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박정희 유신독재 총격하고 처형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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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의 부마항쟁.
"캄보디아는 삼백만을 죽여도 까딱없는데 우리도 백만쯤은." 대책회의 자리에서 이런 말로 차지철이 박정희를 부추기더라고, 김재규는 회고한다.
"김재규는 차지철한테 피해의식이 컸다. '차지철을 죽여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고 김종필은 회고한다.
한때 살갑던 김재규와 박정희는 왜 멀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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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80년 5월24일, 김재규 사형 집행

1979년 10월의 부마항쟁. “캄보디아는 삼백만을 죽여도 까딱없는데 우리도 백만쯤은.” 대책회의 자리에서 이런 말로 차지철이 박정희를 부추기더라고, 김재규는 회고한다. 10월26일에 자기가 둘을 쏜 것은 이 때문이란다. 사실일까. 그렇다면 김재규는 독재자를 제거하여 더 큰 참극을 막은 셈이다. 김재규가 민주주의에 공이 있다는 쪽의 주장.
반면 민주주의와 관계없다고 보는 쪽도 있다. 김재규 역시 누릴 것 다 누리던 독재정권의 일원이었다고.(김형욱을 살해한 것도 김재규의 지시.) 그저 욱하는 성격 탓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김재규는 차지철한테 피해의식이 컸다. ‘차지철을 죽여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고 김종필은 회고한다.

어느 쪽 생각이 맞을까. 한때 살갑던 김재규와 박정희는 왜 멀어졌을까. 최근 새로운 견해가 주목받는다. 최태민의 정체가 알려지면서부터다. 유신정권 말기에, 최태민을 조심하라고 김재규는 건의했단다. 그런데 박정희는 박근혜를 핑계 삼아 최태민을 내버려두었다. 이 일 때문에 김재규가 회의를 품었다는 것. 이 의견은 사실일까? 아무려나, 김재규는 곧 체포되어 신군부에 보복당했다. 그가 처형된 날이 1980년 5월24일이다. 김태권 만화가, 일러스트 오금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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