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의 UFC Express] '타도, 앤더슨 실바'의 꿈을 이룬 사나이, 와이드먼

오는 일요일 열리는 UFC 210의 메인이벤트는 다니엘 코미어와 앤소니 존슨 간의 2차전이지만, 코메인인 크리스 와이드먼과 게가드 무사시의 대결도 격투기 팬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연패를 딛고 재기전에 나서는 크리스 와이드먼을 좀 소개해 볼까 합니다.


전 UFC 미들급 챔피언 크리스 와이드먼은 ‘앤더슨 실바를 이긴 사나이’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와이드먼의 실바 전 승리는 UFC 미들급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승부였죠. 앤더슨 실바, 비토 벨포트 등으로 대표되는 구세력이 물러나고 크리스 와이드먼, 루크 락홀드 등이 이끄는 새로운 맹수들이 득세하는 첫걸음이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 앤더슨 실바 전에 이르기까지 와이드먼이 달려온 여정은 실로 험난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했던 레슬러, 와이드먼

많은 UFC 챔피언들이 그렇듯 와이드먼도 레슬러 출신입니다. 그런데 와이드먼은 레슬링에서 ‘1등’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와이드먼의 별명이기도 한 ‘올 아메리칸’은 미국의 고교나 대학 스포츠에서 각 종목마다 매 해의 우수한 선수들을 선정하는 개념으로, 농구나 축구의 올스타 팀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즉, ‘올 아메리칸’이 ‘전미 챔피언’은 결코 아니란 얘기입니다. 와이드먼은 본인의 고향인 뉴욕 주 챔피언에 등극한 후 고교와 대학에서 모두 올 아메리칸에 선정되었으나 전국 대회에서 우승하지는 못했습니다. 대학 졸업반 때 거둔 전국 3위가 최고 성적이었죠.

레슬러 시절 와이드먼의 모습

대학 졸업 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맹렬히 훈련하던 와이드먼은 선발전 직전 부상을 입게 됩니다. 눈앞이 캄캄했겠죠. 다음 올림픽까지는 무려 4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하니까요. 이 때 가브리엘 토리비오라는 친구가 레슬링을 도와달라며 UFC 웰터급 챔피언 출신 맷 세라의 주짓수 체육관에 와이드먼을 초빙하게 되었고, 여기서 그의 인생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와이드먼은 주짓수 경험이 전무 했으나, 수련 3개월 만에 시합에 출전해 본인 체급 및 무제한급까지 우승을 차지하는 괴력을 보여줍니다. 그날 총 열 세 번 싸웠는데 열 세 명의 상대에게 모두 탭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 술 더 떠 그로부터 9개월 후엔 전 세계 최고의 그래플링 대회로 꼽히는 ADCC에 미국 대표로 출전합니다. 비록 세계 최강의 주짓떼로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안드레 갈벙에게 패배하며 탈락했지만, 근소한 포인트 차에 의한 패배였을 뿐 와이드먼은 경기 내내 엄청난 힘과 기술을 보여주며 베테랑 갈벙을 괴롭혔습니다. 주짓수 수련 딱 1년 만에 거둔 와이드먼의 성과는 가히 충격적이었고, 당연히 전 세계 격투 마니아들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ADCC에 출전했던 와이드먼


장미빛만은 아니었던 종합 격투기 데뷔

맷 세라나 레이 롱고, 헨조 그레이시 등 여러 코치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종합격투기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와이드먼은 마음을 단단히 다잡기 시작했습니다. 레슬러 시절 분명 재능은 있었지만 훈련에 몰두하지 않아 이길 수 있었던 상대들에게 많이 졌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린 후, 격투기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고 원래 누구보다 늘 열심히 훈련했던 사람이었던 양 ‘연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연기의 결과는? 딱 1년 간 그렇게 연기를 했더니 훈련이나 생활 습관 등이 다 바뀌어서, 제일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로 변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연승 행진을 달리며 미 동부 지역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는 상황에서도,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프로 두 번째 승리를 거둔 후 심각한 손 부상을 입어 고관절을 떼어내 손 관절을 잇는 대수술을 받아 1년 간 링을 떠나야 했고, 돌아와 링 오브 컴뱃이라는 중소 단체 챔피언에 등극한 후 UFC의 문을 두드렸지만, UFC 측은 경험을 더 쌓으라는 답변과 함께 거절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각한 늑골 골절 부상까지 찾아오며 와이드먼은 또다시 잠정 휴업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당시 와이드먼은 종합격투가로서의 꿈을 거의 포기했다고 합니다. 부모님 집에서 어렵게 사는 부인과 자녀들의 모습, 레슬링 보조 코치로 근근이 생활비만 간신히 댈 뿐 부상으로 운동조차 못하고 있는 자신, 즉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종합격투가로서의 현실에 지칠 대로 지쳤던 거죠.

그 때 꿈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드디어 UFC에서 오퍼가 온 거죠. 하지만 이 선물은 결코 화려한 포장지에 싸여 있지 않았습니다. 대체 선수로 긴급 투입되는 것이어서 준비 기간은 고작 2주에 상대는 베테랑 알레시오 사카라, 거기다 와이드먼은 늑골 부상이 여전히 심해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와이드먼은 이런 악조건들을 딛고 당당히 판정승을 거두며 UFC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치러 냅니다.


UFC 데뷔전에서 베테랑 사카라를 잡아냈던 와이드먼


만만치 않았던 와이드먼의 UFC 적응기

데뷔전 승리 후에도 와이드먼은 계속 이런 급 오퍼를 받아 시합을 하곤 했습니다. 제시 봉펠트 전 때도 그랬고, UFC 최고의 그래플러로 꼽히는 데미안 마이아 전에서도 긴급 투입되었습니다. 특히 마이아 전에서는 열흘 전에 오퍼를 받아 무려 16kg를 감량하는 등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결국 여기서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경기에서 당시 최고의 상승세를 달리던 마크 무뇨즈를 꺾은 후 인터뷰에서 와이드먼은 앤더슨 실바와의 대결을 원하며 제대로 된 훈련 기간을 달라고 강조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 때 와이드먼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옵니다. 심각한 어깨 부상으로 수술을 받아 옥타곤을 오랫동안 떠나야 했고, 그 중간엔 태풍이 집을 강타하기까지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와이드먼과 가족들은 무사했지만, 집이 거의 다 붕괴될 정도로 피해는 엄청났다고 합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아리엘 헬와니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는 와이드먼


운명의 장난인지 인생이 원래 롤러코스터 같은 것인지, 이처럼 또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 와이드먼에게 갑자기 인생 최대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다름 아닌 앤더슨 실바와의 대결이었죠. 사실 와이드먼에게 앤더슨 실바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존재였습니다. 레슬러 시절 와이드먼은 원래는 UFC를 챙겨보지 않았었는데, 같은 레슬러 출신으로 늘 존경했던 댄 핸더슨이 앤더슨 실바에게 패배하는 걸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아 실바의 경기를 다 찾아보며 UFC를 본격적으로 보게 되었고, 종합격투가로서의 목표는 늘 ‘타도 앤더슨 실바!’ 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괜히 비웃음을 살까봐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늘 자신이 실바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꿈에 그리던 실바와의 대결, 벨트를 바라보는 와이드먼의 표정이 인상적이네요.


하지만 당시 앤더슨 실바는 그야말로 무적의 아우라를 풍기는 챔피언이었습니다. 미들급 타이틀을 무려 열 차례나 방어했고, 포레스트 그리핀이나 스테판 보너 같은 한 체급 위의 베테랑들도 농락하다가 이기는 등 포스가 어마어마했죠. 그래서 와이드먼 전에서 일반 팬들이나 도박사들은 대부분 앤더슨 실바의 승리를 예상했습니다.

포레스트 그리핀을 압도하는 실바의 모습


하지만 프로 선수들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많은 UFC 선수들이 와이드먼 쪽이 승리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는데, 그 중 조르쥬 생 피에르는 놀랄 만큼 정확하게 와이드먼의 반란을 예상했습니다.


- 조르쥬 생 피에르의 당시 예상
와이드먼 전은 앤더슨 실바에게 스타일 상 굉장히 위험한 매치업이다. 실바의 약점이 와이드먼의 강점과 그대로 겹친다. 와이드먼과 직접 훈련해 본 경험이 있는데, 그의 레슬링은 완전히 다른 레벨이다. 와이드먼은 실바를 그저 이기는 데 그치지 않고 피니쉬시킬 것이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릴 결과가 나올 것이다.


생 피에르의 말은 정확히 들어맞았고, 와이드먼은 챔피언에 등극해 받은 파이트머니와 보너스 등으로 새 집을 장만했습니다. 인생역전에 성공한 거죠.

실바를 KO시키는 와이드먼의 모습

6개월 후 치러진 재대결에서 실바는 1차전 때보다 더 고전하다가 정강이 골절이라는 끔찍한 부상까지 입으며 패배합니다. 이어 료토 마치다, 비토 벨포트 등 브라질을 대표하는 전설들을 꺾으며 와이드먼은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공표합니다. UFC 베테랑 출신으로 현재 FOX 방송국에서 분석가로 활동 중인 이브스 에드워즈의 당시 평입니다.

와이드먼은 비록 앤더슨 실바보다 덜 화려해 보이지만, 정말 강한 챔피언이다. 중국 왕조로 따진다면 앤더슨 실바는 명 왕조였고, 와이드먼은 청 왕조다. 와이드먼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챔피언이다.”


하지만 이번 주말 경기에 나서는 와이드먼은 어느 새 무관으로 전락해, 2연패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전설들을 정리하고 한 숨 돌리기도 전에 젊고 강한 경쟁자들이 잔뜩 나타났거든요. 오래 전부터 와이드먼의 진정한 라이벌로 꼽혔던 루크 락홀드가 와이드먼에게 첫 패배를 안겨 주었고, 올림픽 레슬링 은메달리스트에 빛나는 괴물 요엘 로메로는 플라잉 니 킥으로 더욱 충격적인 KO패를 선사했습니다.


로메로에게 패배한 직후 와이드먼의 모습


이번 상대인 게가드 무사시 역시 락홀드나 로메로에 결코 뒤지지 않는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는 강자입니다. 타격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천부적 센스를 지니고 있고, 나이는 젊지만 종합격투기 전적이 50전에 달할 정도로 경험도 많은 데다, 최근 4연승 행진을 달리며 상승세도 엄청납니다. 북미 언론에서는 연패 중인 와이드먼이 쉬운 상대를 택하지 않고 무사시 전을 받아들인 데 대해 용감하다며 칭찬을 보내고 있지만, 동시에 3연패의 늪에 빠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며 걱정 어린 목소리도 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타 단체 챔피언을 여럿 역임했던 무사시
레전드 댄 핸더슨을 KO시키던 무사시의 모습  


과연 와이드먼은 이제까지 늘 그랬듯 시련을 떨치고 일어나 다시 승자로 우뚝 설 수 있을까요?

아니면 본인이 미처 경험해 보지 못한 3연패라는 깊은 슬럼프 속으로 빠져들게 될까요? 결과가 어떻게 흘러가든 두 선수의 경기는 너무나 치열하면서도 수준 높은 명승부가 될 걸로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