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는 싫으세요?
장애인 배지 보고 떠준 물 거부, 비장애인 직원에게 다시 요구
다리 끄는 모습 보기 안좋다고 테이블 청소 못하게 하기도
지난 17일 오후 10시 30분 서울 송파구의 한 스타벅스 매장. 검은색 앞치마 앞에 노란 '청각 장애 바리스타' 배지를 단 권순미(36)씨가 음료를 주문하는 손님의 입 모양을 유심히 살폈다. 권씨는 청각 장애 2급으로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 하지만 입 모양만으로 상대방이 하는 말을 귀신처럼 알아들어 단 한 번도 고객의 주문을 잘못 받은 적이 없다. 2011년 입사 이후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에 "언니 커피가 제일 맛있다"며 찾아오는 단골도 여럿이다. 그는 입사 4년 만인 2015년 장애인으로는 1호 부점장으로 승진해 현재 직원 10명을 데리고 일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2년 만에 점장 승진 후보군에 올라 최종 면접만을 남겨두고 있다.
2007년부터 장애인을 채용해온 스타벅스는 2012년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손을 잡고 체계적으로 장애인 바리스타를 양성하고 있다. 현재 전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190명에 달한다. 모두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남아 있어 어렵게 장애를 딛고 서비스업에 진출한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지난 주말 인천의 한 스타벅스 매장을 찾은 30대 아이 엄마는 청각 장애 3급인 정모(32)씨가 건네는 물컵을 받지 않고 머뭇거렸다. 정씨 가슴팍에 달려 있는 장애인 배지를 보고 당혹스럽다는 눈치였다. 이 엄마는 결국 정씨 옆에 있던 비장애인 직원에게 "아이가 마실건데 물 좀 새로 떠주세요"라고 요구했다. 정씨는 "장애가 전염병도 아닌데 일방적으로 내 서비스를 거부하는 모습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지난해 4월에는 청각 장애 2급인 바리스타 김모(33)씨가 다칠 뻔한 아찔한 사고가 일어났다. 경기도 한 매장에서 손님을 등지고 음료를 만들던 김씨에게 술에 취한 50대 남성 고객이 "내 말을 자꾸 무시한다"며 뜨거운 커피가 담긴 잔을 던진 것이다. 다행히 음료 잔이 빗나가 화상(火傷)을 입지는 않았지만 김씨는 한동안 주저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몸동작이 부자연스럽다고 서비스를 거부하는 손님도 있다. 지난 1월 뇌병변장애 6급인 이모(32)씨는 손님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치우려다가 "필요 없다"는 말을 들었다. 걸을 때 오른쪽 다리를 조금 끄는 모습이 보기 싫다는 이유였다. 이씨는 "대다수 좋은 고객들을 상대하며 희망을 얻다가도 간혹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강한 분들을 만나면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2016년 발표한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 조사'에 따르면 작년 장애인 고용 인구는 88만90명으로 전체 등록 장애인의 36.1%에 그쳤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장애인 바리스타들은 업무에 익숙해지는 첫 3개월만 잘 버티면 누구보다 일을 성실하게 한다"며 "편견에 상처받고 일을 그만두는 직원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애인 직원의 서비스를 받아본 고객이 늘어나면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부산의 한 매장에서 일하는 지적 장애 3급 김모(23)씨는 "장애인 바리스타를 기피하던 손님이 최근 내가 만든 음료를 마시고 '맛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며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편견이 사라진 빈자리에 조금씩 희망이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보다 근무 적응 기간이 다소 길게 필요할 수는 있지만, 일단 적응하면 꼼꼼하고 성실하다"며 "'장애인은 서비스를 못한다'는 선입견만 버리면 이들의 장점이 크게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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