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복과 이익의 편지로 역사서 '동사강목'을 재구성하다

2017. 7. 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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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기 명예교수 '동사강목의 탄생' 출간
성호 이익이 동사강목(東史綱目)을 편찬한 제자 순암 안정복에게 1760년 10월 보낸 편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선생님의 답서에 '저탄과 대동강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어찌 동일한 이름이겠습니까?'라고 하셨으나, 제 생각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지명이지만 같은 곳인 경우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순암(順菴) 안정복(1712∼1791)은 1756년 스승인 성호(星湖) 이익(1681∼1763)에게 편지를 보냈다. 순암은 서간에서 성호의 의견에 반박하면서 독자적인 주장을 펼쳤다.

두 사람이 대립한 주제는 백제의 북쪽 경계인 '패수'(浿水)의 위치였다. 성호는 황해도에서 발원해 개성으로 흘러드는 예성강(저탄)을 패수로 봤으나, 순암은 평양성 남부의 대동강이 패수라는 견해를 굽히지 않았다.

순암과 성호는 어떤 연유로 역사관을 두고 사제간에 논쟁을 벌였을까. 당시 순암은 고조선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역사를 다룬 책 '동사강목'(東史綱目)을 집필하던 중이었다. 사서를 편찬하다 의구심이 생기자 스승에게 고견을 구한 것이다.

박종기 국민대 명예교수가 쓴 '동사강목의 탄생'(휴머니스트 펴냄)은 동사강목이 순암의 단독 저작물이 아니라 순암과 성호의 교류를 통해 완성된 서적임을 밝힌 책이다.

동사강목은 역사적 사건을 시대순으로 나열하는 편년체 중에서도 개요인 '강'(綱)을 먼저 서술하고 자세한 내용인 '목'(目)을 덧붙이는 강목체를 사용한 역사서다. 순암은 1754년 동사강목 집필에 착수해 6년 뒤 초고를 완성했으나, 1778년에 서책 형태로 펴냈다. 이후에도 수정 작업을 계속해 178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최종본을 내놨다.

동사강목은 부록을 포함해 20권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본편 17권에서 처음 5권은 고조선부터 고려 태조 18년까지를 다뤘고, 나머지 12권은 고려 역사를 기술했다.

고려사 전공자인 저자는 30년 전 정인지의 '고려사'를 우연히 입수하면서 동사강목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순암이 동사강목을 쓰면서 참고한 저본으로, 그가 각주 형태로 적은 글이 여백에 남아 있었다.

저자는 연세대에 있는 동사강목 초고본을 비롯해 안정복과 이익의 문집인 '순암집', '성호전집'을 모두 살펴 동사강목의 편찬 과정을 조명한다.

순암은 동사강목 제작에 앞서 역사 서술의 원칙을 명확하게 하고, 역대 왕조의 강역과 지리, 사실을 철저하게 고증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1754년 성호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나라 역사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내용도 만족스럽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성호는 "근세에 유계가 지은 '여사제강'(麗史提綱)과 같은 책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면서 그나마 '고려사'가 읽을 만하다고 추천했다.

이처럼 기존에 간행된 역사서의 한계를 공감했던 두 사람은 옛 왕조의 강역과 사건을 놓고는 충돌하기도 했다.

특히 고려시대 후기 우왕과 창왕을 바라보는 시각은 순암과 성호가 크게 달랐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우왕과 창왕이 공민왕이 아닌 신돈의 자식이므로 이들을 폐위하고 적통을 내세워야 한다는 폐가입진(廢假立眞)을 명분으로 공양왕을 옹립했다. 따라서 조선에서는 우왕과 창왕의 정통성을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았다.

성호는 전통적인 견해를 수용해 '우왕은 신씨'라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순암은 성호의 주장을 따르면서도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성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탈고한 동사강목 초고본에는 우왕과 창왕을 각각 '신우'(辛禑)와 '신창'(辛昌)이라고 기록했으나, 나중에는 이성계에 의해 폐위된 국왕이라는 뜻에서 '전폐왕(前廢王) 우'와 '후폐왕(後廢王) 창'이라고 썼다. 이로써 동사강목은 우왕과 창왕의 정통성을 인정한 최초의 역사서가 됐다.

저자는 "일제강점기 신채호와 정인보 등 많은 민족주의 역사가들이 역사 연구와 서술에서 동사강목을 활용했다"며 "철저한 고증정신, 진지하면서도 경건하기까지 한 역사의식과 서술 태도를 추구한 순암 선생은 지금도 큰 스승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364쪽. 1만8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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