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무장이 목숨 걸고 지켰던 기녀 '진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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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 진원원(陈圆圆)은 청나라 무장 오삼계(吴三桂)가 한 도시의 관문을 열고 적을 토벌하게 만든 주인공이다.
본래 오삼계는 이자성에 투항할 계획이었지만 진원원이 잡혔다는 소식에 노해 중국의 역사상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인 산해관(山海关, 허베이성 도시 관문)을 열고 여진족과 함께 이자성을 토벌했다.
오삼계가 윈난의 평서왕(平西王)으로 즉위한 후 진원원을 데리고 갔다느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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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원원은 양모(養母)의 손에서 길러졌다. 본래 성은 형(邢)씨였지만 양모의 성을 따라 진(陳)씨로 바꿨다. 가무(歌舞)와 미모가 뛰어났던 진원원은 윈난(云南)성 쿤밍(昆明)의 가기(歌妓)가 됐다.
그의 삶에는 굴곡이 많았다. 진원원은 전란(戰亂) 때문에 자신이 사랑했던 명말청초의 문학가인 모양(冒襄)과 헤어졌다. 이후 황제의 외척인 전홍우(田弘遇)에게 납치되다시피 베이징으로 끌려간다. 황제가 죽고 세력이 날로 약화되자 전홍우는 당시 권력자였던 무장 오삼계와 가깝게 지냈다.

그 후 진원원의 행방에 대한 명확한 사료는 없다. 여러 가지의 설이 전해 내려온다. 진원원을 되찾은 오삼계는 진원원만을 사랑하지 않고 사방관음(四方观音), 팔면관음(八面观音) 등 이름을 떨쳤던 미녀를 관부(官府)에 뒀다. 진원원은 자신이 나이가 들어 다른 여인들과 비교가 안된다고 여겨 불교에 귀의해 말년을 조용하게 보냈다고 한다. 오삼계가 윈난의 평서왕(平西王)으로 즉위한 후 진원원을 데리고 갔다느 설도 있다.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최예지 기자 rz@if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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