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간판 뗀 벤처맨들, 글로벌 시장 누빈다
- 삼성 C랩 출신 스타트업 25개
직원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 사장시키지 않고 벤처로 살려내
- 실리콘 밸리 스타일로 변화
조직 전체에 창의적 마인드 전파.. 글로벌 감각 갖춰 성공확률 높아
솔티드벤처 조형진(32) 대표는 지난달에만 세 번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 다녀왔다. 압력센서를 이용해 골프스윙을 할 때 체중 이동정보를 알려주는 스마트 슈즈 '아이오핏'의 5월 출시를 앞두고 위탁생산 계약을 한 공장을 찾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2년 전 그는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공정 설계를 담당했다. 사내 창업지원 프로그램 C랩(크리에이티브 랩)에 스마트슈즈 아이디어가 채택되며 '스핀오프 1호' 기업으로 동료 직원 4명과 함께 독립했다. 회사에선 초기자본금 5억원을 투자했다. 이후 지난해 글로벌 온라인 펀딩 캠페인 킥스타터에서 10만달러(약 1억1200만원)를 모았고,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CES 2017)에서 웨어러블 분야 혁신상까지 받았다.
삼성전자의 사내 창업 프로그램인 C랩에서 성공적으로 독립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4월 현재 키즈와 화장품 분야 제품을 개발한 5개 기업이 새로 독립하면서 2015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25개의 스핀오프(spinoff·사내에서 개발한 아이디어를 사업화해 분사하는 것) 스타트업 기업이 탄생했다. 2012년 12월 C랩을 처음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 150건이 넘는 아이디어가 개발됐고, 현재도 50개 이상 개발되고 있다.
◇'삼성맨' 떼고 스타트업으로 가는 사람들
올해 삼성전자에서 독립한 모닛의 박도형(45) 대표는 아기 띠에 센서를 부착해 대소변 상태를 실시간 체크하는 스마트 아기띠 '베베핏'을 개발했다. 무선사업부 디자인팀에서 근무했던 그는 두 딸을 키우면서 얻은 아이디어를 제품 개발에 활용했다. 어깨와 허리의 통증을 줄여주는 혁신적 디자인은 박 대표가 전공을 살려 직접 담당했고, 대소변 감지 센서와 통신 시스템 개발은 엔지니어 출신 직원들이 맡았다. 박 대표는 "회사 내의 다양한 분야 인력들이 모여 정말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스핀오프 기업들이 개발한 제품들은 대부분 삼성전자가 직접 투자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것들이다. C랩 제도 덕분에 자칫 사장(死藏)될 수도 있는 직원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살아남은 것이다. 웰트의 강성지(31) 대표는 C랩 시절 참가했던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허리둘레와 활동량을 측정해 비만을 막아주는 스마트벨트가 과연 사업성이 있을까' 의구심이 컸지만 해외 바이어들의 반응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강 대표는 "올해 CES에서 가져간 샘플 100여 개가 완전히 동나는 것을 보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며 "해외 바이어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모아 제품 개발에도 활용했다"고 말했다.
2015년 독립한 이놈들연구소는 손가락 끝을 귀에 대면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 신개념 스마트 시곗줄로 미국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약 150만달러를 모으는 데 성공했고, 중국 최고 창업육성 기관인 창업방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C랩은 이재용 부회장이 추구해온 '실리콘 밸리 스타일' 혁신의 모델이기도 하다. 실제로 구글·시스코 등 실리콘 밸리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사내 벤처를 육성해 독립시킨다. 직원들은 일단 C랩에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1년간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나 별도 공간인 'C랩존'에서 아이디어 사업화에 몰두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C랩은 참여하는 직원들의 창의적 마인드를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에 혁신 분위기를 전파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창업 지원 '스핀오프' 독려 기업 늘어
사내 창업을 독려하는 문화는 최근 대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2000년대 초반 IT기업 분사(分社) 바람에 이은 두 번째 움직임이다. 국내 대표적인 IT기업인 네이버도 이해진 창업자가 삼성SDS에 근무하면서 시작한 사내 기업이 모태다.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 하반기부터 사내벤처를 육성하는 '린(lean) 스타트업' 체제를 가동시켰다. 직원 3~4명이 팀을 이뤄 뷰티 관련 프로그램을 제안하면 회사는 심사를 거쳐 신사업TF(태스크포스)로 발령낸다. 사내벤처 팀원은 본사를 벗어난 별도 사무 공간에서 최소 2년간 프로젝트를 운영할 수 있다. 작년 4월 처음으로 사내벤처 공모를 실시했던 LS전선도 현재 2기 벤처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LS전선의 벤처 사업팀은 2~3명의 직원으로 구성되며, 최대 3년간 회사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벤처협회 명예회장)은 "실리콘 밸리에서도 실제로는 대학 창업보다 특정 기업에서 독립해 창업하는 스타트업의 숫자가 80~90%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며 "한국도 스핀오프 창업뿐만 아니라 향후 스타트업이 성장했을 때 이를 인수·합병하는 순환 모델까지 만들어져야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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