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공간>악착같이 살아도 쳇바퀴.. 밑바닥 인생들의 아픈 정거장




(85) 임권택 영화 ‘왕십리’의 촬영지 서울 왕십리
김소월의 시 ‘왕십리’(1923년)에 나오는 ‘가도 가도 왕십리’라는 표현은 서울 성동구 왕십리라는 지명이 환기하는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말에는 가도 가도 닿기 힘든 곳, 가도 가도 벗어날 수 없는 곳이라는 이중적인 느낌이 동시에 들어 있다. 가요, 드라마, 영화 등에 등장하는 왕십리는 서민적인 친근함과 뒷골목의 애잔함이 함께 묻어 있는 장소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왕십리’(1976년)는 한창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1970년대 중반 왕십리의 변모를 세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흥행성적은 저조한 편이었으나, 제1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왕십리역, 전차, 기동차 = 왕십리는 무학대사가 조선의 새 도읍지를 정하기 위해 돌아다녔다는 일화에서 나온 지명으로 알려져 있다. 무학대사가 지금의 왕십리에 이르러 여기가 적당하다 생각했을 때 늙은 농부가 나타나 북쪽으로 십리를 더 가보라고 일러줬다고 한다. 그 말을 따라 왕십리에서 십리를 더 간 곳이 경복궁이다.
영화 ‘왕십리’는 최근 폐암 3기 판정을 받았으나 강한 극복 의지를 보여 눈길을 끌었던 배우 강신성일(예명 신성일)의 젊은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또 지난 4월 타계해 팬들에게 안타까움을 줬던 김영애의 탁월한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1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준태(강신성일)가 첫사랑 정희(김영애)를 찾는 이야기가 기본 뼈대를 이루고 있다. 비행기가 착륙하는 첫 장면은 택시 차창 밖 풍경으로 겹쳐지면서 준태가 고향으로 가는 길을 담아낸다. 준태는 전차와 기동차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택시기사에게 묻는다. 택시기사는 “전차고 기동차고 다 옛날 얘기”라며 사라진 지 10년은 됐다고 알려준다. 1898년 조선에 선보인 전차는 1960년대 후반 수명을 마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74년 서울에는 지하철이라는 새로운 교통수단이 출현했지만 준태는 그런 변화를 전혀 모르고 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전차는 그리운 과거, 잃어버린 순수함을 상징하고 있다.
준태는 고향에 돌아온 첫날 호스티스 윤애(전영선)를 만난다. 준태에게 첫사랑 정희는 빚을 갚아야 하는 과거의 연인이고 윤애는 현실과 타협할 수 있는 현재의 연인이다. 준태는 발랄한 윤애에게 호감을 느끼고 둘은 어린이대공원 데이트를 한다. 그곳에는 옛날 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는데 기관차 전면에는 ‘미카 5-56’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일본 전기차량 제작소에서 제작된 이 기관차는 1952년 도입돼 경부선에서 운행되다 1975년부터 어린이 대공원에 전시됐다. 기관차가 전시된 공원은 아마 윤애에게는 참신한 데이트 장소였겠지만 준태에게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착잡한 곳이었을 것이다. 마냥 즐거운 윤애와 달리 준태는 기관차 내부에 들어가 전차 타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영화 말미 윤애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선을 보러 고향으로 돌아간다. 윤애도 준태처럼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과거의 공간으로 되돌아가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과거 왕십리의 모습은 대사를 통해서 실감 나게 묘사된다. “미나리꽝에는 거머리가 우글우글, 배추밭에는 똥파리가 웽웽, 장난감 같은 기동차가 뚝섬 가요, 댕! 댕! 댕! 댕!” 이런 대사를 보면 1960년대 초반 왕십리는 미나리꽝, 배추밭, 연탄공장 등이 있었고 동대문과 뚝섬을 오가는 기동차가 지나갔던 것을 알 수 있다. 기동차는 가솔린이나 디젤 등 내연기관의 동력으로 가는 철도 차량으로 가볍고 속도가 빨랐다고 한다. 1970년대 왕십리는 미나리꽝과 배추밭이 집으로 변하고 땅주인들은 벼락부자가 된 상태다. 준태의 어린 시절 친구들도 옛날보다는 형편이 나아졌다. 아버지가 선짓국 장사를 하던 친구는 육곳간 주인이 되고, 자전거포를 하던 집 아들은 제일표 자전거 대리점 주인이 되어 있는 식이다.
개발 붐이 일고 땅값이 치솟고,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이루어지는 왕십리지만 준태는 14년 전에 멈춰있는 인물이다. 당구장 아저씨(최불암)도 준태와 마찬가지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또 한 명의 인물이다. 허름한 점퍼를 걸치고 큐대를 닦는 모습이나 여전히 가족도 없이 당구장 구석에서 쪽잠을 자는 신세가 변함없다.
이 영화 곳곳에는 강렬한 장면들이 박혀 있다. 그중에서 준태와 아저씨가 당구를 치는 대목도 뺄 수 없는 명장면이다. 늦은 밤, 희미한 형광등 불빛과 준태가 피우는 담배의 푸르스름한 연기로 꽉 찬 당구장은 필름 누아르의 한 장면처럼 음울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다. 아저씨는 왕십리 바닥에서 14년 전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하소연하며 자신도 데리고 떠나달라고 부탁한다. 그 말을 들은 준태는 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까지 둘이라고 정정한다. 영화에 자세히 설명되지 않았지만 준태는 14년 동안 일본에서 야쿠자 조직의 행동 대원으로 일한 것으로 보인다. 준태가 언뜻 아저씨에게 말한 “큰 범죄를 저지르고 밑바닥에 떨어진 인간”은 자기 자신을 말하고 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준태와 탈출하고 싶은 아저씨의 답답한 현실이 숨 막히게 그려진 장면이다.
◇살곶이다리와 성동교 = 영화 앞부분에 제목과 크레디트가 나올 때 주제가가 흐른다. 고향에 도착한 준태가 왕십리 곳곳을 돌아보는 모습에 깔리는 노래 가사가 귀에 쏙 들어온다. “무거운 발길을 말없이 세어 가며 혹시나 아쉬움에 뒤돌아보아도 내 눈에 보이는 건 검은 그림자…”. 최병걸이 부르는 이 곡은 준태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왕십리라는 공간을 여실히 보여주는 표지로 살곶이다리와 성동교가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준태는 고향 동네에 도착해서 바로 성동교를 찾는다. 도성의 동쪽을 잇는 다리라는 의미의 성동교는 준태가 기억하던 시절에는 전차가 다니던 길이기도 하다. 1938년 성동교가 가설되기 이전에는 살곶이다리가 길로 사용되었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돌다리 중 가장 긴 살곶이다리는 1420년(세종 2년)에 짓기 시작해 무려 60여 년이 지난 1483년(성종 14년)에 완공됐다. 함흥에 머물던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돌아올 때 마중 나온 이방원을 향해 화살을 쏜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화살은 빗나갔지만 ‘화살 꽂힌 곳’이라는 이름이 남게 됐다. 살곶이다리는 1967년 사적으로 올랐다가 2011년 대한민국 보물 제1738호로 지정됐다. 1972년 서울시가 복원하면서 일부는 콘크리트 교량으로 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살곶이다리는 1972년 복원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다.
호스티스멜로물이 유행하던 시기에 나온 이 영화는 색다른 면이 있다. 14년 전 겨울, 허름한 나루터 판잣집에서 정희는 준태에게 ‘순결’을 줬다. 요즘은 순결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기까지 하지만, 이 영화가 나온 1970년대 멜로드라마에서 순결은 지고의 가치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순결에 대한 부채감을 떠안고 있는 인물은 정희가 아니라 준태다. 정희 역시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정희는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왔다. 그에 비해 준태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신이 버리고 떠난 첫사랑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온다. 일본 은행에서 예금을 다 찾아왔다는 사실이나 사는 데 지쳤다는 준태의 대사 등으로 미루어 어쩌면 준태는 생을 마감할 각오까지 하고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준태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첫사랑 정희를 기어코 만난다.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힘들게 아이들을 키우며 몸까지 쇠약해진 정희를 본 준태는 연민과 죄책감에 집을 살 큰돈을 내준다. 그러나 이는 준태 친구 충근(백일섭)과 정희의 연극이었다. 이 영화에서 정희는 준태에게 사기를 치고 잘못을 비는 일을 되풀이한다. 집값을 날린 정희는 잘못을 빌기 위해 준태를 왕십리역 광장으로 불러낸다. 당시 왕십리역 광장은 제재소 자재를 쌓아 놓는 공간으로 사용된 것 같다. 통나무 등 목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왕십리역 광장에서 정희는 14년 동안 악착같이 살았지만 남은 것 없이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까마귀는 아무리 화장을 해도 비만 한번 오면 다시 까마귀”가 된다는 정희의 말은 그동안 새 삶을 살아보려던 노력이 실패했다는 걸 짐작하게 한다. 눈 덮인 목재 더미에 얼굴을 묻고 우는 정희를 바라보는 준태는 정희에게 충근과 결혼하라고 제안한다. 준태는 미안해하는 정희에게 “불행한 정희가 아프지. 나는 아프지도 않아”라고 위로한다.
준태의 바람대로 결혼식을 올리지만 그날 정희는 충근에게서 도망친다. 다시 준태를 찾아온 정희는 진실하지 못했던 자신의 태도를 또다시 반성하며 용서를 빈다. 하지만 준태가 잠들자 정희는 준태의 지갑에서 돈을 빼서 호텔을 빠져나간다. 이때 준태는 전날 밤 정희가 한 말을 떠올린다. “제게 주어진 생활을 열심히 사는 것 그 자체가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정희의 이 말은 진심으로 들린다. 이번 일도 충근과 모의한 것이지만, 정희는 충근과 헤어져 아이들을 위해 살 것을 결심한다. 준태와 만났던 왕십리역 광장과는 대조적으로 허허벌판인 여의도 광장에서 정희는 충근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처음에는 손찌검을 하던 충근도 단호한 정희의 모습에 놀라서 더 이상 막지 못한다. 충근과 몸싸움을 벌이느라 매무새가 다 흐트러진 정희는 치맛자락을 부여잡으며 허허벌판으로 휘청휘청 걸어나간다.
영화의 결말은 다소 뜬금없다 느껴질 수 있다. 윤애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정희도 강한 엄마의 자리를 향해 힘들게 발길을 돌리고 준태는 홀로 남는다. 왕십리를 상징하는 살곶이다리에 선 준태는 당구장 아저씨에게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겠다고 말한다.(사진) 그들이 서 있는 살곶이다리 저편에는 차들이 힘차게 달리는 성동교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펼쳐져 있다. 왕십리 안의 섬과 같은 존재였던 두 사람은 영화의 마지막에 의기투합한다.
14년 전에 머물러 있던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크게 웃고 나그네가 아닌 주인이 되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 보자고 다짐한다. 준태와 당구장 아저씨가 보여줬던 비감한 태도들을 돌이키면 갑작스러운 비약으로 느껴지는 마무리다. 두 사람의 미래를 낙관하고 싶은 감독의 의도가 들어간 것일 수도 있고 검열을 의식한 엔딩이라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이 영화는 1980년대 이후 임 감독 대표작들과 비교하면 대중적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왕십리라는 공간의 변천과 그곳을 고향으로 둔 인물들의 부침이 어우러진 수작이다. 선명한 캐릭터와 오래 뇌리에 남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확실하게 각인되는 영화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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