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포토저널리스트가 기록한 위안부 할머니

조태성 2017. 4. 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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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포토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의 남ㆍ북한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취재 기록이다.

남한 26명, 북한 14명 등 모두 90여명의 여성을 취재했다.

이토 본인이 "일본인이자 남성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자문"해야 하는,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취재였다.

하지만 이 목소리를 기록해두는 게 일본인 저널리스트의 역할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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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책] 기억하겠습니다
일본에 근로정신대로 끌려갔다 위안부가 된 강덕경 할머니. 일본 미에에서 할머니의 증언을 들은 한 일본 여성이 북받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알마 제공
함경남도의 정옥순 할머니가 일본군이 훼손한 몸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 여성은 중국전선에 보내졌는데, 이 쪽 일본군이 가장 잔혹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생존자 할머니들의 증언은 차마 들을 수 없는 참혹한 내용들이 많다. 알마 제공
중국, 대만, 싱가포르, 미얀마로 일본군에게 끌려 다니다 광복 뒤 고향 평남으로 되돌아간 박영심 할머니. 중국군에게 붙잡혔을 때 미군이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 속 임신한 여자가 박 할머니다. 알마 제공

기억하겠습니다

이토 다카시 지음ㆍ안해룡 등 옮김

알마 발행ㆍ332쪽ㆍ2만2,000원

일본인 포토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의 남ㆍ북한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취재 기록이다. 이토는 1981년 히로시마ㆍ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를 취재했다. 이 때 조선인 7만명도 피폭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전쟁을 일으킨 건 일본이었지만, 피해는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이후 식민지 피해자들을 찾아 다녔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도 만났다. 남한 26명, 북한 14명 등 모두 90여명의 여성을 취재했다. 이토 본인이 “일본인이자 남성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자문”해야 하는,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취재였다. 하지만 이 목소리를 기록해두는 게 일본인 저널리스트의 역할이라 믿었다. 그 가운데 남북한 14명 할머니에 대한 기록을 모아 낸 책이다. 당연하게도 이토는 2016년 발족한 ‘화해치유재단’에 대해 “국가로서의 사죄가 없다”고 비판해뒀다. 할머니들의 증언 동영상을 일본어판, 영어판, 한국어판으로 제작한 동영상을 웹사이트(http://artic.or.jp(http://artic.or.jp/))에 공개하는 프로젝트도 곧 시작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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