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추적>교사들이 강남으로 위장전입, '강남앓이' 이유는 무엇

한경진 기자 2017. 5. 3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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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아내의 강남권 학교 배정을 위해 1989년 ‘위장전입’한 사실이 인사청문회 도중 드러난 이낙연(65) 국무총리 후보자. 이 후보자를 계기로 일부 교사들이 선호지역에 근무하려고 위장전입도 마다 않는다는 사실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열악한 도서·벽지에 근무하는 교사 처우 문제와도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첫날인 24일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이 “(배우자의) 강남교육청 소속 학교 배정을 위해 위장전입을 했느냐”고 묻자, 이 후보자는 “그렇다. 그러나 (배정을) 포기했다”고 위장전입 사실을 인정했다.

이 후보자의 아내 김숙희(62)씨는 서울 소재 공립 중·고교에서 20여년간 미술 교사로 일하다 퇴직했다. 김씨는 1989년 3월2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남편과 함께 살다가 혼자 강남구 논현동으로 주소지를 옮겼고, 9개월 뒤인 그해 12월14일 다시 평창동 집으로 전입했다. 청문회 전까지만 해도 이 후보자는 이를 두고 “강동구 명일여고 교사였던 부인이 출퇴근 편의를 위해 실제로 강남으로 이사했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위장전입 사실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뉘우쳤다. “몹시 처참하다. 왜 좀 더 간섭하지 못했는지 후회도 된다. 아주 어리석은 생각에 그런 일이 저질러졌다. 왜 그런 엉터리 같은 일을 했냐고 다그쳤더니 몹시 후회하면서 ‘그쪽(강남 학교)이 좀 편하다’고 답했다. 여자의 몸으로 교편을 잡다보니 힘이 들었나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실행으로 가기 전에 (위장전입이) 원상회복됐다.”

1989년이면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일이다. 이 후보자도 스스로 “어리석은 생각” “엉터리 같은 일”이었다면서 참회했다.

그 시절 교사가 강남 8학군으로 위장 전입을 하는 건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 알아봤다.

‘8학군병’ ‘강남 위장전입’…1980년대 사회면 단골 이슈

1989년 2월 조선일보 기사들. 당시 강남 8학군 위장전입 문제는 신문 사회면에 자주 등장했다. /조선일보DB

‘위장전입’이란 키워드가 국내 언론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첫 10년 동안은 극성 학부모들이 자녀를 강남 8학군에 보내기 위해 악용하면서 주목받았다. 그 다음은 부동산이었다. 1990년대부턴 검찰이 신도시 아파트 청약을 노린 위장전입자 등 부동산 투기사범을 잇달아 단속하면서 문제로 떠올랐다.

경기고·휘문고·서울고·경기여고·숙명여고…. 강남불패 신화의 화룡점정은 단연 서울 명문고교의 ‘강남 대이동’이었다. 1970년대부터 중앙고·경복고를 제외하곤 명문고가 줄지어 강남으로 넘어갔고, 학부모들의 ‘강남앓이’도 시작됐다. 1980년대 말부터는 강남에 살면서도 위장 전입자에게 밀려 강북학교에 배정받는 학생도 생겨났다. 강북학교 배정에 분개한 강남 학부모 수십명이 서울시 교육위원회에 찾아가 단체 농성을 벌이는 일도 신문에 실렸다.

이 후보자의 아내 김숙희씨가 강남학교 근무를 위해 위장전입했던 1989년에도, 서울시는 한창 ‘8학군 위장전입’ 단속을 벌이고 있었다. 언론에도 일제히 보도됐다. 그해 3월 18일자 동아일보 사회면에는 ‘8학군 위장전입 색출 진통’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띈다. 서울시가 2300여명의 8학군 위장전입 추정자 명단을 넘겨받아 일일히 호구조사를 벌였지만, 적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다.

사흘 뒤인 1989년 3월 21일, 김씨도 논현동으로 위장 전입 신고를 했다. 이 후보자는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였다.

선생님도 강남을 좋아한다?

1982년 10월 13일자 경향신문은 학생 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강남 학교를 근무지로 배정받기 위해 ‘이사를 간다’고 보도했다. 기사 도입부는 이랬다. “학생 위장전입으로 말썽을 빚고 있는 서울 강남지역이 교사들에게도 1급 근무지로 꼽혀 이 지역으로 전출하려는 교사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 지역이 강북 등 타지역에 비해 생활수준이 높고 명문 학교들이 계속 이곳으로 이전하거나 신설되는 등 근무 조건이 좋기 때문이다.”

3년 전 정년 퇴임한 공립 고등학교 교사 A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1980년대 이후부터 강남은 지금까지도 서울지역 교사가 선망하는 ‘전통 경합지역’이에요. 저는 1989년 용산구의 한 고교에서 근무하다 다음 근무지가 반포쪽으로 내정됐다고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발표 직전에 인사가 뒤바뀌면서, 봉천동으로 가게 됐죠. 그만큼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5년이 지나 드디어 강남 학교로 갈 수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용산에서 근무할 때가 가장 재미있었어요. 1순위라는 강남권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다보니 강남 학부모 등쌀·지나친 관심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죠.”

서울 강북지역 고등학교 교사 김모(37)씨는 “학생이 강남 8학군으로 위장전입하는 것도 문제인데, 심지어 교사가 그 행렬에 가담했다는 건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니냐”고 했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교사 근무지 배정은 상당히 예민한 문제”라며 “1980년대에는 특히 강남 붐이 일기 시작했고, 교사 본인들의 자녀 역시 8학군에 보내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아, 강남학교 선호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2000년 중반 이전에는 일부 교사가 인사 배치를 위해 주소지를 강남으로 옮기는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주 드물다고 볼 수 있죠.”

청와대가 ‘객관적이고 투명한 (위장전입 문제) 적용안(案)’을 제시하고, 국민의당이 ‘대승적으로’ 협조하기로 하면서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31일쯤 통과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장관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2005년 7월’을 기준으로, 그 전에 위장전입한 사람은 ‘부동산 투기’만 문제 삼고, 이후 위장전입자는 국무위원 후보자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이 후보자의 위장전입은 ‘임용 배제 원칙’에서 빗겨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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