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트라우마..안산 시민들 삶에도 상처 남겨

입력 2017. 7. 14. 15:46 수정 2017. 7. 1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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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외상에 따른 '경제적 변화' 첫 분석
안산시, 가사노동 시간 줄고 개인 여가 늘어
집단적 트라우마에 의한 시간 변화로 추정
인접 지역에선 오히려 '돌봄 노동' 일자리 증가

[한겨레]

지난 4월 침몰 3년여 만에 뭍에 올라온 세월호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세월호 사건 같은 재난적 비극을 경험한 뒤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 관찰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안산시 주민들은 가사 노동 시간을 크게 줄이고, 휴식 등 여가 시간을 늘렸다. 세월호 사건에 따른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안산시와 인접한 지역에선 직장 활동이 늘고, 수면 등 개인 정비 시간이 줄었다. 사회적 재난에 따른 심리적 충격이 지역 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석철 서울대 교수(경제학) 등은 14일부터 서울 고려대에서 열리는 한국경제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심리적 쇼크 뒤 시간 자원의 배분 : 세월호 사건에 대한 분석을 통한’(The allocation of time after psychological shock : evidence from the Sewol ferry disaster) 논문에서 이런 결과를 내놨다. 이들은 노동·가사·수면 등 개인 시간의 활용도가 조사된 2014년 한국노동패널 조사를 통해 세월호 이후 65일 동안 안산시와 인접 지역(시흥·군포·화성 등) 주민들의 시간 배분의 변화를 비교 분석했다.

논문과 이날 학술대회 발표 자료를 보면, 세월호 사건 직후 안산 시민들의 시간 배분은 크게 변화했다. 먼저 세월호 사건 7일 뒤를 기준으로, 안산 시민들의 직업 활동을 뜻하는 ‘시장 활동’(market work)은 사건 이전에 비해 하루 3시간 가까이 줄었다. 또 ‘가사 노동’(housework)도 하루 30분 정도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씻기·식사·수면 등 ‘개인 정비’(personal care) 시간은 1.5시간 늘었고, 휴식 등을 뜻하는 ‘여가 시간’(leisure)과 친구를 만나는 등 ‘사회적 활동’(social activity)이 각각 1시간 정도 늘었다. 세월호 사건 당시 안산 지역에 있는 사업체 등이 일시 휴업하고, 개별적으로 휴가를 내는 등 심리적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변화가 시간 배분에 반영된 셈이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3주 뒤부턴 안산 시민들의 시간 자원 배분에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하루 3시간 남짓 줄었던 시장 활동이 세월호 사건 이전과 비슷한 수준(6.46시간)으로 복귀한 것이다. 사회적 활동(0.72시간)과 개인 정비(9.91시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가사 노동은 세월호 사건 65일 뒤까지 0.5시간 이상 줄어들었고, 여가 시간은 0.5시간 이상 늘어난 상황을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세월호 사건 뒤 65일 동안 안산 시민들은 가사 노동 시간을 28.9% 줄였고, 대신 여가 시간은 14.5% 늘린 것으로 분석됐다. 홍석철 교수는 “심리적 재난을 마주한 사람들이 어떻게 시간 배분에 변화를 가져가는지를 분석함으로써 한정된 (경제적) 자원인 개인의 시간이 활용되는 모습을 분석한 것”이라며 “직장에 휴가를 내는 등 일시적인 변화 뒤에는 결국 가족을 돌보는 시간인 가사 노동 시간을 줄여 개인의 휴식과 여가 활동에 배분하는 현상이 나타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집단 트라우마에 따라 가족 공동체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개인적 치유에 좀더 치중한 결과로 추정된다.

안산시와 맞닿은 시흥, 군포, 화성시 등 인접 지역에선 다른 형태의 시간 배분의 변화가 나타났다. 경제적 동기에 좀더 충실한 모습이었다. 인접 지역 주민들은 세월호 사건 뒤 65일 동안 시장 활동이 1시간 넘게 늘었고, 반면 개인 정비 시간은 1시간 가까이 줄었다. 세월호 사건 이전과 비교하면 시장 활동은 15.9% 늘었고, 개인 정비는 9.6% 줄었다. 이 지역에선 가사 노동과 여가, 사회적 활동 시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이는 안산시에서 줄어든 가사 노동 시간을 충당하기 위한 ‘돌봄 서비스’ 수요 증가에 대응한 결과물로 보인다. 인접 지역 주민들은 늘어난 돌봄 서비스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잠·식사·씻기 등 개인 정비 시간을 쪼개 노동 시간에 할애한 셈이다.

실제 세월호 사건 뒤 안산 주변 지역에선 여성 노동자의 고용률과 임금 수준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통계청이 작성한 지역별고용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세월호 사건 뒤 이 지역에서 외식업, 가사 서비스 등 돌봄 서비스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고용률과 임금 수준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특히 여성 노동자의 임금·고용률 증가폭이 컸고, 남성은 큰 차이가 없었다. 홍석철 교수는 “사회적 재난을 경험한 안산시 지역 주민들이 가사 노동 시간을 눈에 띄게 줄였고, 줄어든 가사 노동의 효용을 인접 지역 시장을 통해 해소하는 현상이 나타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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