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결제 3시간 만에 진통제 배달.. 핀란드, 의료와 IT가 만났다
수년째 침체기인 핀란드 경제, 디지털 헬스 케어로 회복 나서
초고령화 사회가 촉매 역할.. 정부도 '3개년 계획' 세워 지원
앱으로 건강 관리·처방·배송.. 햇빛 부족 치료할 LED 제품도
핀란드 헬싱키에 사는 미르야(58)씨는 최근 스마트폰을 이용해 평소 복용하는 무릎 진통제를 주문했다. 먼저 직장 보험으로 이용하고 있는 사설 의료기관 메힐라이넨(Mehilainen)에서 만든 헬스 케어 앱을 다운로드받았다. 사회보장번호 등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본인 인증을 받자, 스마트폰 화면에 자동으로 처방전이 떴다. 약국을 선택하고 신용카드로 약값과 배송비 9.9유로(1만2000원)를 결제했더니 3시간 만에 직장으로 약이 배달돼 왔다. 약사가 전화로 복용 방법도 설명해줬다. 미르야씨는 "배송하는데 2~4일 걸리는 우편 주문보다 훨씬 빨랐다"며 "물리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경우를 빼면 앞으로는 앱을 이용해 약을 주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헬스·제약 산업과 모바일 기술이 결합한 서비스가 최근 핀란드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주로 사설 의료기관과 대형 약국, IT 기업 및 배송업체가 제휴를 맺고 건강 상담이나 약 배송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메힐라이넨이 작년 여름 내놓은 헬스 케어 앱은 다운로드 수가 30만 건에 이르고, 이 중 5만여 명이 약품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만성질환자들이 병원에 사전 등록하면 모바일로 원격 진료하고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유료 기능도 추가했다.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테르베이스탈로(Terveystalo) 역시 애플리케이션 이용자 수가 23만명에 달한다. 이르요 나르히넨 테르베이스탈로 이사는 "환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진료·처방 기록이나 복용방법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어 건강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인구 고령화 덕에 제약·헬스산업 성장"
핀란드 경기가 수년째 침체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약·헬스 산업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핀란드 고용경제부에 따르면 의료 기술과 디지털 헬스 및 관련 서비스 산업 규모가 50억유로(6조800억원)로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제약시장 판매 실적은 2015년 22억8300만유로(2조7700억원)에서 2016년 23억7200만유로(2조8800억원)로 3.8% 늘었다. 2010년 이후 6년째 성장세다. 지난해 제약 연구개발(R&D) 투자액도 전년 대비 3.2% 확대됐다. 유시 메리칼리오 제약업협회장은 "제약 산업 발전이 일자리와 정부 세수(稅收)를 늘려 핀란드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제약·헬스 산업의 성장에는 핀란드의 인구 고령화가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핀란드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20.66%(2016년)로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한국의 고령 인구 13.2%와 비교하면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나디아 탐미넨 보건산업 애널리스트는 "병원에 입원해 긴급한 치료를 받는 것보다 집에서 약을 먹으며 증상을 완화하고 컨디션을 조절해야 하는 만성질환자가 늘고 있다"며 "고령화가 진척될수록 새로운 의료 기술이나 신약개발뿐 아니라 관련 서비스업까지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얀네 올리-야르벤파 메힐라이넨 CEO는 "만성질환자는 처방받는 약의 종류와 양이 매번 비슷한데, 병원에서 짧은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데에는 2~3시간씩 걸린다"며 "나이 많은 환자들이 추운 겨울에 병원까지 오지 않아도 약을 처방하고 집까지 신속히 배송해주는 서비스 등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헬스 분야에 도전하는 스타트업
핀란드의 젊은 창업가들은 제약·헬스 산업과 IT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헬스' 분야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있다. 매년 헬스케어 분야의 새로운 디지털 기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등이 쏟아져 나온다. 헬스 스타트업 '발키(Valkee)'는 지난 2010년 충분한 햇빛을 받지 못해 걸리는 계절성 정서 장애(겨울 우울증)를 치료하는 LED 이어폰을 개발했는데, 최근 핀란드뿐 아니라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등 20여 개국에 수출할 정도로 성장했다. 매일 6~12분씩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빛을 쬐는 것과 유사한 자극을 뇌에 전달해 피로감을 완화하는 원리다. 또 다른 헬스테크 스타트업 '후올레티(Huoleti)'는 핀란드 기술혁신청(TEKES)의 자금 지원을 받아 의료 전문가들과 함께 암환자, 노인들을 위한 건강 관리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글로벌 기업 GE는 지난 2014년 헬싱키에 '헬스 이노베이션 빌리지'를 구축했다. 유망한 디지털 헬스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교류하기 위한 협업 창구다. 현재 35개 헬스 케어 분야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미코 카우피넨 GE헬스 이노베이션 빌리지 센터장은 "핀란드는 탄탄한 IT 경쟁력뿐 아니라 전 국민의 유전자 정보에 접근해 사업화할 수 있는 법체계도 잘 갖춰져 있어 GE의 디지털헬스 전초기지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핀란드 정부도 제약·헬스 산업을 침체된 경기를 되살릴 수 있는 핵심 분야로 보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작년 10월 핀란드 경제고용부는 '헬스 산업 성장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개인 맞춤형 헬스 케어, 유전자 정보 활용 연구 활성화, 헬스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 등을 목표로 대학 연구소와 병원, 스타트업 등에 연간 5000만유로(608억원)씩 투자하고, 국립암센터와 유전자 연구소 등을 설립하는데 1700만유로(207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올리 렌 핀란드 경제고용부장관은 "그동안 축적해온 전 국민의 의료 기록과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술력 등을 활용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세계 헬스 시장의 주도권을 쥘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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