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70] 길거리 키스하던 연인, 경찰에 연행.. 키스 신 촬영 땐 여배우 보호자 입회

김명환 前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장 2017. 5. 1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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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7월 4일 밤 11시쯤 서울 영등포의 한 버스 정류장 부근에 구경꾼이 40~50여 명이나 모여들었다. 젊은 커플이 남들 시선도 아랑곳없이 뜨겁게 키스를 하고 있었다. 행인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남녀를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연행해 즉심에 회부했다(조선일보 1975년 7월 5일 자). 지난 시절 연인들이 공공장소에서 키스했다간 누군가의 112신고로 경찰서 신세를 지는 수가 있었다. 가수 현미는 작곡가 이봉조와 연애하던 1960년대 초 어느 날 외딴 산속에서 키스하고 있었는데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며 들이닥쳐 기절초풍했다. 이런 사회에 맞서려는 듯, 1970년 4월 어느 남녀 대학생은 퇴근길 인파가 가장 붐비던 저녁 6시 30분에 서울 원효로 큰길에서 키스를 '감행'하곤 붙잡혀 갔다.

“너무나 추하니 ‘카트’해야 한다”는 비판까지 불렀던 영화 ‘자유부인’(1956년 작)의 키스 신(왼쪽)과 공개장소에서 키스하던 연인들을 경찰이 연행한 사건을 보도한 옛 신문 기사들.

일제 강점기엔 공공장소에서 키스하다가 일본 순사의 눈에 띄면 즉시 잡혀갔다. 1938년 8월 어느 날 밤 서울 서대문 거리에서 입 맞추던 연인은 부근을 지나던 경관에게 연행돼 '엄한 조사'를 받았다. 경찰 조서를 인용한 듯한 신문 기사 내용은 이렇다. "둘은 서로 눈이 맞아 호젓한 곳에서 사랑을 속삭여오던 중, 당야(當夜)에도 약속한 장소에서 서로 만나 그와 같은 지나친 행동을 하다가 발각되어 톡톡한 설유(說諭·말로 타이름)를 당하였다."

거리에서 키스하다 연행됐다는 보도는 1982년 7월까지 발견된다. 남녀의 키스라는 행위를 오늘보다 몇 배 더 무겁고 부끄럽게 받아들였던 시대의 자취다. 1960~1970년대 국내의 키스 관련 논란들을 돌아보면 키스를 거의 성관계에 버금가는 애정 행위로 여긴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여성에게 강제 키스를 한 성추행 사건은 '정조(貞操) 강도'라는 제목으로 보도될 정도였다. 1968년 크리스마스에 김포공항에 입국한 미국 여성이 주한미군인 남편을 만나 로비에서 키스한 일은 '사건'이 됐다. 다음 날 신문엔 이 일이 '공항서 키스 2분'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영화에서도 키스 신은 늘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1954년 한국 영화에 최초로 키스 신이 들어갔지만, 이후에 나온 '자유부인'(1956년 작)은 키스 장면 때문에 한때 상영 허가가 나지 않았다. 키스 장면이 들어간 포스터는 거리에도 못 붙이게 했다. 그래도 관객들에게 키스 신은 가장 큰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한 관객은 "영화 속 키스 장면에서 남녀 배우는 진짜 키스를 하는 것입니까"라고 신문사에 질문했다. 신문사의 답변은 이랬다. "일본에선 촬영 때 남녀 배우가 입에 거즈를 물고 깊은 교류가 없도록 방지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신중을 기하여 입술을 대는 이외의 깊은 기교는 없었다고 봅니다."(경향신문 1956년 6월 15일 자) 원로배우 고(故) 복혜숙씨의 회고에 따르면 한국 영화 초창기엔 키스 신 촬영 때 남편 또는 보호자가 입회한 가운데 엷은 종이를 입술 사이에 두고 연기했다고 한다.

키스를 이렇게까지 어마어마하게 여겼던 시대는 갔다. 이제 어떤 연인들은 공공장소에서도 '뽀뽀'를 넘어 키스까지 한다. 며칠 전 보도에 따르면 5월 대학가에선 처음 만난 남녀 학생이 여러 사람 앞에서 키스하는 '퇴폐 미팅'도 열리고 있다고 한다. 거리 키스한 연인을 경찰이 잡아갔던 일도 우습지만, 공개장소 키스를 가벼운 포옹처럼 거침없이 한다는 것도 썩 아름다운 일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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