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37) 담배, 이제는 끊어버려야 할 몽환의 유혹


담배, 고독한 시인들의 벗
우리 문단에서 가장 담배를 즐겨 피운 분은 공초 오상순 시인이었습니다. 많이 피우실 때는 하루 2백 개비를 피우셨다니 식사하고 주무시는 시간을 빼면 거의 담배를 물고 계셨나 봅니다. 결혼 주례를 설 때도 담배를 피웠고, 술에 만취해서 지갑과 양복을 잃어버려도 담배 파이프를 물고 있었다는 일화까지 전해지니까요. 그의 아호인 공초(空超)는 불교에 해박했던 시인께서 불교의 핵심 사상인 '空' 사랑도 초월(楚越)한다는 매우 심오한 뜻을 담고 있지만, 어쩐지 제게는 피다 만 담배를 가리키는 '꽁초'나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뜻하는 '골초'로 읽힙니다.
얼마나 담배가 좋으면 시인은 자신과 시와 담배를 삼위일체라고 표현할까요. 공초 선생님은 담배를 피워물고 이런저런 시상을 가다듬었을 테고, 푸른 담배 연기가 그야말로 끝없는 곡선을 그으면서 하늘로 올라갈 때 자신도 자신의 시혼도 함께 그 영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느꼈나 봅니다. 줄담배를 피우셨지만 공초 오상순 시인은 세는 나이로 70을 사셨으니 당시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장수도 하셨습니다
오상순 시인뿐 아니라 금연 열풍이 그야말로 담배 연기처럼 온 세상을 덮기 전까지 시인들이나 소설가들, 혹은 화가와 음악가들 아니, 이 땅의 모든 남성에게 담배는 친구보다 친하고 애인보다 가깝고 형제보다 살가운 기호품이었습니다. 왼손에 담배를 들고 오른손으로 원고지를 메꿔 내려가는 문인들의 모습이나 담배 연기를 허공에 뿜어내는 예술가들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혁명가였던 체 게바라 역시 그가 물고 있는 시가 담배 때문에 더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오상순 시인만큼이나 담배를 즐기셨던 시인 김용호 선생님도 이런 시를 쓰셨습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담배를 통해 삶과 죽음 같은 형이상학적인 사유도 할 수 있었고 사랑과 미움도 경험했나 봅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색동저고리 대신 하얀 소복을 입었다고 했으니 담배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하고, 담배의 해악으로 건강을 해쳐도 절대 담배를 끊을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로도 읽힙니다.
역시 아편과 담배로 요절한 천재 시인 김소월도 담배를 피우면서 고독과 가난의 괴로움을 달랬습니다.

소월은 담배의 원료인 엽연초를 젊은 나이에 한 많은 생을 살다가 제대로 꽃피워보지 못하고 죽은 아씨의 무덤 위에 피어나는 풀이라고 비유합니다. 그러니까 소월에게 담배는 즐거워서 피운다기보다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의 혹은 몸부림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고독한 영혼들의 말 없는 위안

담배는 치명적인 해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담배는 적어도 애연가들에게는 그 모든 해악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효용과 치명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인간의 의지와 결심이 나약한 것을 비유하는 '작심삼일'의 대표적인 예가 담배 끊기일까요. 해마다 정월 초하루가 되면 주변의 많은 애연가들이 담배를 끊겠다고 불타오르는 투지를 새날 솟아오르는 태양 앞에 맹세합니다. 하지만 그 맹세는 일주일이나 한 달을 못 가고 슬그머니 서산을 넘어가는 태양처럼 사그라지기 일쑤입니다.
담배의 마력에 가까운 매력, 아편보다 더 강한 중독과 탐닉에 대해 숱한 문인들과 철학자들이 글을 남겼습니다. '생활의 발견'이라는 탁월한 에세이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중국의 지성 린위탕 선생도 생전에 담배를 끊어보려고 시도를 했나 봅니다. 그는 이런 시도가 부질없는 것이라고 자책하면서 도리어 담배를 이렇게 예찬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에게 담배는 정신적 행복일 뿐 아니라 문필가로서 필요한 창조적 상상력의 원천이고 벗과 대화를 나누는 데 빠질 수 없는 기호품입니다. 담배를 끊겠답시고 껌을 씹는 행위가 죄악이라니!
조선 정조 때 선비였던 이옥은 '연경(烟經)'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배의 근원과 맛, 그리고 담배를 만드는 방법 등을 담고 있는 유일한 책인데요. 유학의 위대한 경전에나 붙이는 '경(經)'을 붙였으니 얼마나 담배를 좋아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기나긴 겨울밤 첫닭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다. 몰래 부싯돌을 두드려 단박에 불씨를 얻어 이불 속에서 느긋하게 한 대를 조용히 피우자 빈방에 봄이 피어난다."
담배를 한 대 피워무니 겨울날 한기가 꽉 찬 방에 봄이 피어난다니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실제로 애연가들은 새벽에 눈뜨자마자 피워무는 담배 한 대의 맛이 가장 좋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담배는 약 400년 전인 광해군 무렵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양반층을 중심으로 담배는 급속히 퍼져나갔고, 천하의 탁월했던 군주 정조도 담배만큼은 끊지 못했습니다. 건강을 염려해 담배를 삼가라는 신하들에게 화가 나 도리어 대소신료를 모이게 하고는 담배의 미덕에 대해 글을 올리라는 교지를 내렸을 정도니까요.
사회학자 샌디 길먼은 '흡연의 문화사'에서 담배는 인간을 동물과 가르는 문화와 관습으로여겨져 왔다고 주장합니다. 동물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나요.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침공한 이후 원주민에게서 받아 유럽에 퍼진 것으로
알려진 담배는 서양인들이 열광한 기호품이었고 산업으로서도 요즘 말로 대박을 터뜨린 제품이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찰스 킹슬리는 담배를 이렇게 예찬합니다.
"담배는 외로운 사내의 벗이며 미혼남의 친구, 굶주린 이에게는 양식, 슬픈 사람의 원기회복제, 잠 못 이루는 이에게는 잠, 추운 이에게는 온기"
이쯤 되면 담배는 만병통치약인 셈입니다.
흡연의 문화사에서 길먼은 이렇게 담배를 추어올립니다.

그러니까 담배는 고독과 공허라는 질병의 예방책일 뿐 아니라 모든 제도와 관습의 굴레를 벗어나는 자유분방함과 절대 자유의 표현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연기의 신(神)'에게 바치는 장엄미사라니! 담배를 종교의 차원까지 끌어올리는 거창한 수사학에 그저 몽롱할 따름입니다. 하긴 중고등학교 시절, 담배를 과감하게 꼬나무는 친구를 보면서 새가슴이었던 저는 솔직히 부럽기도 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죄를 뒤집어쓴 역적, 담배
그러나 이렇게 칭송받던 담배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담배 말고도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다양한 레저와 취미 생활이 등장하면서 급속하게 죄인으로 전락합니다. 이제 담배를 마음 놓고 피울 수 있는 장소는 적어도 공공 영역에서는 거의 사라졌고, 오는 12월이면 한 줌 남았던 당구장과 골프 연습장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습니다. 개인의 공간이라는 아파트에서도 옆집으로 퍼져나가는 연기로 인해 종종 험악한 싸움으로까지 번지니 대기권 밖으로 나가기 전에는 지상에서 좀처럼 담배 피울 공간을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과거에는 담배를 끊는 사람을 독한 사람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갖은 구박과 설움과 불편에도 담배를 꿋꿋이 피우는 사람이 독한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12월부터는 담뱃갑에 담배로 인해 각종 암으로 고통받는 끔찍한 사진들이 인쇄돼 흡연 욕구에 찬물을 끼얹고 있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죄인 같은 심정이 되고 맙니다. 억울한 흡연자들은 동병상련을 느끼는 걸까요? 한국사회에서 끈끈한 학연, 혈연, 지연보다 더 끈끈한 동지애는 '흡연'이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나올 정도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담배는 싼값으로 위안을 주는 기호품이라는 점에서 흡연을 옹호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의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담배가 서민들의 시름과 애환을 달래주는 도구라며,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한꺼번에 담뱃값을 올린 것을 횡포라고 주장했습니다. 직접세인 담뱃값 인상은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인 만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담배와 흡연에 대한 공격에 대해 좀 독특한 사회학적 해석을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좀 풀어서 설명하자면 우리 사회는 온갖 문제와 부조리가 있는데, 마치 담배가 모든 죄의 원천인 양 담배에 모든 것을 투사하고 싸잡아서 화풀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담배는 실제 담배가 받아야 할 눈총보다 훨씬 큰 눈총을 받는 희생양이 되고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담배에 대한 공격이 가혹하면 가혹할수록 다른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는 은폐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담배, 치명적 질병의 최고 주범

애연가들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담배의 해악은 이제 반론을 펴기가 어려울 정도로 명확해졌습니다. 암과 뇌졸중, 고혈압과 동맥경화, 당뇨 같은 치명적인 질병에 직간접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 담배라는 사실은 숱한 논문과 실험으로 밝혀졌습니다. 금연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서울대 의대의 박재갑 교수님의 설명을 따르면 담배는 그야말로 마약보다 무섭습니다.
우선 담배 속에는 사형장에서 사용하던 청산 가스와 비소를 포함한 62종의 발암물질과 4,000종 이상의 유해 화학물질이 함유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 암을 유발할 것이 확실시되는 A급 발암물질이 15종이나 됩니다. 이런 담배 때문에 해마다 15만 명이 질병에 걸리고, 그중에서 5만 명이 사망합니다. 한 해 평균 10조 원이 넘는 의료비용이 담배로 인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부가 담뱃세로 거둬들이는 돈의 대부분을 다시 흡연으로 인한 질병 치료비로 쓰는 꼴입니다.
담배로 인한 질병과 사망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나라들의 공통된 난제입니다.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에 실린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약 10억 명이나 되고, 이 가운데 640만 명이 담배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2015년 한 해 전 세계 사망자 6천4백만 명의 10%나 됩니다.

담뱃값은 해방 이후 얼마나 올랐을까요? 해방 직후 최초로 만들어진 담배는 '승리'였는데 지금 화폐로 환산하면 3원이었습니다. 1965년 판매된 '아리랑'은 25원이었고, 1976년에는 150원, 1984년에는 500원으로 올랐습니다. 1996년 들어서는 1,000원 시대가 열렸고, 2003년에는 2,000원, 2005년에는 2,500원으로 올라 10년 동안 오르지 않았습니다. 2015년 담뱃값은 2,000원이 올라 지금은 4,500원이 되었습니다
애연가들은 담뱃값이 너무 올랐다고 푸념하지만, 노르웨이나 호주, 캐나다, 독일, 영국 등 서구의 나라들에 비하면 아직도 반값이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담뱃값은 인상될 때마다 잠시 판매량이 주춤하지만 석 달 정도가 지나면 용수철처럼 다시 올라가곤 했습니다. 지난 2014년 무려 43억 9천만 갑이 팔렸고, 크게 담뱃값이 올랐던 2015년에는 33억 2천6백만 갑으로 많이 줄었습니다. 가격을 대폭 올린 것이 어느 정도 금연 효과를 가져왔던 것이지요. 그러나 2016년에는 다시 36억 6천6백만 갑으로 늘어나 인상의 약발이 다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습니다. 실제로 올 들어 3월까지 주춤하던 월별 판매액도 4월 이후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담배 한 갑 가운데 세금은 얼마나 될까요? 대략 65% 정도인 3,000원이 세금으로 걷힙니다. 지난 2014년 담뱃세는 6조 9천억 원이 걷혔고 담뱃값을 대폭 올린 2015년에는 10조 5천억 원, 그리고 2016년에는 12조 4천억 원이 걷혔습니다. 국가가 거둬들이는 세금에서 담뱃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2.3%에서 3.6%로 껑충 뛰었으니 정부가 담배를 쉽사리 규제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박재갑 교수님은 마약과 독극물보다 담배가 더 위험하기 때문에 아예 법으로 제조와 판매, 흡연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담배를 피우기 어려워지는 사회 분위기와 무엇보다 건강을 중요시하는 개인들의 가치관에 힘입어 우리나라의 흡연율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처음으로 흡연율을 집계한 1998년 19세 이상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무려 66.3%나 됐습니다. 세 명에 두 명꼴인 셈이지요. 그러나 2005년에는 51.6%로 낮아졌고, 2012년에는 42.1%로 떨어진 데 이어 2015년에는 마침내 39.3%로 떨어졌습니다. 마의 40% 벽을 깬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 남성의 흡연율은 OECD 국가 중에 1, 2위를 다툴 정도로 높습니다. 갈 길이 멀다는 얘깁니다.
단호히 끊어야 할 몽환의 유혹

담배는 한때 외로운 이의 벗이고 위안이었지만 이제 담배와 결연히 결별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여가 생활이나 취미 활동을 개발해 무료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균관대 이성림 교수팀이 20세 이상 성인 5,2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남자의 경우 혼자 사는 독신자는 48.1%가 담배를 피운 반면, 2인 이상이 함께 사는 남성은 24.7%만이 흡연자였습니다. 중년층 역시 혼자 사는 사람은 33.3%가 담배를 피웠는데, 다인 가구에 살 경우는 19.8%만 담배를 피웠습니다.
고독과 무료함이 담배에 손을 대거나 담배를 끊지 못하는 주요 원인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인 핵가족화, 인간의 파편화, 고립화와 무관하지 않고 보면 더불어 사는 공동체, 건강한 연대의 복원은 흡연을 물리치는 데도 주효하리라 짐작합니다.
담배를 좀처럼 끊기 어려운 시인들도 하나둘 담배를 끊으면서 일어나는 긍정적 변화를 시로 쓰기도 합니다.

담배를 끊으면 흔히 금단현상이 찾아옵니다. 담배를 피워무는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얻은 듯 호기로웠고, 왁자지껄 무리 속에 끼어 먹고 마시고 피워대니 고독하지도 않았겠지요. 그러니 시인은 처음 담배를 끊었을 때 어울리던 사람들과 멀어지고 한없이 자신이 작고 무력해진 느낌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차츰 금연에 적응이 되니 고독을 오히려 즐기게 되고 그 고독과 동반한 슬픔의 참맛도 알게 됩니다. 더욱이 설거지와 애 보기, 독서 같은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이 다시 찾아옵니다. 유산 상속을 받은 듯 넉넉하다니 금연이 인생 최고의 선물이겠습니다.

담배를 끊는다는 건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저도 담배를 끊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술자리에서 멋지게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친구를 보면 한 개비 달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기 어렵습니다. 또 호주머니가 넉넉지 않는 서민들에게 담배는 여전히 위로와 소소한 기쁨을 주는 기호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담배가 주는 치명적인 해악과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간접흡연의 해악을 생각한다면 단호히 결별해야 합니다.
시인의 말대로 세상과 통하던 '담배'라는 한쪽 통로를 과감하게 닫아버리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통로가 다시 생길 것입니다. 그때 그 통로는 어쩌면 담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활력을 주면서 건강에도 이롭고 가족과 이웃 공동체에도 새로운 삶의 기쁨을 안겨주는 희망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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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걸기자 (kbslimb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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