티벌'이 막을 열게 한 계기가 된다. 유럽에선 1968년 발발한 프랑스 '6·8 혁명'이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조플린은 시대정신을 허스키한 목소리로 목에서 피가 날 때까지 열창하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학창 시절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학교 동급생이 선정한 최고 추녀'에 선정됐던 그녀는 받은 설움의 한을 응축시켜 무대 위에서 토해냈고, 무대에서 내려와서는 수많은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지며 가장 히피다운, 가장 사이키델릭한 삶을 온몸으로 일궈내 갔다.
여기서 그의 목소리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20대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세상 평지풍파를 홀로 다 견딘 듯한 목소리가 그의 매력 포인트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기관지염을 앓아왔다. 그 탓에 목소리가 일찍 쉬어버려 고음에 올라갈 때 갈라질까 아슬아슬한 목소리 사이로 퍼져나가는, 기계에 예쁘게 갈아놓은 듯 한 독특한 톤이 탄생했다. 또 그는 '서던 컴포트(Southern Comfort)'라는 위스키에 복숭아 과즙이 섞인 35도짜리 술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마약과 섹스, 술로 도배한 그의 사생활이 20대의 나이로 닿을 수 없는 허무함의 극치를 선사하는 목소리를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1968년까지 '빅브러더스앤더홀딩컴퍼니' 활동을 하던 그는 1969년 새로운 밴드 코즈믹 블루스 밴드(Kozmic Blues Band)를 만들어 솔로 활동에 나선다. 같은 해 열린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참가해 각광을 받고 이후로도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한다.
하지만 1970년 10월 4일 그는 할리우드의 호텔방 바닥에 쓰러져 죽은 채로 발견된다. 공연 시간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자 그를 수소문한 프로듀서와 매니저가 그를 발견했다. 사인은 헤로인 과다 투여. 향년 27세였다. 자기 파괴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서 굳이 부정하지 않았던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최후라고 쓴다면 너무 과한 표현이 될까.
그가 죽은 지 석 달 후인 이듬해 1월, 그의 유일한 솔로 앨범인 펄(Pearl)이 유작으로 나온다. 미국 내에서만 400만장이 팔리는 히트 행진을 하고,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추천곡으로는 단연 '서머타임(Summer Time)'을 꼽을 수 있다. 첨언하자면 라이브 버전보다는 레코딩 버전이 낫다. 여러 차례 오버레코딩을 진행하며 조플린 특유의 쇳소리를 잘 정제해 앨범 버전으로 담았다.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그런데도 듣기에 전혀 거북하지 않다. 아름다운 쉰소리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절규하는 클라이맥스 대목을 들으면 소름이 돋는다. 이외에도 빌보드 1위곡인 '미 앤 바비 맥기(Me and Bobby McGee)'등을 추천할 수 있겠다.
노래를 들을 때는 비가 부슬부슬 오는 다소 서늘한 저녁이 좋겠다. 손에 애정하는 맥주 한 병이 들려 있으면 금상첨화일 듯싶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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