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성향 연구소장 전화해 반말로 '와' 수시로 호출했죠"

2017. 6. 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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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히로시마시립대 정년보장 교수서 쫓겨난 김미경 교수

김미경 전 일본 히로시마시립대 평화연구소 교수. 그는 현재 세계정치학회 인권분과 회장도 맡고 있다. 해고로 학회 활동이 쉽지 않게 됐다. “동서양의 인권 담론을 접목시킨 보편적인 인권 담론을 연구하고 싶었어요. 서양이 지금 인권 담론을 쥐고 흔들고 있거든요. 동양 전통사상이 인권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걸 서양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싶었어요. 그걸 못하게 돼 안타깝습니다.”

김미경(54) 전 일본 히로시마시립대 평화연구소 교수는 한달째 서울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에 머물고 있다. 지난 3월17일 징계해고를 당한 그는 5월2일 귀국했다. “해고로 일본 체류 자격을 잃어 더 머물 수가 없었어요. 12년 동안 모은 한-일 관계 자료와 책 수백권을 버리고 떠났죠.” 대학은 퇴직금 5천만원도 주지 않았다. 2005년 강사로 이 대학에 온 뒤 3년 만에 정년보장 교수가 된 그였다. “일본에서 종종 아팠어요. 복직 소송을 해 이길 때까지 싸우기 위해 아프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합니다.” 그를 지난 2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해고통보서는 경찰에 체포돼 12일 동안 유치장 독방에 구금당한 뒤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난 당일 그에게 전달됐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를 몰아내고 싶었을 겁니다. 저를 몰아내야 그들이 사니까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대학은 그가 런던행 항공료 34만엔(약 340만원)을 출입국기록증명서 등 문서 위조를 통해 부당수령했다고 사기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2014년 한국국제교류재단 기금으로 한국에서 연구년을 보냈다. “처음엔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가려고 연수계획서를 대학에 냈어요. 그 뒤 재단 지원이 뒤늦게 확정돼 상급자인 깃카와 겐 평화연구소장에게 보고하고 소장 추천서까지 받아 한국으로 왔어요.”

대학은 그가 한국에서 연수를 하던 2014년 12월 갑자기 영국으로 가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아 돌아오라고 지시했다. 안식년 종료일보다 두 달 앞당겨 히로시마로 갔다. 런던행 항공료는 대학 복귀 두달 뒤인 2015년 4월에 받았다. “소장이나 행정실 직원이 자꾸 (항공료를) 신청하라고 해요. 제가 영국에 안 간 것을 알면서도 신청하라고 하니, 해야 되는 줄 알았죠.” 그를 조사하던 경찰도 이 대목을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대학이 제가 예약한 런던 1년오픈 왕복 비행기표나 허술한 증빙자료로 돈을 준 게 이상하다고 경찰이 그러더군요.” 그는 “항공료를 받을 의도가 없는데 대학 당국이 그런 상황을 만들어 저를 몰아붙인 것은 아닌가 하는 심증이 있다”고 말했다.

부설 평화연구소 정년보장 교수 9년째
2014년 연구년 영국 예정서 한국으로
대학쪽 2015년 ‘런던 항공료’ 신청 요구
‘사기’ 고소뒤 풀려나자 바로 해고

“아베 비판 등 소신발언 영향인듯”
깃카와 소장 ‘괴롭힘 보고서’ 작년 제출
“복직소송 내 이길 때까지 싸울 터”
대학쪽 “문서위조가 해고 최대사유”

그는 부산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미국 조지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70년대 한국 여성노동운동’을 주제로 썼다. 아들 부시의 1기 대통령 시절인 2000~04년엔 미 국무부 공공외교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미 정부의 대외 홍보를 담당하는 자리다. 부시 재선이 확정된 뒤 사표를 냈다고 했다. “4년 동안 부시가 내세운 ‘악의 축’ 홍보만 했거든요.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았어요.” 1년 뒤인 2005년 10월 공모를 통해 히로시마시립대로 갔다.

그는 대학의 해고 조처엔 아베 신조 총리 정책을 비판하는 등 자신의 소신 발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밝혔다. “2006년부터 한국,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포르 신문 기고를 통해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했죠.” 4년 전 ‘아베가 과거사는 빼놓고 피해자 행세만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고(김정은과 아베의 ‘위험한 탱고’)가 한국 신문에 실렸다. “2006년 한국의 한 지방지에 제 기고가 나간 날 우익들이 당일 오전 이 글을 번역해 히로시미 시장이나 시의회 쪽에 보내 항의를 하더군요.” 2011년엔 연구 때문에 도둑으로 몰리기도 했다. “제가 한국 동북아역사재단 프로젝트인 ‘일본인들의 영유권 분쟁 인식’ 조사를 맡자, 대학이 개인 연구라면서 연구에 대학 우편함이나 복사기도 사용해선 안 된다고 해요. 나중엔 제가 연구소 건물 열쇠를 훔쳤다고 도둑으로 몰았죠.”

그는 이번 사태의 핵심으로 2013년 4월 평화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한 깃카와 겐을 꼽았다. “깃카와가 일본 최대 우익조직인 일본회의 인맥 추천으로 소장에 임용되었다는 말을 최근에야 들었어요.”

깃카와는 부임 뒤 시도 때도 없이 그를 호출했다. “전화를 받으면 딱 한마디입니다. 반말로 ‘와’라고 해요. 저를 앉혀놓고 ‘한국 국민은 미개하다’고 욕을 해요. 한번은 일본 잡지 <주간신조>에 나온 저급한 ‘위안부 기사’를 보여주며 ‘복사해 공부를 제대로 해라’라고 하더군요. ‘남자가 전쟁터 나가기 전에 여자를 안아보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도 했죠. 한국 여성 대표로 하급자인 저를 불러 모욕하고 수치감을 주겠다는 의도가 눈에 보였어요.” 그는 고민 끝에 지난해 3월 대학 ‘허래스먼트(권력을 악용한 괴롭힘) 위원회’에 소장의 행태를 적시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를 낸 뒤 위원회 인사와 딱 한번 상담을 했어요. 해고로 귀국한 뒤에야 대학 사무국장이 ‘보고서를 철회할 심경의 변화가 있느냐’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어요. 저를 떠보려는 의도였겠죠.” 그는 이 보고서가 해고 조처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보고서 내용만 보면 소장은 해고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그를 임명하거나 추천한 인사들도 줄줄이 걸립니다. 보고서를 제출한 뒤 한 동료 교수가 ‘소장이 일본회의 라인이다. 건드리면 큰일 난다’고 귀띔해주기도 했어요.”

“제가 선례가 되면 학문의 자유가 없어집니다. 동료 교수가 그러더군요. ‘너처럼 털면 털리지 않을 교수가 없다. 누구도 너처럼 될 수 있다’고요.” 그는 현재 세계정치학회 인권분과 회장을 맡고 있다. 일테르 투란 세계정치학회 회장과 미 국제학회 인권분과 회장, 미 정치학회 회장 등 여러 학자들이 해고 조처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의견서를 보내주었다고 했다. “해고가 인권침해이자, 학문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이며 절차도 무시했다는 게 의견서를 보낸 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이나 마사키 일 국제기독교대 교수 등 일본의 여러 교수들도 도움을 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이에 대해 히로시마시립대 쪽은 “해고는 (김미경 교수의) 정치적 입장이나 주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김 교수가) 한국출입국기록 증명서와 영국 입국 여권기록, 케임브리지대 교원 서한을 위조한 게 해고의 최대 사유”라고 밝혔다.

강성만 선임기자sungm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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