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땅콩회항' 사무장 박창진..지금은 뭐할까?
"많은 고통과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을 거라는 것은 저도 예상하지만,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또 저의 자존감을 찾기 위해서 저 스스로 대한항공을 관두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박창진 사무장, 2014.12.17. KBS 인터뷰)
2년 7개월 전 박창진 사무장이 인터뷰 말미에 했던 말이다. 지난 2014년 12월, 박 사무장은 기자와 두 차례 인터뷰를 갖고 '땅콩회항' 사건의 전모를 폭로했었다. 그 대가는 컸다. 심한 외상 후 신경증과 공황장애 등을 겪었다. 치료를 받느라 400일 넘게 복직을 못 하다가 지난해 4월에야 대한항공에 복귀했다. 회사를 제 발로 나가는 일은 없을 거라던 그의 다짐은 지금도 여전할까? 왜 굳이 가시밭길을 걷는 있는 것일까?
기자는 박창진 '승무원'을 다시 인터뷰했다. 그는 더이상 '사무장'(팀장)이 아니다. 복직 때 일반 승무원으로 발령이 났다. 박창진 씨는 원래의 자기 자리를 되찾고 싶다고 했다. 회사로 돌아온지 1년 반. 조현아 전 부사장에겐 유죄가 선고됐고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내부 고발자로서 박창진 씨의 투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짝사랑했던 회사..배신감에 '마음의 병'
-외상 후 신경증에 불면증, 공황장애로 400일 넘게 직장에 복귀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좀 회복했나요?
"마음의 병이 낫는 게 쉽지는 않아요. 사건 이후 3, 4개월은 문밖으로 못 나갔어요. 공포감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언론사 기자들이 매일 같이 집에 찾아오고. 평범했던 사람이 모든 사생활이 오픈 된 것도 있었고. 재판에 서는 과정들도 정신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말을 주절주절 잘하는 것을 보고 저 사람 괜찮은가보다, 얘기하는 데 이게 365일 그러는 게 아니고 어느 순간에 발병하는 병이라서 후유증은 여전히 가지고 있죠."
-'마음의 병'이라고 했는데 뭐 때문에 가장 아팠습니까.
"대기업은 직원에게 모든 것을 회사에 바칠 것을 요구하잖아요. 야근도 많고 휴가도 사용 못 하고. 그런 측면에서 어느 순간 이 회사와 제 인생을 분리하지 못하고, 제가 회사고 회사가 내가 돼버린 거죠. 일방적으로 회사를 짝사랑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상대방(회사)이 냉정하게 돌아섰을 때 느끼는 배신감이 컸어요. 회사를 관둘 생각으로 어떤 준비를 해왔으면 달랐겠지만 그게 아니었죠. 하루 아침에 직장 내에서 그런 일을 당하다 보니까 그게 심리적으로 영향을 많이 끼쳤던 거 같아요. 직장에서 만들어놓은 성과나 자리, 그 전부를 잃게 된다는 생각, 그 과정에서 고통이 왔던 것 같아요."
-최근 SNS도 하시고 전보다 많이 밝아진 느낌인데.
"현실을 회피하는 게 정도가 아니라는 제 상담의사의 얘기가 있었는데 겪어보니 맞는 것 같아요. 본의 아니게 '뉴스의 인물'이 돼버린 현실을 인정하고 생각을 전환해 나가는 게 맞더라고요. 이왕 세상의 뉴스거리가 됐으면 내가 문 닫아걸고 있으면 안 되는구나, 저 나름대로 소통하면서 치유하는 의미도 있어요."
경력 21년인데 신입 승무원 업무 담당
"사무장 복귀 모습 보여주고 싶다"
-사무장이 아니라 일반 승무원으로 복직했는데 담당 업무가 뭔가요?
"지금은 주로 이코노미에서 승객 대응하는 일을 해요. 이코노미는 보통 1~3년 차 신입 승무원들이 배치돼요. 좌석, 화장실을 청소하고 현장 일을 해요. 거기에 배치돼 근무를 하고 있으니까요." (박창진 승무원은 올해로 21년 차다. 승무원은 통상 높은 연차가 퍼스트나 비즈니스를 맡고 낮은 연차가 이코노미를 담당한다.)
-경력 20년이 넘고 사무장(팀장)까지 했는데 억울하지 않습니까.
"회사로부터 1년 이상 휴직했다고 모든 승무원 자격을 갱신하라는 요구를 받았어요. (승무원 자격시험 중 하나는 영어 방송 자격이다.) 제가 꽤 영어를 잘 하는 편인데(웃음), 지금 제 심정을 영어로 말하라고 해도 할 자신이 있는데 그걸로 계속 페일(탈락)시키고 있어요. ... L과 R 발음이 안 된다는 식이에요. 그러면 과거엔 그것도 안 되는데 팀장 자리를 준 것인가. ... 20년 동안 영어 능력을 최상위로 유지해서 사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볼 땐 핑곗거리 같죠."
박창진 승무원은 복직 후 5차례 사무장 직책 수행에 필요한 사내 영어 방송 시험(방송자격 A)을 봤다. 그러나 매번 떨어졌다. 시험은 주어진 방송 멘트를 읽으면 대한항공 출신의 영어 강사가 평가하는 식이다. 박창진 씨는 2013년 '방송자격 A'보다 더 높은 영어 방송 자격(영 WT3)을 취득한 바 있다.
-그러면 후배 사무장에게 지시를 받겠어요?
"회사에 복직했다지만 제 자리(사무장)를 강탈당했고 그 과정에서 고민을 하죠. 자존감, 동료의 멸시를 받으면서 이 일을 계속 할 것인가, 그런데 고민하면 생존권을 놓는 거잖아요.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내 생존권을 위해 싸우러 가는 거죠. 10년 더 되는 후배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데 자존심 상한다고 내팽개치는 순간 저의 생존권을 강탈당하는 거잖아요."
-사무장이라고 해봐야 직책수당을 더 받는 것뿐인데 굳이 그 자리를 되찾으려는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많이 어려운 길을 겪고 있지만, 이 과정이 평가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약한 개인이지만 권력과의 투쟁에서 정도를 걸었을 때 권리를 회복할 수 있다, 그게 맞는 사회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이 과정에 있는 거예요. 관두고 딴 거 하면 되지, 김밥집 차리고(웃음). 하지만 자발적으로 하는 것과 내가 불이익 당하면서 회피의 수단으로 하는 것은 의미가 다르잖아요. 저 다음에 똑같은 일이 생기는 것을 막고 싶어요. ... 팀장으로 복귀한다고 해서 큰 명예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 자리를 온전히 찾아내는 것도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을 거 같고. 현재는 투쟁 단계에 있습니다."
-동료들은 응원해줍니까?
"표면적으로는 지지보다 '왜 저래, 그만하지.' 하는 분들이 더 많아요. 기자님이 제 동료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왕따가 뭔지 확실히 배우고 있습니다.(웃음) 동료들을 이해 못 하는 건 전혀 아니고요. 제가 "우리 모두 깨어납시다, 우리 권리도 생각해봅시다." 그러면서 자기 일은 열심히 안 하면 이치에 안 맞겠죠? 그래서 제 일은 열심히 합니다. 저를 가장 많이 지지하는 분들은 청소노동자분들이에요. 하도급 업체분들이신데, 정말 박수를 많이 쳐줘요."
이상했던 검찰 조사...뛰쳐나와 폭로 결심
그의 인생이 뒤바뀐 건 한순간이었다. 땅콩회항 사건 당시 KBS와의 30분짜리 인터뷰가 그 시작이었다. 그는 2014년 12월 12월과 17일, 두 차례 인터뷰를 가졌다. 당시 인터뷰는 사전에 조율된 게 아니었다. 12일 박 승무원은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있었다. 조사는 밤늦게나 끝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9시 뉴스를 2시간쯤 남겨두고 갑자기 인터뷰를 하겠다고 기자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당시 검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당시 A 승무원(회항 당시 마카다미아를 서빙했던 승무원)이 옆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어요. 문이 열린 상황이어서 뭐라고 진술하는지 다 들렸고. 지속적으로 어떤 여자 분이 조사실을 드나들면서 A 승무원과 얘기를 하고.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죠. ... 그런데 쉬는 시간에 나와 잠시 화장실을 가는데 여운진 상무를 포함해서 회사 관계자(법무팀 직원)들을 보게 됐어요. 깜짝 놀랐죠. (여운진 상무는 박창진 씨에게 국토부 조사에서 거짓 진술하도록 요구했었다. 증거인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알고 보니 그 승무원은 회사 차로 여 상무, 법무팀 직원들과 함께 출석한 거였어요."
-그럼 조사실을 오갔던 사람은 회사 직원이었던 건가요?
"A 승무원에게 어떤 여자 분이 조언을 하고 (조사실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는데, 회사 변호사였던 거죠. 회사 법무팀에서 온. 그 관계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보였어요."
-박 사무장의 진술 내용을 사측 변호사가 들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군요.
"조사실이 독립된 공간이 아니고 사실상 A 승무원과 같은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오해를 안 할 수가 없던 상황이었어요. ... 같은 공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아무런 정보가 저한테 없었다는 게 충격적이었고. 내가 여기서 얘기하는 게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그대로 공표가 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이럴 거면 내가 언론에 직접 얘기하는 게 낫겠다. 당시 회사가 신문에 낸 사과문을 보면 저 개인이 잘못한 것으로 공표가 돼 있었어요. 승무원이 실수를 해서 관리자 입장에서 질타를 했다는 논리를 폈어요. 그런데 검찰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면 약자인 저 같은 사람은 뒤집어쓸 수 있겠구나, 제 탓으로 될 수 있겠구나..."
-검찰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이거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물었더니, 검찰은 본인들도 몰랐다는 거예요. 사측 변호사가 조사실을 왔다 갔다 하는데 본인들도 몰랐다? 그 변명도 와 닿지 않았어요. 이거는 내가 바보가 되는 상황인가보다, (참고인 조사 도중) 나오게 됐죠." (박창진 승무원은 뒤쫓아온 수사관이 잡아당기는 것을 밀쳐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당시 수사관들은 욕설을 하며 청사 주차장까지 쫓아왔다고 한다.) "그때는 마음의 소리만 들었던 거 같아요. 이성적 판단이나 계획을 가지고 한 행동은 아니었고. 이왕에 내가 사회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입장이라면 차라리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낫지 않나. 내가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원래 반골? '오너' 모셨던 평범한 직장인
-직장인이 오너 일가를 고발하는 게 쉽지 않은데, 원래 나서서 문제제기 하는 편이었습니까?
"쟤는 원래 회사에 반골이었을 거야, 이런 댓글을 많이 봤는데. 하지만 그랬다면 조현아 씨가 타는 비행기에 제가 불려가지도 않았을 거예요. ... 나름 회사에서 귀여움을 받는 입장이었어요. 유니폼 바뀔 때 핏팅 모델 활동도 하고. 주니어 때부터 VIP(오너 일가)를 모시는 일을 많이 했어요. 회사가 무척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죠. 진급이 앞서는 건 없었지만 내가 회사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평범한 직장인이었군요.
"(다른 직원들이) 팀장 보직 잃고 저성과자가 될 때 '나는 아니겠지.' 불구경하듯 생각했죠. 하루아침에 누구를 평가하고 있다가 평가 받는 사람이 되고, 신입 승무원이 하는 일을 한다든지, 인격적 모멸감에 대해서 내 일이 아니니까 방관자 입장에 있었어요. 그런데 땅콩회항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노예 마인드로 살았구나, 인간적 주체로 서서 자유의지가 있는 사람이 돼야겠구나, 개를 다루듯이 기업이 '내가 밥을 줬으니 애교를 부려라.' 이렇게 직원에게 요구하는 관계는 잘못된 거다, 자각을 하게 됐어요."
-대부분의 직장인은 자존감을 버리고 사는 법을 배우지 않습니까.
"회사의 주류, 인맥, 그런 걸 타고 급격히 성장하거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만 그런 선배도 회사가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 본인의 실수나 큰일이 생길 때는 똑같이 해고가 될 수밖에 없죠. 그렇게 나도 지키지 못하고, 남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그들도 저도 회사에서 나의 작은 부분을 실현하고 정년이든 해고든 회사와 이별을 하는 과정은 똑같은데, 굳이 그렇게 살아야 할까.
-그래도 후회는 안 합니까?
"마음에 새살이 돋아나는 것 같아요. 비굴하게 빵을 얻어먹었으면 생명은 유지하겠지만, 저 자신은 없어졌을 것 같아요. 용기 있게 행동했던 게 지금 와서는 저 자신을 지키는 거였구나, 자발적 복종자로 남았다면 (물질적) 보상은 받았을지언정 인간 박창진은 보상을 못 받고 살았을 거예요."
"서비스노동자 인권 개선에 도움 되고파"
-서비스 노동자의 권리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고요.
"감정노동자와 관련된 어떤 일이든 해야겠다고 생각을 많이 해요. SNS로 감정노동 현장에 있는 분들이 많은 메시지를 보내옵니다. 개인적으로 얘기하는 수준인데 권익을 대변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가령 한국 항공사만 승무원들이 면세품 판매를 위해 승객이 자든 말든 불 켜고 돌아다니는데 길게 보면 문제점이 많다. 왜 다른 외국 항공사는 안 하는데 하는가, 보상이 적절히 있는가, 추가적인 노동이 발생하는데. 한국 항공사 승무원들은 앉아서 밥을 먹지 않아요. 처음에 입사했을 때는 (밥 먹을 때 사용하는) 간이 의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경영진이 바뀌면서 '왜 승무원이 앉아 있죠? 승객 응대 대기를 해야지' 하면서 없애버렸거든요. 다른 외국 항공사 직원들과 얘기해보면 깜짝 놀라요."
내부 고발 이후의 삶은 간단치 않다. 보이지 않는 불이익과 동료들의 냉대를 견뎌내야 한다. 박창진 씨는 그 긴 터널을 통과해오면서 많이 단단해져 있었다. 박창진 씨는 인터뷰 마치면서 "저는 잘난 게 없지만 직접 사건을 겪으면서 행동가가 된 거 같다"며 "앞으로도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희기자 (bombom@kb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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