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산책] 혁신 기술이 살아남는 법

2017. 4. 18. 18: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준연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산업제도연구실장
김준연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산업제도연구실장

합리적인 인간상과 효율극대화를 추구하는 사회를 가정하고 있는 주류경제학과 달리 진화경제학은 생물학적 관점을 따른다. 즉, 사람들 또는 기업들이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믿음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의도적 혹은 우연한 행위가 반복되어 사회에서 규범이나 관행(제도)을 낳게 되며, 이 관행 차이로 인해 사회는 보다 효율적으로 진화할 수도 있고, 반대로 비효율에 고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관행의 틀에서 갈등이 덜 일어나더라, 혹은 이익이 발생하더라 하는 경험과 예상이 강화되면,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자신의 손실을 줄이거나 이익을 늘리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이 관행을 따르는 사람들이 증가한다. 이쯤 되면 기술 변화 등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회적으로 비효율이 발생해도, 주위의 모든 사람이 준수하는 한 나도 따르는 것이 나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합리적 선택이기에 단지 몇몇 개인들의 주장만으로는 이 관행은 깨지기 어려워진다. 사실 우리 사회도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의 패러다임에서 기존 관행(제도)에 묶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비효율이 발생해서 많은 분들이 제도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그 변화의 속도와 성과는 답답할 정도로 더디다.

제도 변화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공인인증서가 아닐까 한다. 대통령의 천송이 코트 언급 이후, 금융위원회가 2015년 전자금융감독규정에서 공인인증서의 강제조항을 삭제했건만, 시장에서는 공인인증서가 보란 듯이 활개치고 있다. 2013년 3000만명 수준이던 사용자는 2016년 말 3545명으로 오히려 500만명 이상 늘었다. 사실 아직도 인터넷뱅킹, 증권거래, 전자세금계산서(국세청), 전자입찰(조달청), 전자민원(행자부) 등 많은 분야에서 공인인증서가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공인인증서 인증기관은 정부의 철저한 심사 절차를 통해 지정받기 때문에 공고한 시장위상을 보장받는 반면, 다른 후발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된다. 금융결제원, 코스콤, 정보인증, 전자인증, 한국무역정보통신 총 5개 인증기관이 철옹성 같은 생태계의 중심에 굳건히 버티고 있고 이들 기업의 공인인증서 매출은 최근 증가하고 있다. 과연 공인인증서에서 벗어나는 해법은 없는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비바리퍼블릭카의 토스(toss)라는 앱서비스는 누군가에게 송금하면 본인이 지정한 계좌에서 돈을 인출한 후, 토스와 협력한 은행에 입금하고 해당 은행은 그 돈을 다시 상대 계좌에 입금한다. 사실 이는 기존 자동이체와 같아서 돈을 받는 사람은 토스 앱을 따로 설치할 필요가 없으며, 공인인증서는 물론, 보안카드, 액티브 엑스 조차 필요 없다. 게다가 상대방의 계좌 번호를 몰라도 전화번호를 선택 후 문자메시지를 통해 송금할 수도 있다. 이 서비스의 누적 송금액이 3조에 육박하면서 네이버와 카카오도 뛰어 들었다. 여기에 사용된 기술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자동이체라서 쉽게 수용할 수 있다. 공인인증서 제도를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도,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로 제도장벽을 피해서 우회한 사례다.

한 술 더 떠서, 삼성은 이달 말 지문·홍체 같은 이용자 생체 정보를 등록한 뒤 이를 블록체인 방식으로 여러 사용자의 PC에 분산 보관했다가 금융 결제까지 연결하는 신 개념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한다. 앞으로 간편하고 안전한 블록체인이 공인인증서를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금융을 넘어 물류, 유통 등 활용분야가 넓다보니 블록체인 경쟁에 SKC&C, 현대도 뛰어들고 있다. 토스가 기존 제도를 그대로 둔 채 우회한 전략이라면, 삼성SDS는 블록체인 같은 신기술을 들고 나와 공인인증서 자체를 교체하는 전략인 셈이다.

한편, 4월 3일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영업 사흘 만에 가입자 8만 명을 유치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6월이면 카카오뱅크도 서비스를 시작한다. 가입자와 계좌 개설이 급증하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산업자본 대주주의 투자를 전제로 출범한 것이라,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를 허용하는 법률안 통과가 늦어질수록 자본잠식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사실 1961년에 시작된 은산분리법은 뿌리도 깊어 쉽사리 바뀌기 어려운데, 이렇게 일단 출발해서 사회적 수혜자가 증가하고 참여기업도 늘어나면 거꾸로 제도를 바꾸자는 사회적 합의도 보다 쉬워질 수 있다. 여기에 은산분리법 자체가 없는 중국과 유럽, 그리고 산업자본이 일반 은행의 지분을 25%까지 보유할 수 있는 미국의 사례는 국내 제도변화를 추동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를 포지티브 피드백 전략이라 하는데, 메기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앞선 사례들은 제도가 사회 혁신을 견인할 수도 있지만, 기존 제도가 혁신을 가로 막아도 참신한 아이디어로 우회하고, 신기술로 대체할 수 있으며, 또한 우연 속에 내재한 필연적 진화를 촉발하는 민간의 다양한 실험과 도전도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를 한마디로 하면, 세상은 말만으로는 변하기 어렵고, 뭐라도 저질러야 한다는 것이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