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3호분을 해부한다(4) - 공무 생활과 행렬도
그래서 서쪽 곁방으로 들어가는 벽면의 좌우에는 '장하독(帳下督)'이라는 시종 관료가 그려져 있다. 동수의 묘지 묵서가 장하독의 머리 위에 쓰여 있기 때문에 동수가 무덤 주인공이냐, 아니면 장하독이냐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동수가 무덤 주인공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점은 이미 언급한 바이다. 자, 그러면 동수의 공적 생활을 벽화를 통해 살펴보자.
무덤의 널길 동서 양쪽 벽에는 의장대열이 그려져 있는데, 보존 상태가 나빠 지금은 붉은 방패와 창만 겨우 보일 정도이다. 이처럼 무덤 입구의 널길에 의장대를 그려 넣은 것은 안악3호분에만 보이는 특징으로, 무덤방의 주인공에 대한 의례적 위상을 높이는 효과를 의도한 듯하다.
앞방 남벽은 널길로 통하는 문을 기준으로 동서 양 벽으로 나뉘어지는데, 양쪽 모두 검은 가로선을 그어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그림을 배치하고 있다. 서측 상단에는 바지와 저고리를 입은 두 남자가 마주 보며 커다란 뿔나팔을 불고 있고, 하단에는 큰 북을 두드리고 무릎을 꿇고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도포 차림의 4인의 악사가 그려져 있다. 모두 무덤 주인공이 거느린 악대를 표현하고 있다.
동측에는 상단에 화개, 각종 깃발, 절(節) 등을 든 7명의 의장기수가 그려져 있는데, 다채로운 의장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앞에 있는 4명은 거의 같은 복장으로, 긴 두루마기에 허리띠를 동여매었으며 작은 깃발을 들었다. 뒤의 세 명은 각각 색이 다른 바지와 저고리를 입었고 다른 의장구를 들었다. 갖가지 의상과 깃발 등으로 의장대의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들 부월수는 다른 벽면에도 그려져 있다. 동측 곁방 입구 오른쪽 벽에는 수박희 장면과 도끼를 든 부월수(斧鉞手)의 대열이 상하 두 단으로 나뉘어 그려져 있다. 대행렬도에도 도끼를 든 병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앞방에 두 군데나 그려진 의장대 혹은 병사로서의 부월수와 같은 인물들일 것이다.
사실 안악3호분에는 서역계 요소가 적지 않다. 위 서역계 무용수와 춤은 물론 비파 등 악기도 서역계이다. 앞방 수박희 장면에서도 대결하고 있는 한 사람은 높은 코와 큰 눈으로 보아 서역계 인물로 보인다. 동쪽 곁방 부엌그림에서 부뚜막에는 속이 보이는 투명한 그릇이 놓여 있는데, 유리그릇이라면 서역으로부터 들어온 것이다. 안악3호분 안에서만도 이렇듯 여러 서역계 인물이나 문화요소가 발견되니 당시 고구려의 활발한 대외 교류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살피도록 하겠다.
이제 회랑으로 들어가보자. 회랑은 널방의 동벽에서부터 북벽까지 'ㄱ'자로 둘러싸여 있다. 이 회랑의 남쪽 벽면에는 고상식 건물이 그려져 있으며, 동쪽 벽면에는 25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로 구성된 '행렬도'가 그려져 있다. 이 행렬도의 길이만도 10m에 이른다.
이 행렬도는 행렬의 앞부분 무리와 주인공을 호위하는 중간 행렬을 그렸을 뿐이다. 그림에서 그리지 않은 행렬 뒷부분까지 고려하면 본래 전체 행렬 구성은 300명이 넘는 규모로 추정할 수 있겠다. 행렬도의 규모가 방대하며 전체가 매우 장중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무덤 주인공의 위엄과 권력을 과시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행렬도를 보면 소가 끄는 수레를 탄 무덤 주인공은 행렬의 3분의 1 정도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인공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악대가 노래와 연주를 하고, 춤을 추며 나아간다. 수레 뒤쪽으로는 의장 기수, 시녀, 말을 탄 문관 등이 뒤따르고 있다. 이들의 좌우로는 창, 칼, 도끼, 활을 지닌 보병과 개마무사들이 씩씩하게 행진하고 있다.
그리고 행렬의 앞부분은 3열로 진행되는데 주인공의 수레 앞의 악대 등 무리에서는 5열로 늘어서 있고, 다시 주인공의 수레 지점에서는 7열로 확장된다. 행렬이 서서히 커지면서 화려함과 장중함이 점점 상승하는 효과를 보여준다. 더욱 7열의 묘사에서는 인물들 간에 겹쳐 그리기를 하고 있어 행렬 폭의 깊이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겹쳐 그리기는 다른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매우 수준 높은 묘사법이라고 하겠다.
게다가 이런 대규모 행렬에 묘사되어 있는 무기와 갑주, 악기, 복식 등등의 그림만으로도 당시 사회와 군사, 생활상을 밝히는 자료가 가득하다. 이런저런 점에서 뭐니 뭐니 해도 이 행렬도가 안악3호분 벽화 중 최고의 벽화다. 아니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틀어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그림의 수준이나 풍부한 내용에서 뛰어난 가치를 갖고 있다.
무덤의 구성을 주인공의 공무 생활 공간으로 비견하면, 주인공의 초상이 있는 서측 곁방은 집무실에 해당하며, 악대와 의장대, 수박희 등이 벌어지는 앞방 공간은 관청의 앞마당과 부속 시설 공간이 되겠다. 무용수와 악사가 있는 널방은 주인공이 여유를 즐기는 후원쯤 될 터이고, 행렬도가 그려져 있는 회랑은 소속 관리들의 집무 공간이나 관청의 바깥 진영쯤 될지 모르겠다. 이렇게 안악3호분은 무덤 주인공의 공적, 사적 공간이며, 그가 생시에 행했던 여러 활동들이 펼쳐져 있는 독자의 세계이다.
고구려 벽화고분의 초기에 해당되는 안악3호분은 그때까지의 전통적인 고구려 묘제 양식과는 다르다. 게다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벽화의 수준이나 무덤의 구성이 매우 세련되고 완성된 모습이다. 그래서 이 무렵 고구려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악3호분에 담겨 있는 진정한 비밀은 무덤 주인공이 고구려 왕이냐 동수냐가 아니라, 폭넓은 대외관계를 바탕으로 여러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들만의 다채롭고 풍성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시대 문화 창조의 빈곤을 절감하는 우리들이 고구려인들에게 배워야 하는 교훈이다.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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