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뭉크에게 영감을 준 '지구의 절규'
진주모운·야광운의 비밀
아주 춥고 습도 높은 날, 수십 km 상공에서 형성
온실가스인 CO₂·메탄.. '구름의 씨앗' 역할
최근 이런 현상 발생 늘어
유령처럼 일그러진 잿빛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다. 뒤로는 검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하늘에는 핏빛 구름이 요동치고 있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가 1893년 발표한 명작 '절규'이다. 누가 공포 앞에 몸서리치는 모습을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뭉크의 나라 노르웨이의 과학자가 절규 그림에 영감을 준 자연현상을 찾았다. 오슬로대의 헬렌 무리 교수는 지난달 말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지구과학연맹 연례 학술 대회에서 "뭉크의 절규에 묘사된 하늘은 '진주모운(眞珠母雲·Mother of Pearl Clouds)'이다"라고 발표했다.
진주모운은 고도 15~20㎞ 성층권에 생기는 구름으로 해 질 녘이나 동틀 무렵에 진주빛을 띤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과학계에서는 '극 성층권 구름(Polar Stratospheric Clouds, Nacreous Clouds)'이라 부른다.
2004년 미국 텍사스주립대의 천문학자 도널드 올슨 교수는 뭉크가 1883년 8월 26일 인도네시아 크라카토아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유럽까지 퍼져 하늘이 붉게 물든 것을 그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리 교수는 화산재가 퍼진 하늘은 뭉크의 그림처럼 물결치는 모양을 만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화산 폭발로 인한 영향은 수년간 계속되지만 뭉크는 그림을 그릴 당시 '하늘이 갑자기 핏빛으로 변했다'고 기록했다. 즉 절규는 갑자기 하늘에 나타난 진주모운이라는 일회성 사건을 그린 것이란 말이다.
과학자들은 진주모운은 습도와 온도라는 두 조건을 만족해야 생기는 희귀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추운 겨울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대류권에서 성층권으로 올라가면서 온도가 섭씨 영하 85도까지 내려간다. 이때 지름 1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의 얼음 입자가 생겨 구름을 이룬다. 지평선 아래로 내려간 태양에서 나온 빛은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 성층권의 구름에 부딪힌다. 낮은 고도의 구름에는 이런 빛이 닿을 수가 없다. 햇빛은 진주모운을 이루고 있는 옅은 구름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휘어지고 퍼지면서 물결처럼 요동치는 진주모운을 만든다.
지평선 아래의 태양이 빚어낸 밤하늘의 특이한 구름으로는 '야광운(夜光雲·Noctilucent Clouds)'도 있다. 과학자들은 극지의 고도 80~85㎞ 중간권에서 생긴다고 '극 중간권 구름(Polar Mesospheric Clouds)'이라고 한다. 영하 130도에서 생긴 구름이 햇빛을 반사해 밤하늘이 마치 야광처럼 밝게 빛나는 현상이다.
최근 야광운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위성 관측 결과 관측 지점도 극지방에서 위도 40도 아래까지 확장됐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를 유발한 온실가스들이 야광운 증가와 밀접한 영향이 있다고 본다.
야광운이 생기려면 진주모운과 마찬가지로 온도와 습도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공장과 자동차에서 뿜어낸 이산화탄소는 지표면에서 우주로 발산하는 열(적외선)을 흡수해 기온을 올린다. 극지연구소 김정한 박사는 "이산화탄소가 중간권에서는 주변의 열을 적외선으로 발산해 오히려 온도를 낮춘다"며 "이로 인해 구름의 씨앗이 될 얼음 입자가 더 늘어나 야광운이 빈번해지고 있다고 추정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온실가스인 메탄은 습도 조건과 관련이 있다. 대기 중 메탄은 지난 100년 동안 2배로 늘었다. 과학자들은 메탄이 대기 중의 산소와 반응해 물 분자를 만들고, 이것이 이산화탄소로 인해 온도가 내려간 중간권에서 얼어붙어 구름의 씨앗이 된다고 본다.
진주모운 역시 지구온난화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김정한 박사는 "진주모운의 씨앗이 된 수증기와 염소, 브롬이 태양에서 오는 자외선을 막아주던 오존층(O₃)을 분해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염소 원자 하나는 성층권의 오존 분자 10만개를 파괴할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뭉크는 하늘에 요동치는 핏빛 구름이 인류를 위협하는 지구온난화의 전조(前兆)임을 직감하고 절규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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