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의 '롤모델' 되고, 30년 뒤에도 멋지게 살고 싶어"

김원진 기자 입력 2017. 4. 2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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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첫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

국내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인 박한희씨가 지난 20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국내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인 박한희 변호사(32)의 어릴 적 꿈은 로봇 박사였다. 학창 시절 방과 후 과학실에서 노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고 한다. 집에서는 로봇 만화영화 <전설의 용자 다간> <미래용사 볼트론>을 보는 게 낙이었다. 그는 남자 중·고등학교를 거쳐 포항공대(포스텍)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스무 살 넘어서까지 로봇 박사를 꿈꿨던 박 변호사는 지난 2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고 지난 14일 제6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박씨는 다음달 15일부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희망법)에서 변호사 겸 활동가로 일한다.

로봇 박사를 꿈꾸던 12살 박한희는 왜 20년 뒤 변호사가 되었을까. 박 변호사는 ‘MTF’(Male To Female·남성에서 여성) 트랜스젠더이다. 그는 커밍아웃을 한 국내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로 기록됐다. 변호사로서 첫발을 내딛는 그를 지난 20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성당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박 변호사는 대학 시절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남고도 잘 적응하며 다녔다. 하지만 4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던 대학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성 정체성 때문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증까지 왔다. 원래 계획했던 로봇공학 박사학위 취득은 포기했다. 졸업 후 전체 직원 중 95%가 남성인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그는 “성 정체성을 숨길 자신이 없었다”며 “내 성 정체성이 알려졌을 때 회사에서 잘릴 수 있을 것 같은 두려움도 들었다. 전문직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나 같은 트랜스젠더를 만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2013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 2014년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커밍아웃을 했다. 그는 “커밍아웃은 그 자체로 제게 ‘파멸’ ‘끝장’이었다. 성 정체성이 드러나면 모든 것이 부정당할 것이란 공포심이 컸다”며 “그런데 30살이 되면서 30년을 숨기고 산 건데 또 30년 숨기고 60살까지 살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일반 로펌이 아니라 희망법을 선택했다. “변호사 활동과 현장의 인권운동가 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희망법에서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일은 성별 정정 기획 소송”이라고 했다. 박 변호사는 “현재 성별 정정의 기준이 되는 대법원 예규에는 ‘명시적으로 생식능력이 없을 것’ ‘외과수술을 통해 생식기를 제거했을 것’ ‘반대 성의 외관을 갖췄을 것’ 등이 적시돼 있다”며 “저만 해도 외과수술을 전혀 안 했다. 현재 기준상으로 저는 무조건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 유엔에서는 성별 정정 시 외과수술 요구를 일종의 국가의 고문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트랜스젠더 등 성 소수자의 인권 사각지대로 군대를 꼽았다. 그는 “예전에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했더니 대다수가 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던 순간으로 군입대 전후인 20대 초반을 꼽았다”며 “징병 과정부터 예비군·민방위에 이르기까지 성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기 때문에 성 소수자들이 군대 앞에서 무력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방위를 받고 있는데 소집통지서를 통장이 집집마다 찾아와 직접 전달한다. 저도 한번 직접 문을 열고 받았는데 통장이 ‘본인 맞으세요’라고 묻더라”며 “트랜스젠더는 병무청으로부터 병역면제를 받으려면 고환 적출이나 외과수술을 받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간혹 군대 안 가려고 트랜스젠더인 척했다며 병역 기피자로 기소를 당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번 대선에서 성 소수자 문제를 바라보는 다수 후보들을 비판했다. 그는 “차별금지와 평등의 정신이 촛불의 기반이었는데 몇몇 후보는 기독교계를 찾아가 동성애 차별은 하지 않지만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며 “그렇게 말하면 보수 기독교계가 자신을 뽑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라고 말했다. 또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설거지는 여성이 하는 일’이라는 발언에만 초점을 맞췄는데 같은 자리에서 홍 후보는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는) 동성애는 난 그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며 “수술한 사람들은 고생했으니까, 주류 사회에 편입하려고 노력했으니까 인정해줘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언론에서도 설거지 발언만 지적했을 뿐, 성 소수자 혐오 발언은 지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의 꿈은 뭘까. 그는 “60살까지 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이라며 “또 다른 트랜스젠더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0대 성 소수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기대수명을 40세 아래로 적어서 너무 놀랐다. 눈물이 났다”며 “그만큼 주변에 나이 든 트랜스젠더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꿈을 적으라고 할 때 억지로 써넣었는데, 이제는 처음으로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됐다”며 “30년 뒤에 이런 인터뷰에 나와서 멋있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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