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마스크걸>-예쁘지 않지만 완벽 몸매 '모미'가 사는 법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마스크를 쓴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약한다.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섹시한 춤을 추고 도발적인 자세를 취하며 네티즌들의 환호에 도취한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마스크를 벗고 나면…
‘외모지상주의’를 다룬 웹툰은 많지만 <마스크걸>처럼 섬뜩하면서 현실적으로 다룬 웹툰은 드물다. 캐릭터의 설정이나 사건의 전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 웹툰의 현실성은 주인공이나 사건에서가 아니라 웹툰에서 묘사되는 사회의 모습이나 주변 인물들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주인공 캐릭터는 다소 극단적이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의 현실적인 묘사와 만나 만화의 극적인 요소를 자유자재로 만들어낸다.
네이버에서 연재하는 웹툰 <마스크걸>의 주인공인 ‘모미’는 얼굴은 예쁘지 않지만 완벽한 몸매를 지니고 있다. 어릴 적부터 연예인이 꿈이었던 그녀는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마스크를 쓴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약한다.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섹시한 춤을 추고 도발적인 자세를 취하며 네티즌들의 환호에 도취한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마스크를 벗고 나면, 온 세상은 ‘모미’의 외모를 경멸하고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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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크걸」에서 '모미'가 자신의 몸매를 자랑스러워하는 장면. / 네이버웹툰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미’가 평면적인 피해자(순전한 피해자) 캐릭터인 건 아니다. 백화점 속옷 매장에서 모미를 향해 “저 가슴 수술한 거 아니야”라고 쑥덕이는 사람들에게 가슴을 내보이며 절대 성형한 게 아니라고 외치는 등 ‘모미’는 그러한 시선을 그냥 참고 넘기지만은 않는다. 또 그녀는 망상 속에서 회사의 잘생긴 부장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믿고, 외모가 떨어지는 다른 남성 동료를 비하하고 무시한다. 사무실에서 얼굴이 예쁜 여성 동료 ‘아름’의 뽕브라에 바늘을 꽂는 등 엽기적인 장난을 하기도 한다. 특유의 광기로 일상을 이어오던 ‘모미’의 시간에 타격이 가기 시작한 건 짝사랑하던 부장의 연애를 알면서부터다. 실연의 절망과 술에 취한 어느 날 네티즌들에게 사랑받기를 갈구하며 인터넷 방송 중 옷을 완전히 탈의하면서 모미의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에 위기가 오기 시작한다. 거기에 하필 같은 직장 동료인 ‘주오남’이 ‘모미’가 마스크걸임을 알아보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뒷 내용은 생략)
시즌2에서 성형한 뒤 ‘아름’으로 이름 바꿔
파란만장한 시즌1을 마치고 ‘모미’는 <마스크걸> 시즌2에서 성형을 한 뒤 ‘아름’으로 이름을 바꾸어 등장한다. 본래 ‘아름’은 시즌1에서 ‘모미’가 짝사랑하던 유부남 부장의 내연녀로, ‘모미’의 사무실 동료였다. ‘아름’은 예쁜 얼굴과 애교 많은 성격으로 남성 직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으며, 부장과의 불륜이 발각돼도 떳떳하게 부장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시즌1에서 ‘모미’가 ‘아름’을 질투하는 장면들이 다수 나온다. 이 때문에 시즌1의 내용을 ‘아름’과 ‘모미’의 대결구도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모미와 아름의 갈등은 이 작품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이 아니다. ‘모미’를 심각한 갈등상황으로 끊임없이 몰아넣는 건 오히려 ‘주오남’과 같은 남성 캐릭터다. 시즌2에도 유사한 구도로 ‘모미’와 얼굴이 같은 ‘라라’가 등장한다. 둘은 서로 라이벌처럼 싸우고 괴롭히지만, 두 여성 캐릭터의 갈등구도 아래에서 더 심각한 다른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따라서 ‘모미’가 한때 적이었던 ‘아름’, ‘라라’의 이름을 훔쳐 활동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흥미로운 건 <마스크걸>이 매 시즌마다 클리셰를 차용하면서도 결코 클리셰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전복한다는 데에 있다. 시즌1에서는 한 남자를 두고 질투하는 두 여성의 전형적인 구도(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다)를 차용했다면, 시즌2에서는 과거를 완전히 세탁하고 새롭게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는 여성의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이 두 가지 이야기 모두 여성을 비하하거나 멸시할 때 자주 인용되는 클리셰다. 주로 이러한 이야기는 갈등상황에서 남성의 책임을 희석하거나 남성을 완전한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효과를 낳곤 한다. 그런데 <마스크걸>만은 이러한 클리셰가 자기만의 방식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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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미·희세 작가의 만화 「마스크걸」에서 ‘모미’가 가면을 쓰고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고 있는 장면. / 네이버웹툰 |
어떠한 행동도 불사하는 여성 캐릭터
‘여적여’의 구도 안에서 여성은 늘 감정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과거 세탁’의 스토리에서는 이기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데에 비해 <마스크걸>의 주인공 ‘모미’는 감정적이거나 이기적이라는 말로 쉽사리 규정되지 않는 인물이다. ‘모미’는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을 따른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욕망, 인정받고 싶은 욕망, 사랑받고 싶은 욕망 등…. 욕망의 선을 따라가다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한 그녀는 순전한 피해자도, 악랄하기만 한 가해자도 아니다. ‘모미’는 자신의 욕망에 집착하고 어떠한 행동도 불사하며 끝끝내 ‘살아남는’ 전무후무한 여성 캐릭터다. 이러한 ‘모미’의 캐릭터 때문에 작품은 ‘여성 비하’에 손쉽게 빨려들어가지 않는다. 서로를 뒤에서 헐뜯고, 외모를 질투하고, 성형인지 아닌지 캐묻는 조연 여성 캐릭터들도 등장하지만 그것들이 여성을 비하한다기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의 모습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건 <마스크걸>에 뻔한 여성 캐릭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예쁜 캐릭터나 예쁘지 않은 캐릭터나 뻔하게 행동하지 않고 다 각자의 행동양식을 갖고 있다. <마스크걸>은 만화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조연급 ‘예쁜 여성 캐릭터’ 또는 ‘못생긴 여성 캐릭터’의 고정된 행동양식을 따르지 않고, 저마다의 캐릭터들에게 욕망을 부여하여 입체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이에 비해 남성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평면적인데, 여성-남성 캐릭터의 이러한 대비를 통해 기존 콘텐츠의 문법을 뒤집어 재현한다.
김혜수·하지원 등 대배우들이 “시나리오에 여성 배역이 많이 없다”고 토로하는 현실 속에서, 웬만한 주연은 모두 여성 캐릭터가 꿰차고 있는 <마스크걸>은 그 자체로 독보적인 콘텐츠다. 남성들의, 남성들을 위한, 남성들에 의한 콘텐츠 시장 속에서 <마스크걸>이 종횡무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아마도 그건 ‘모미’가 살아남는 방식과도 닮지 않았을까.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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