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김남희의 앉아서 하는 여행, 몸으로 읽는 책] (3) 인간은 그저 행인일 뿐입니다

김남희 도보여행가 2017. 5. 4.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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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갈라파고스 군도와 ‘마지막 기회라니?’

에콰도르령 갈라파고스 군도 해변에서 잠자는 바다사자 가족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18세기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포경 선원들이 고기와 기름을 얻기 위해 19만마리의 바다거북을 죽이기도 했다. 요즘은 생태계 보존을 위해 관광객들이 동물을 만지지 못하게 해서 동물들이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김남희 제공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오히려 인간을 무시하는 녀석들 덕분에 난 자연 그대로 아름다운 순간에 존재할 수 있었다. 지구에 하나 남은 자이언트 거북이, 울타리에 갇힌 삶을 원했을까? 멸종위기종 지켜야 하는 이유에 저자가 말하길 “그들이 없다면 세상은 더 가난하고, 쓸쓸한 곳이 될 것이다”

나는 결핍을 사랑한다. 내가 지닌 결핍이 결국 나를 풍요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아보지 못했기에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존경할 수 있었고, 고향이 없었기에 온 세계를 고향으로 여길 수 있었다. 가난했기 때문에 작은 것에도 행복해질 수 있었고, 약자였기 때문에 나처럼 힘없는 존재를 사랑할 수 있었다. 대도시에서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원시적 생명성이 들끓는 야생의 동물에게 매료되었다. 인간보다 더 오래 존재해왔으나 인간 때문에 사라져가는 그들은 마침내 나를 갈라파고스군도로 이끌었다. 나는 지구에 한 마리 남았다는 핀타섬 자이언트 거북이가 보고 싶었다. 이름부터가 ‘론섬 조지(외로운 조지)’인 거북이. 외로움에 예민했던 나는 한 종의 마지막 존재로 남은 그의 고독을 헤아려보고 싶었다. 만약 이 거대한 우주에서 우리만이 유일한 ‘지적생명체’라면 인간이라는 종 또한 외롭기 그지없는 존재이기에.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의 아이디어를 얻은 곳답게 영감의 대가를 선불로 계산하는지 경비가 몹시 비쌌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배에 올랐다. 다윈센터에서 우리에 갇혀 살아가는 늙은 조지를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내가 만약 혼자 남은 유일한 인간 종이라는 이유로 다른 종에 의해 보호되고 번식을 강요당하는 처지였다면? 과연 조지는 저 삶을 원했을까? 조지의 삶의 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로부터 받은 것일까? 기름과 고기를 얻기 위해 19만마리의 갈라파고스 거북이를 잡아 죽인 인간이 이제 마지막 한 마리를 살리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혼란스러웠지만 조지는 말이 없었다.

바다사자가 호젓한 갈라파고스 해변에서 하늘을 보고 누운 채 놀고 있다.
엄마를 찾아나선 바다사자 새끼가 내 엉덩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내 복잡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갈라파고스는 경이로운 세계였다. 갈라파고스에는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배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고, 인솔자의 동반하에만 섬에 상륙할 수 있고, 조개껍데기 하나도 가지고 나올 수 없고, 동물이 눈앞에 있어도 만지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곳의 야생동물은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다. 오히려 인간을 철저히 무시했다. 우리가 주연도 조연도 아닌, 지나가는 행인 역에 불과했던 덕분에 종종 아름다운 순간들이 찾아왔다. 해변의 해먹에 누워 책을 읽는 내 발밑에서 네 마리의 바다사자가 낮잠을 자던 오후가 있었고, 아기 바다사자가 엄마를 찾느라 내 엉덩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던 아침도 있었다. 앞발을 날개처럼 저으며 우아하게 헤엄치는 바다거북이를 오랫동안 따라가던 평화로운 순간도 머물렀다. 야생의 동물을 대면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과 야생의 그들이 얼마나 다른지를.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는 사자가 황홀할 정도로 당당하다면 동물원에 갇힌 사자는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무기력과 절망에 사로잡힌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야생의 동물들을 만난 후 동물원은 이제 폐기되거나 그 목적이 변해야 하는 곳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멸종위기 동물들을 찾아나선 이야기를 다룬 <마지막 기회라니?>.

그러던 어느 날 이 책 <마지막 기회라니?>를 읽게 되었다. 코믹 SF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와 동물학자 마크 카워다인이 1년간 멸종위기의 동물을 찾아다닌 이야기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을 꼽자면 유머다. 영국식 블랙유머를 사랑하는 이라면 거의 매 페이지마다 실실 웃게 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장면이다. 코모도왕도마뱀을 만나러 가기 전 이들은 호주의 맹독 전문가를 찾아간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뱀과 그 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묻는다. “박사님께선 독을 지닌 것 중에 좋아하는 게 있나요?” “있었지. 하지만 그녀는 날 떠났어요.” 지구의 생명체 중 가장 지독한 구취를 가진 코모도왕도마뱀을 시작으로 그들은 1년간 사라져 가는 것들을 만나러 다녔다. 200마리 남짓 남았다는 양쯔강돌고래, 22마리만 남은 북부흰코뿔소와 모리셔스섬의 로드리게스큰박쥐에 이르기까지. 그들 중 나는 카카포에 매혹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뚱뚱하고 무거운 새 카카포는 날기를 포기한 새였다. 저자의 표현처럼 ‘최초의 인간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순간부터 거의 모든 인류가 열망해 온 그것을 이 동물이 포기했다는 사실에는 뭔가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뉴질랜드에는 카카포의 천적이 없었고, 어디에나 과일이 넘쳐났다. 힘들게 날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카카포는 나무를 흔들어 열매를 주워 먹으며 오랫동안 걱정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인간을 따라 고양이와 개와 주머니쥐가 들어온 이후 상황은 바뀌었다. 자기방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이 순진하고 무력한 새는 순식간에 개체수가 수십만마리에서 마흔마리로 줄어들었다. 남은 새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다. 남아있는 모든 새를 코드피시섬으로 옮겨 인간이 발 딛기 전의 뉴질랜드와 똑같은 상태로 만들었다. 그 섬에는 카카포를 찾아내 보호하는 ‘카카포 수색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있는데 그들은 카카포를 찾지 않을 때면 고양이를 죽였다. 그들은 그 섬의 모든 고양이와 주머니쥐를 죽여 포식자가 없던 상태로 되돌렸다. 인간이란 이토록 기묘한 종이다. 이 세상을 창조한 절대자가 있어 이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갈라파고스에서 조지를 보며 느꼈던 의문이 다시 찾아왔다. 카카포의 천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고양이를 죽일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고양이와 카카포 사이의 우선 순위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단지 숫자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카카포의 생명이 더 존중받아야 하는 것일까. 섣불리 답을 할 수 없는 내 질문에 이 책에 등장한 모리셔스섬의 희귀 새를 지키는 조류학자 리처드는 단순하게 답했다. “우리는 많은 동물을 죽여야 해요. 위기에 처한 종을 보호하고 그것들에게 먹이를 주려면 그래야 하죠.”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여 취해야만 하는 인간의 삶도 그러하다. 희귀종을 지키는 일에도 살리기 위해 죽여야만 하는 생명운동의 운명적 사슬이 얽혀 있었다.

저자가 로드리게스큰박쥐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모리셔스섬은 인간에게 멸종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깨닫게 해 준 곳이다. 그 섬의 도도새가 멸종한 후에야 우리는 한 종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기 시작했다.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천국은 모리셔스섬을 본떠서 만든 것이라고 호기롭게 선언한 이후, 모리셔스에는 관광객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 후 ‘일어나서는 안되는 모든 일’이 이 섬에서 일어났다. 모리셔스의 생태계는 전쟁터가 되었다. 완강한 환경운동가나 동물학자는 당연히 관광객에게 적대적이지만, 책에서도 지적하듯 이 부분에는 딜레마가 숨어 있다. 누구도 야생동물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들의 서식지는 더 빨리 파괴되거나 그들은 밀렵꾼의 손에 멸종된다. 야생동물에게 관심을 갖게 만들려면 일정 정도 그들을 관광객에게 보일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또 다른 위험이 따라온다. 서식 환경과 생활방식이 교란되거나 면역력이 없는 질병에 노출될 수도 있다. 여행을 하고 여행에 대한 글을 쓰며 밥을 버는 나 또한 늘 겪는 딜레마다. 어떤 곳을 사랑하게 되어 그곳에 대한 글을 쓰는 순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은 그 매력을 잃어간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우리에게 없는 것들을 찾아 세계를 떠돌지만 결국 내 역할은 그렇게 찾아낸 세계를 내가 사는 곳과 똑같아지게끔 만들어버리는 데 불과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에게는 마크 트웨인만큼의 영향력이 없다는 정도일까.

이 책의 저자들이 야생동물을 찾아다닌 시기는 지금부터 30년 전이다. 그사이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배의 소음으로 음파탐지능력이 교란되어 프로펠러에 몸이 감겨 죽곤 했던 양쯔강돌고래는 중국 과학자들에 의해 2007년에 멸종이 선언되었다. 북부흰코뿔소는 현재 야생상태로는 모두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체코의 동물원에 있던 세 마리가 야생으로 옮겨와 보호 속에 살아가지만 후손을 잇지 못하고 있다. 희망적인 소식도 있다.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만날 가능성이 없으면서 나를 유혹한 새 카카포는 126마리까지 개체수가 늘어났다.

우리가 이들을 지켜야 할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이 책에서 마크 카워다인이 한 이 말보다 더 아름답고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코뿔소와 앵무새와 카카포와 돌고래를 지키는 데 인생을 거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더 가난하고 더 암울하고 더 쓸쓸한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이미 충분히 가난하고 암울하고 쓸쓸하다.

<김남희 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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