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악의는 없다>-보통의 그녀 '뚜엣'이 이렇게 멋진 이유
‘뚜엣’은 베트남 출신의 여성 이주민이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가족 부양을 위해 한국 시골에 왔다가 성실한 농장주 ‘짠구 씨’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갑자기 죽고 난 후, 그녀의 삶은 극적 위기에 처하고 만다.
최근 여성 캐릭터에 대한 논의가 눈에 띄게 활발하다. 서사 속 여성 캐릭터든, 캐릭터로서의 여성 연예인이든, 한국의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반영·재생산하거나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 주된 비판 지점이다. 여성 아이돌의 무대의상, 화보 및 뮤직비디오 콘셉트, 게임이나 만화 속 여성 캐릭터의 선정성 등이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렇다고 비판만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논의도 적지 않다. 영화 <비밀은 없다>나 <캐롤>의 여주인공들, 게임 <오버워치>의 여성 캐릭터들이 그 예다. 이러한 비판과 의미 부여는 창작자를 비롯한 문화산업 종사자들에게 계속해서 다채로운 여성 형상을 고민할 것을 요구하는 적절한 움직임이다.
그렇다면 웹툰은 어떨까? <판도라의 선택>, <카산드라>, <죽어도 좋아>, <어쿠스틱 라이프>, <환관제조기>, <내 ID는 성형 미인> 등 여성 작가들의 작품 속 여성 캐릭터는 대체로 다채롭게 빛난다. 물론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 해도 아쉬운 여성 캐릭터는 존재한다. 남성 작가의 작품에 천편일률의 여성 캐릭터가 더 많을 뿐이다. 확실히 남성 작가의 작품에서 퍽 괜찮은 여성 캐릭터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악의는 없다>의 ‘뚜엣’은 그 진귀한 예다. 그런데 여성으로서의 캐릭터가 빛난다기보다는 ‘뚜엣’에 대비되는 요소들이 그녀라는 강인한 사람을 빛나게 한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여성 캐릭터 논의와는 꽤 빗나갈 이야기가 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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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쟁이 작가의 만화 「악의는 없다」에서 뚜엣의 두려움이 보여주듯, 저출산의 원인은 사회에 있다. 사회를 주인공으로 두고 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 네이버웹툰 |
‘깜녀’라고 불리지만 기죽지 않고
‘뚜엣’은 베트남 출신의 여성 이주민이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가족 부양을 위해 한국 시골에 왔다가 성실한 농장주 ‘짠구 씨’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어 예사소리, 된소리, 거센소리 발음이 조금 어색해서 ㅊ을 ㅉ으로, ㅅ을 ㅆ으로 발음하곤 하지만 의사소통 능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전처와 사별한 후로 마을 처자들에게 상당한 구애를 받던 찬구에게 뚜엣은 믿음직스러운 동반자다. 반면 찬구의 이미 장성한 아들 무곤에게는 ‘깜녀’라고 불리며 미움 받으면서도, 기죽지 않고 쾌활하게 대처하고 있다.
여기까지라면 유달리 운 좋고 밝은 이주민 여성 캐릭터 정도로 이해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찬구가 갑자기 죽고 난 후, 그녀의 삶은 이주민 여성이기에 더 괴로운 극적 위기에 처하고 만다. 그 위기 속에서 드디어 새로운 여성 캐릭터가 만들어지지만, 그 전에 짚어두어야 할 것은 그 위기를 만든 다른 두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다.
먼저는 남성이며 마을 공보의이자 살인마인 악역 윤지후다. 바로 그가 찬구를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했다. 하지만 뚜엣은 찬구가 자살했을 리 없다고 끈질기게 버티며 진상을 찾아 헤맨다. 윤지후는 그런 뚜엣마저 죽이려 든다. <악의는 없다>는 표면상 ‘강한 악인’ 윤지후와 ‘약한 선인’ 뚜엣의 대결을 그린, 약간은 뻔한 스릴러물이다. 하지만 그 대결을 기믹(속임수)으로 파악하고, 강약의 조건에 주목해 보면, 이 작품은 잘 짜인 사회극이다. ‘강자’와 ‘약자’를 가르는 또 다른 주인공 때문이다.
윤지후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뚜엣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게임의 배경이 되는 것은 ‘한국 사회’ 혹은 ‘시골 사회’라는 가장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닌 주인공이다. 이 사회를 그저 시골 사회로만, 배경으로만 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배경은 주어진 것이고 상황에 따라 변하지만, 사람은 함께 살아가며 상황만큼이나 생각과 관계에 따라 변한다. 그러한 ‘사람들’의 사회가 유달리 뚜엣에게만은 변함없이 적대적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외국인 노동자’라고 불리는 이들을 대하는 방식과 유사하기에, 그저 시골 사회만의 이야기일 수 없다. 서울 구로나 경기도 안산 등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한 방식을 겪은 지역에서는 이미 선연한, ‘가난한 나라’ 이민자들과 함께 사는 ‘한국 사회’의 특징이자 인터넷 댓글에는 아주 만연한 한국 사회의 속내다. 뚜엣을 “동남아 가시나”라고 부르는 ‘한국 사회’의 속내는 “게으르고! 얍삽하고! 돈 밝히고!! 그라고 차별은 하지 말라카제. 차별당할 짓을 말아야지!”라는 대사에, “느그 나라 연봉을 월급으로 주는데! 그라모 느그 나라서 굽신거리는 거 열 배는 해야 안 되나?”라는 대사에서 확연하다. 그리고, 이 사회적 적대에 대한 대응에 뚜엣 캐릭터의 특징이 있다.
뚜엣은 모든 적대에 ‘그녀 자신’으로서 대응한다. <마스크걸>의 모미처럼 마스크를 쓰거나 다른 사람으로 살려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의미에서가 아니다. 그녀는 ‘베트남 출신’인 ‘사람’이자 ‘짠구 씨의 아내’이며 둘 사이에 생긴 뱃속의 아이 ‘또복이(태명) 엄마’다. 여러 정체성을 가진 그녀가 그것들에 기반해 행위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흥미롭게도, 그녀에게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기란 어렵다. 그녀는 스스로 ‘한국인’이 아니란 것을 너무 잘 알며 지향하지도 않는다. 지금 한국 사회를 그린 주류 대중문화에서 한국인이 아닌 존재‘로서’ 행위하는 것이 뚜엣만큼 뚜렷한 경우는 없었다. 그녀는 힘들 때 베트남에서 배운 말들을 떠올리고, 자신의 베트남어 이름에 부여된 의미를 떠올리며 살아간다. 자신이 떠나온 곳을 알고 기억하며, 그곳에서 배운 사람으로서의 해야 할 바를 한다. 그녀의 보편적 행위 준칙은 베트남에 있지 한국에 있지 않다.
‘아내이자 엄마’라는 소중한 가치
따라서 그녀는 ‘한국적으로’ 차별하지 않는다. 권위를 지닌 이의 말이라고 더 믿고 약자의 말이라고 덜 믿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전문가이자 의사로서의 윤지후를 존중하다가도 결국 의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왜 나는 항상 범인보다 나를 먼저 증명해야 함미까? 내 말에도 색이 있슴미까?” 그 자신이 소수자로서 말의 진실에 앞서 자신을 신뢰할 만한 존재로 ‘증명’해야만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녀는 한국에 온 이후 그녀에게 소중한 가치가 된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것 역시 사회적 개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글 선배 박총에게 배운 것이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무척이나 귀한 인간적 자기애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늘 ‘사람’으로서 대응한다. 그녀는 피해자의 위치에 서지 않고 사람으로서 발화하고 대응한다.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자각할 때에도 그녀는 자신이 입은 피해가 아닌 상대가 행한 가해의 부조리를 먼저 따지고 든다. 이는 피해 입은 자신을 ‘피해자’로 쉽게 치환하지 않는 일일 뿐만 아니라, 가해한 자를 ‘가해자’로 치환해 버리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가해한 자들이 생명의 위협에 처했을 때, 도울 수 있는 것은 그래서다. 피해도 가해도 영속화하거나 정체화하지 않으며, 사람으로서 할 일을 누구에게나 차별하지 않고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뚜엣의 모습은 정말 특색있게 멋있다기보다는 평범하게 보편적이다. ‘보편성’을 지닌 캐릭터가 대체로 남성·서구·백인이었던 과거의 경향을 돌이켜 보면 특이하긴 하지만, 여성 캐릭터로서의 매력이라고까지 말할 것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렇게 평범하게 보편적인 ‘뚜엣’과 대비되며 드러나 보이는 것은 바로 ‘주인공’으로서의 한국 사회다. 사회의 악의가 거셀수록 그것은 자연스러워 보이고 바뀔 길이 요원해 보인다. 마치 악의가 없는 것인 양 보이기까지 한다. 반면, 차별받는 자는 피해를 입어도 싼 피해자가 아니면 곤경을 물리친 영웅이 된다. 결국 영웅의 방식이나 인물됨이 주목받지만, 바로 이 모양새가 문제다. 앞서도 말했듯, 차별받는 자도 주인공이되 차별하고 동조하고 묵인하는 자들도 역시 주인공이다. 차별금지법을 기다리는 건 그저 한국적으로 큰 죄책 없이 악의를 행하는 보통의 ‘주인공’들이 스스로를 자각하고 보편의 사고를 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조익상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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