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지식] 카롤루스 대제

프리미엄부 2017. 7. 6. 15: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프랑크 부족은 작은 피핀(Pepin the Short)이라고 불린 왕의 지배 아래 로마제국의 과거 영토를 다수 되찾았다.

피핀은 그 영토를 교회에 기부하고 교황으로부터 왕위를 인정받았다.

그의 큰아들 카를은 768년에 왕국의 절반을 물려받았다.

그 대가로 교황 레오 3세는 800년 크리스마스에 명예롭지만 권한은 없는 칭호인 신성로마제국 황제라는 칭호를 내렸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 장의 지식-45] 카롤루스 대제(Charlemagne)

프랑크 부족은 작은 피핀(Pepin the Short)이라고 불린 왕의 지배 아래 로마제국의 과거 영토를 다수 되찾았다.

피핀은 그 영토를 교회에 기부하고 교황으로부터 왕위를 인정받았다. 그의 큰아들 카를은 768년에 왕국의 절반을 물려받았다. 3년 후 동생 카를로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뜨자 나머지 절반도 그의 차지가 되었다. 카를은 보헤미아와 작센, 에스파냐 북부와 롬바르디아까지 서유럽에서 영토를 늘려나갔다. 법률과 상법을 통합하고 단위를 표준화했지만 가장 큰 관심사는 가톨릭교의 공포였다.

그 대가로 교황 레오 3세는 800년 크리스마스에 명예롭지만 권한은 없는 칭호인 신성로마제국 황제라는 칭호를 내렸다. 콘스탄티노플도 파벌 분쟁 해결과 하룬알라시드에 대한 반격 문제로 카를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814년에 사망해 아헨(Aachen)에 묻혔다. 후대 통치자들은 그를 모방하거나 그와의 연결 고리를 찾으려고 했다. 프리드리히 1세가 그에게 카롤루스 대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