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과학자가 경고하는 원자력발전의 진짜 문제

CBS노컷뉴스 김영태 기자 2017. 3. 12. 22:0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핵을 넘다'
'핵을 넘다'는 일본의 저명한 천체물리학자 이케우치 사토루가 핵의 위험성부터 원전의 문제점, 미래의 대안까지 제시한 완결성 있는 ‘탈핵’ 저서다.

저자는 과학자로서의 지식과 양심에 근거해 핵 기술의 원리를 따지는 한편, 과학과 군사의 유착, 원전이익공동체의 어둠 등을 비판한다.

원전이 왜 위험한지에 관한 꼼꼼한 분석과 태생적으로 지니는 원전의 반윤리성을 고발하는 대목에서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드는 통찰이 드러난다.

저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미래의 에너지, 대안 문명까지 고민하는데 단순한 방향 제시가 아닌 재생가능 에너지로 교체하는 과정의 로드맵을 상당히 구체적인 지침으로 서술했다.

지식인으로서 미래 세대와 인류의 존속을 고민하며 ‘시간의 지평선을 길게 잡아’ 삶의 방식을 바꾸고자 하는 성찰이 돋보인다.

과학과 군사의 유착은 더욱 공고해졌다. 미국 과학자들은 전쟁 승리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으로 무기 개발과 협력, 비인간적인 인체 실험에 대한 저항감이 사라졌다. 정부로부터 돈과 연구 환경을 보장받으며 군사 전문 연구기관에 들어갔고, 되려 적극적으로 공동연구를 제안하게 되었다(미국의 군사 연구 체계는 일본이 추진 중인 모델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일상적인 군사 연구는 전후 70년간의 무차별적 핵 확산의 계기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등 원폭 개발 경험이 있는 나라들은 반드시 수폭에도 손을 뻗었다. 기술이 축적되며 후발주자들의 개발 속도는 점차 빨라졌고, 핵 기술 독점 의도가 의심되는 5개 핵 대국의 핵 확산 금지조약(1970년)을 거쳐 소련 붕괴(1991년)에 이르기까지 도합 2천 회가 넘는 무의미한 핵 실험이 지구에서 반복됐다. 핵탄두가 가장 많았던 1985년(6만5천 개)의 폭발력은 지구 65억 인구 한 명당 2톤이었다. 현재(2013년 기준)에도 핵무기는 세계에 1만7천 개가 있다. 따라서 핵전쟁의 위기도 엄연히 존재한다. 저자는 이를 피할 방법은 오로지 핵 철폐뿐이라고 말한다.

세계의 핵 개발 노선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이 1953년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의 UN연설이다. 아이젠하워는 군이 독점하던 원자력 기술을 동맹국과 민간에 개방하겠다며 ‘평화를 위한 원자력’ 사용을 천명했다. 이제 핵무기의 ‘메가톤’에서 원자력에너지의 ‘메가킬로와트’ 시대로 전환이 일어난다. 이로부터 50년 이상이 지난 현재, 전 세계에서 원자력 발전이 이뤄지고 있으며 날로 대형화 추세다. 무기 대신 평화롭고 실용적인 과학기술을 사용하게 되어 환영할 만한 일일까? 저자는 이를 두고 ‘안전신화와 경제성을 내세우는 원전을 축으로 과학기술이 자본주의의 주구가 됨으로써 초래된 결과’라 보았다. 핵분열의 연쇄 반응을 폭주시키면 원폭, 제어하면 원전이므로 반응 속도를 제외하면 물리적 과정은 다르지 않다. 하물며 원전은 일거에 흩어지는 원폭과 달리 장시간에 걸쳐 방사성 폐기물이 대량으로 누적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지적하며 원폭과는 또 다른 원전의 심각한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를 간과하거나 얼버무리면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니 괜찮다는 주장이 후쿠시마원전 사고를 불렀다는 것이다. 아울러 일본 및 세계 각국의 원자력 개발 현황을 살펴보고 사고 사례와 중대사고 확률 계산 등 실제 수치를 제시하여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 책이 지적하는 원전의 문제점 중 가장 심각한 것이 ‘반윤리성’이다. 존재 그 자체, 가동하는 것만으로도 차별이 발생하고 인류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원전이 안전하다면서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에 원전을 건설할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 인구가 적고, 개발에서 뒤처진 소외 지역이 ‘제물’이 된다. 일단 받아들이기로 하면 지역 전체가 원전에 의지해 살아가게 되어 돌이킬 수 없다. 전력회사가 거액의 기부금을 내놓거나 골칫거리를 지방에 떠넘기는 구조는 우리의 송전탑 추진 과정과도 닮았다. 또 원전은 우라늄 채굴부터 정련, 장전, 점검 수리, 처리, 폐기, 폐로 등 전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들을 피폭시킨다. 원전은 그렇게 가혹하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노동으로 시동된다. 세대 간 윤리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10만 년에 걸쳐 엄중히 관리해야 하는 방사능 폐기물을 우리 세대는 그저 쌓아 두기만 하고 있다. 소외 지역, 소외 노동자, 미래 세대에 원전의 문제가 이미 ‘떠넘겨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후쿠시마 사고의 경우 방사능 오염 문제마저 그렇다. 이미 고향을 빼앗긴 주민들이 배제되는 것은 물론, 여분의 방사능을 전 세계인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반윤리성을 고유한 특성으로 지니는 과학기술이란 핵(핵무기와 원전)뿐이라며 이를 추구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통렬히 탄식한다.

그렇더라도 원전을 철저히 안전하게 운영하면 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과학자인 저자는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기술에 절대적인 건 없다’는 것이다. 안전기준 또한 상대적으로밖에 충족될 수 없으며 어떤 천재가 엄습하더라도 원전이 절대 파괴되지 않도록 대비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한다. 원전의 내진기준이나 안전성 기준은 모두 인간이 예상하여 상정한 한도 범위 안에 있다. 일본은 원자로가 파괴될 리 없다며 35억 엔의 예산이 들어간 원격로봇을 폐기했다. 외부전원이 상실될 거란 예측도 못했고 보조엔진은 외국 기술에서 수입한 그대로 지하에 설치해 지진해일에 침수됐다. 도쿄전력은 지하수가 방사능으로 오염될 거란 지적도 무시했지만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기술이란 그것이 필연적으로 내포한 한계를 인간이 겸허하게 직시하고 철저한 조치를 취할 때에만 간신히 사용 가능해진다”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작업 과정에서 특정한 절차를 생략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 절차 생략이 관행이 된다거나, 건전한 비판자들을 향해 ‘발목 잡는다’며 배제하는 분위기를 경계하자는 지적은, 세월호 사태를 겪으며 안전 불감증과 재난 대처능력을 문제삼기 시작한 우리의 처지에도 비춰 봄직하다.

정치권, 관료, 전력업계, 언론, 원자력 전문가 등 원전이익공동체로 묶인 세력의 원전 추진과 ‘안전신화’ 유포에도 불구하고 획기적인 판결이 일본에서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2014년 오이원전 3,4호기 운전 정지 판결이다. 이 판결은 원전이 전기 생산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경제활동의 자유는 헌법상 인격권보다 낮은 위치에 놓여야 한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원전사고에 의해 근원적인 권리인 인격권이 박탈당할 수 있다고 보아 중지를 용인한 것이다. 원전 추진파가 전력 공급과 비용 문제를 들고 나왔지만 이 또한 묵살됐다. “만에 하나 원전 운전 정지로 거액의 적자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풍요로운 국토에서 국민이 뿌리내려 생활할 조건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후자가 더 큰 국부 상실”이라는 판결문은 역사에 한 획을 그었고 원전 문제에 관한 법적, 철학적, 도의적인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된다.

그런데도 일본을 비롯한 국가들이 원전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 따르면 이는 건설 초기 투자비용이 큰 원전의 특성 탓이다. 따라서 가급적 오랫동안 가동해 이익을 짜내려 한다. 또 전력회사 입장에선 정부가 사고 뒤처리를 떠맡아 준다는 장점도 있다. 원전마피아 등의 시스템이 공고하게 구축돼 있다는 점과 원전을 가동하지 않으면 방사성 폐기물 처리도 곤란해지는 점 등은 원전을 멈출 수 없는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일본 전력회사가 원전 계속 가동을 위해 정전 사태를 위협하거나 소비자에게 전기료 인상을 압박하는 실태, 정부와 관료가 환경 문제를 운운하며 이를 돕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저자는 일본 전력요금에 원전 추진비용이 숨겨져 있음을 폭로하면서, 어용학자가 이에 동원되는 시스템, 무책임한 ‘에너지기본계획’ 등을 상세히 파헤친다. 이에 따라 결론은 ‘일본은 원전을 가동할 자격이 없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지상자원’ 중심의 문명이다. 화력발전소도 원자력발전소도 문제에 봉착한 지금, 지상자원 문명의 구축은 우리가 고민해 보아야 할 전망 중 하나다. 지상자원이란 햇빛, 비, 바람, 바다, 초목처럼 땅 위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에너지원이다. 이것들로 태양광, 태양열, 풍력, 수력, 조력, 지열, 바이오매스 에너지 개발이 가능하다. 이런 자연 에너지들은 화석연료처럼 태워 없애는 것이 아니라 태양과 지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적정한 관리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재생가능 에너지’다. 장점은 또 있다. 지상자원 문명의 기술 체계는 필연적으로 소형화, 분산화, 다양화되는데 이는 소비자 개인의 자립과 지방분권을 돕는다. 정도껏 생산하고 소비하며 자신이 주체가 되는 것은 곧 민주주의 본래의 정신이기도 하다. 현재와 같은 획일적인 도시 구조 시스템이 자연재해에 대규모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과는 달리, 분산화하고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전기를 생산하고 물을 공급하는 지상자원 문명에선 강한 위기 대처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자원 고갈로 공멸하기 이전에 지상자원 시대로의 전환을 준비하자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케우치 사토루 지음 | 홍상현 옮김 | 나름북스 | 268쪽 | 15,000원

[CBS노컷뉴스 김영태 기자] great@cbs.co.kr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