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칼럼] 명동, 한국의 쓸쓸한 자화상

선우정 논설위원 2017. 3. 22. 03: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국을 잡으려다 정체성을 잃었다
중국이 빠져나간 뒤 중국말 呼客 소리만 처량하게 들린다
지금 한국이 이렇다

그제 오후 서울 명동을 몇 시간 돌아다녔다. 중국인 관광객이 끊겨 어떤지 궁금했다. 생각보다 거리는 북적였지만 가게는 한산했다. 거리를 걸으며 명동의 변질(變質)을 다시 느꼈다. 전통 맛집의 달달해진 찌개 맛을 보면서 내가 알던 명동이 사라졌다고 느낀 게 몇 년 전이다. 그땐 일본인을, 그 후엔 중국인을 잡으려다 정체성을 잃었다. 호객(呼客)하는 화장품 가게 점원의 중국말이 처량하게 들렸다.

상인만 탓할 일이 아니다. 강남에 밀려 쓸쓸하던 명동 거리에 한류 붐을 타고 일본인이 밀려들자 건물주가 임대료부터 올렸다고 한다. 중국인이 몰려들자 또 올렸다. 살아남으려면 상인들은 외국인 관광객의 기호에 맞춰 매출을 올려야 한다. 못 맞추고 못 벌면 퇴출이다. 줄 서서 기다리던 저가 화장품 업체와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당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 경박한 경제 논리가 10년 넘게 작동했다. 그 결과가 멋과 전통이 사라진 지금의 명동이다. 세계 어떤 중심 상권에서도 볼 수 없는 퇴행적 변화라고 한다.

명동에서만 이런 논리가 작동한 게 아닌 듯하다. 한·중 밀착이 경제에서 정치로 발전해갈 때 한국과 중국인이 어울린 술자리에서 이런 건배사를 들었다. '我們齊心合力 一起打倒日本鬼子' '우리 마음과 힘을 합쳐 일본○을 함께 물리치자'는 뜻이다. 당시 두 나라 술꾼들에겐 꽤 알려진 건배사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농담 삼아 일본 친구에게 했다. 과장된 술자리 잡담이지만 그는 놀란 듯했다. "같은 민주주의 나라인데 어떻게…." 함께 미국의 동맹이니 한·일 두 나라는 우방 아니냐고 했다. 그의 순진한 반응에 내가 놀랐다.

10여 년 전 일본엔 그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과 북한이 축구 시합을 할 때 한국인 상당수가 북한을 응원한다고 하자 "실망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민족과 이념에 대한 한국인의 이중 정서를 전하고 그 근원에 일제의 아픈 식민지 역사가 있다고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장할 때 반응은 이랬다. "미·중 사이의 균형자라니? 한국은 미국의 동맹 아닌가?" 일본도 미국의 동맹이다. 동맹을 유지하는 이상 일본은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본의 원칙론이 옳았던 것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일본은 한국의 '중국 경사론'을 줄기차게 제기했다. 한국의 무게중심이 중국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재작년 중국 천안문에 올라갔을 때가 절정이었다. 일본은 동맹의 원칙론을 주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한·미 관계를 이간질한다고 봤다. 국제 세미나에서 일본이 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나는 "몇 푼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통일을 위해서"라고 했다. 메아리가 없었다. 미국·일본인은 물론 중국인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통일은 한국의 고독한 문제일 뿐이다. 강대국의 게임에 끼워 넣지 말라는 투였다. 재작년 우리가 "통일을 위해 대통령이 천안문에 올라간다"고 했을 때 중국이 뒤에서 얼마나 웃었을까 생각하면 얼굴이 뜨겁다. 겉으론 간도 빼줄 듯했던 중국이다.

얼마 전 미 국무장관이 일본을 "가장 중요한 동맹국",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라고 했다. 말로 차등을 둘 필요는 없었다. 외교적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미국에 한·일의 가치는 원래 그랬기 때문이다. 미국이 태평양 국가와 맺은 군사동맹 중 미국이 원치 않았던 유일한 동맹이 한·미 동맹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우리의 앞선 세대가 다투고 매달려 얻어낸 동맹이란 것도, 동맹이 없었다면 중동과 같은 만성적 분쟁 지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 동맹은 한국이 나서서 감싸고 강화해야 유지될 수 있다는 것도 모른다. 알아도 모르는 척한다.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한국의 가치를 홀로 과대평가한다. 그러다 미국이 일본과 차별하면 흥분하고 분노한다. 이게 동맹을 대하는 그동안 한국의 패턴이다.

지금 명동은 한국의 자화상이다. 중국을 잡기 위해 그들의 입맛에 맞춰 하나 둘 변해가다가 거리의 정체성을 잃었다. 중국이 떠난 뒤 돌아보니 좌표까지 잃은 거리가 됐다. 그러면서도 어떤 정치가들은 호객하는 화장품 가게 점원처럼 중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당하면서 중국이 합리적 상대라고 믿는다. 균형자 꿈에서 깨지 않는다. 한·미 동맹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마구 다룬다. 미국이 이런 한국을 변함없이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다수는 그런 세력을 응원하고 있다. 세상은 동쪽으로 달리는데 한국만 서쪽으로 달린다. 대선이 끝난 뒤 그 역풍(逆風)을 국민 모두가 실감할지 모른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