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배운 한낱 여공의 글? 수기라 폄하되기도 했지만 어엿한 문학"

정리 |심혜리 기자 2017. 7. 16.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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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여공문학’ 펴낸 배러클러프와 책에 등장하는 장남수·석정남이 말하는 ‘여공문학’

“책에 ‘여공’에 대한 편견도 있는 것 같아요.” <여공문학>의 저자 루스 배러클러프 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여공문학의 당사자인 석정남(왼쪽), 장남수 작가(왼쪽에서 두번째)가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번역을 한 노지승 교수도 함께했다. 정지윤 기자

1989년 여름, 기독교단체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가 또래의 10대 여공들을 만나 매료된 한 호주 여학생은 28년 뒤 자신이 이 나라의 ‘여공’ 문학을 분석한 책을 내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달 국내 번역·출간된 <여공문학(Factory Girl Literature)>(후마니타스·사진)은 강경애부터 신경숙까지, 한국 여성 노동문학을 통과하며 변혁 운동 속에서 망각되거나 부차화된 노동계급 여성의 삶과 문학, 욕망을 복원하고 그 목소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책이다.

최근 방한한 저자 루스 배러클러프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주요하게 다뤘던 노동문학 작가 석정남과 장남수를 만났다. 첫 만남이었다.

이들은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지난 12일 약 3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훈훈하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다. <여공문학>을 찬찬히 읽고 온 석정남·장남수 작가는 배러클러프 교수가 듣기엔 불편할 수 있는 지적도 제기했다. 이들의 대화를 돕기 위해 번역을 한 노지승 인천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자리를 함께했다.

■ “‘성폭력 만연’ 동의할 수 없어”

노지승=두 작가는 <여공문학>을 읽으면서 어떤 인상이나 느낌을 받았나.

장남수=그동안 여공들의 문학은 수기라고만 얘기됐지, 문학이라고 명명 받아본 적이 없었다. 물론 노동문학이라는 큰 범주로 분류되긴 했으나 우리의 이야기를 문학이라고, 우리를 작가라고 호명하니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석정남=나는 굉장히 큰 불만이 하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공들의 섹슈얼리티를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 이해가 잘 안된다. 노동 현장에 성폭력이 만연돼 있다는 이야기가 곳곳에 나와 있던데, 그것은 나도 모르는 이야기다. 우리가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힘든 노동이었고 지긋지긋한 가난이었지, 성폭력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걸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를 하니 당황스러웠다. 물론 사람이 사는 사회이기 때문에 남녀관계는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특수한 사건들을 일반화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다.

배러클러프=날카로운 관찰 고맙다. 내가 한국의 여공 문학 작품들에 관심을 가진 건 성폭력을 집중해서 보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젊은 노동계급 여성들이 15~16세에 서울로 와서 어떤 야망과 꿈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가, 또 누구와 사랑에 빠지고, 어떻게 즐거움을 얻는가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문학작품들을 읽으면서 노동계급 여성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로 그려진다는 것을 알았다. 아울러 여공들에 대한 성폭력도 자주 다뤄지는데, 왜 독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도 궁금했다. 제가 구로공단에서 만난 여공들은 자기 가정도 있고 대단히 행복한 사람도 많은데 문학에선 왜 항상 여공들이 성적으로 취약하거나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일까. 이 책에선 그런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다.

석정남=제 개인적 삶이나 문학 속에서도 성적인 문제, 이성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는데 그런 개념을 어떻게 갖게 되신 것인지 궁금했다.

■ 비주류 ‘여공 문학’에 주류 평단은 혹평

노지승=당시 여공들의 문학은 남성 평론가들이 주로 비평했는데 대부분은 좋은 내용이 아니었다. “수기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시점이 조금 혼란스럽다. 등장인물의 시선이 계속 바뀐다”라는 평도 있고, 가장 긍정적인 내용은 “그들 소설이 노동문학 속에서 자기 공간을 넓히고 있다”는 것이었다.

석정남=만약 우리 작품을 높게 평가했다면 평론가의 자격이 없었겠지(웃음). 노동현장에서 바람직한 소설이 나오지 않고 있던 터에 필요한 시점에서 여공문학이 한국문단에 나왔던 것은 맞지만 작품의 완성도는 떨어졌던 거다. 솔직히 말하면.

장남수=태어날 때부터 ‘비주류’였다. 딸이어서 비주류, 학업을 박탈당했으니까 비주류, 공장 내에서도 여성이라 비주류. 공장뿐 아니라 문단에서도 모든 것이 남성 중심이었다. 여공문학이라는 말은 있지만 남공문학이라는 말은 없지 않나. 남성 중심의 세계와 그런 평가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배러클러프=호주에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성차별·성폭력은 존재하고 있다. 유리하지 않은 비평적 환경을 이겨내고, 전통적 노동문학의 서사와는 다르지만 이렇게 직접 자신의 이야기로 기록했던 노동계층의 여성들이 있기 때문에 문학의 다양성이 보존되고 있다.

■ 문학의 ‘고전’은 누가 정하는가

배러클러프=나는 아주 일반적이고 평범한 정규 교육을 받고 자랐다. 문학시간엔 주로 18·19세기의 고전을 읽어야 했다. 그런데 두 분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받은 교육이 적절하지 않았음을 느꼈다. 누가 고전을 결정하고 선택했는가. 고전이라는 것은 주로 중산층 남자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엔 다양한 작품을 보고 싶어하는 갈증이 있다.

노지승=한국문학은 식민지 시기부터 근대문학이 출발했고, 남성 지식인들이 문사라는 이름으로 주로 글을 써오며 대중들은 그것을 우러러봤다. 그러면서 문학의 전통이 형성됐다. 현대에 와서 전통이 많이 허물어졌지만, 여전히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고 있다.

장남수=나이 들어서 대학에 가보니 우리 이야기를 연구하고 있더라. 그렇게 회자되는 게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석정남=전 지금 장사를 하고 있다. 살아가는 일에 취미를 붙이고 옛날 내 모습에서 나가버렸다. 나도 잘 못 쓰는 처지면서, ‘노동’이라는 말이 붙은 문학작품을 보면 성에 차지 않아 화가 난다.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는 나올 거다.

■‘빼앗긴 일터’ 장남수, 해고 여성노동자 삶·의식 기록한 글로 주목

1958년 경남 밀양에서 빈농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내고 1970년대에 가족의 밥벌이를 위해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청계피복·동일방직·YH무역 등과 함께 197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대표적인 민주 노동조합이었던 원풍모방노조에서 대의원으로 활동하며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사측과 싸우다 1980년 계엄합동수사본부에 의해 강제 해직된 후 투옥됐다.

1984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해고당한 여성노동자의 생활과 의식을 기록한 수기 <빼앗긴 일터>를 출판해 문단에서 주목했다. 2010년엔 ‘공순이’라 불렸던 원풍모방 노조원들의 생애를 재구성한 <못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삶이 보이는 창)를 다른 동료들과 공저했다.

2007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에 입학해 뒤늦게 사회학을 공부했다. 2011년 전태일문학상 생활글 부문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공장의 불빛’ 석정남, 생생한 폭로성 글 ‘노동자들 성장서사’ 평가

1956년 태어났다. 인천 동일방직에서 공장 노동자로 근무하며 전국섬유노동조합 동일방직지부원으로 활동했다. 한국 노동사의 기록적 사건인 ‘동일방직 노동자 투쟁’을 겪고 해고됐다. 1977년 11월, 12월호 월간 ‘대화’에 ‘인간답게 살고 싶다’와 ‘불타는 눈물’이라는 수기를 연재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여성 노동계급의 글을 제대로 된 문학으로 다루지 않았던 노동문학 운동에 자신의 일기를 통한 폭로성 문학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4년 일월서각에서 생생한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비인간적인 노동의 현실을 고발하고 노동자 의식의 각성을 그린 <공장의 불빛>을 펴냈다. 공장에 들어가 사람들을 만나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함께 노동운동을 하며 겪은 이야기들을 세밀히 그려냈다. 석정남의 수기는 노동자들의 성장서사라고 할 정도로 한 명의 개인에서 노동자로 각성해 가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는 평을 받았다.

<정리 |심혜리 기자 gra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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