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의 UFC Express] 종합격투기의 기술 변천사, 오브레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UFC 209 대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원래 가장 큰 기대가 모여 있었던 라이트급 잠정 타이틀전이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의 이탈로 취소되며 김이 확 빠졌고, 메인이벤트였던 타이론 우들리 VS 스티븐 톰슨 2차전도 술에 물탄 듯 흘러가버리며 팬들을 100% 만족시키기엔 좀 부족한 대회가 아니었나 싶네요. 어쨌든 이번 글에서는 어제 경기들 중 국내 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경기 내용도 나쁘지 않았던 알리스타 오브레임 VS 마크 헌트 전을 되돌아보며 오브레임의 기술 변천사(?)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실 둘 간의 대결이 가진 무게감은 엄청났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K-1 챔피언 출신에 프라이드 시절부터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쳐 온 선수들이니까요. 만일 양 선수의 고향인 오세아니아나 유럽 지역에서 열린 대회였다면 메인이벤트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빅매치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회에서 이 경기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추측컨대, 헌트가 현재 UFC 측와 벌이고 있는 소송이 이유였겠죠. 헌트는 UFC 200에서 맞붙었던 브록 레스너가 도핑테스트에서 적발된 후 레스너 뿐만 아니라 UFC와 데이나 화이트 대표에게까지 법정 싸움을 건 상태입니다. 약물 사용자들에 대한 처벌 등이 너무 미약해 사실상 방관이나 다름없기에 본인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해를 입혔다는 게 헌트의 주장입니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가진 그의 인터뷰 중 이 구절이 너무 처절하게 들리더라고요.

“약물을 사용한 비겁자들이 활개를 치는 반면 왜 내가 왕따 취급을 받는 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옥타곤 안에서 약물사용선수들의 공격으로 인해 누가 하나 죽어야 비로소 뭔가 달라질 것 같다. 슬픈 현실이다.”

이처럼 경기 외적으로는 씁쓸한 구석이 있었지만, 일단 옥타곤에서 맞붙자 둘은 베테랑 파이터들답게 치열하고 재미있는 승부를 펼쳤습니다. 핵주먹으로 유명한 헌트는 줄곧 펀치 한 방을 노리며 집요하게 오브레임을 추격했고, 오브레임은 이를 경계해 아예 떨어지거나 확 붙어버리며 펀치 거리를 주지 않는 영리한 경기 운영을 했습니다. 결국 오브레임이 3라운드에 무시무시한 니킥을 적중시키며 승리를 가져갔네요.


격투기를 해설하는 입장에서 오브레임은 정말 흥미로운 캐릭터입니다. 라이트헤비급에서 근육을 잔뜩 불려 헤비급으로 올라온 것 말고도, 기술적으로 봐도 변화가 너무 뚜렷해 해설하기에 참 재미있거든요. 오브레임의 커리어를 훑어보면 그 자체가 종합격투기의 기술 변천사 같은 느낌입니다.

오브레임 타격 스타일의 뿌리는 다름 아닌 네덜란드 킥복싱입니다. 예전에 K-1이 한창 성행했을 때 피터 아츠나 어네스토 호스트 같은 전설들의 활약으로 네덜란드 킥복싱의 진가가 우리나라 격투팬 분들에게 많이 알려졌었죠. 오브레임은 네덜란드의 명문 체육관 골든 글로리에서 타격의 기본을 닦았습니다.

오브레임과 골든 글로리 운영진들의 모습


네덜란드 킥복싱의 특징은 태국 무에타이에 비해 펀치와 로우킥의 비중이 높고, 풋워크를 활발히 하기 보다는 펀치나 킥 한 방 한 방에 체중을 한껏 실으며 전진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가드를 단단히 하고 앞으로 나아가며 펀치와 킥의 조화로운 콤비네이션으로 얼굴과 몸통, 다리를 골고루 두들겨 상대를 쳐부수는 탱크 같은 스타일이죠.

오브레임은 이 킥복싱 스타일을 베이스로 다른 네덜란드 킥복서들에게는 없는 강점도 하나 갖고 있습니다. 바로 무시무시한 클린치 능력이죠. 타격 강국 네덜란드 선수로는 특이하게도 어린 시절 레슬링 수련 경험도 있는 데다, 선천적으로 니킥의 파워나 몸의 근력이 굉장히 강하거든요. 프라이드 시절 ‘더치 사이클론’이란 별명이 붙었던 것도 바로 강력한 클린치 니킥 때문이었죠.

근육을 늘리기 전 오브레임의 모습


이처럼 탄탄한 베이스와 여러 장점을 가졌지만 오브레임은 프라이드 시절에는 상승과 부진을 거듭하다가 K-1으로 넘어오며 헤비급 전향을 선언하고 비로소 전성기에 돌입하기 시작합니다. 2007년 K-1으로 이적할 당시 오브레임의 평소 체중은 99kg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4~5년 간 오브레임은 몸에 엄청난 양의 근육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네덜란드의 파워리프터들과 훈련하는 모습들도 많이 공개되었고, 약물 사용에 대한 의심도 많이 받기 시작했죠.

UFC 데뷔 당시 오브레임의 모습. 이 때 체중은 무려 119kg

이 기간 동안 오브레임은 몸만 불린 게 아니라, 종합격투기와 K-1 활동을 병행하며 격투기 실력도 착실하게 쌓아 갔습니다. 특히 K-1에서 세계 최정상급 킥복서들을 제압하며 타격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건 엄청난 소득이었죠. 스트라이크포스 헤비급 챔피언과 K-1 토너먼트 챔피언에 오르며 입식격투기와 종합격투기 양쪽에서 모두 주가를 올리던 오브레임은 결국 2011년 말 UFC 최고 스타인 브록 레스너를 KO시키며 화려하게 UFC에 입성합니다.

K-1 챔피언에 올랐던 오브레임. 팔이 터지려고 하네요.


이 당시 오브레임의 경기 스타일은 시쳇말로 진짜 ‘상마초’ 같은 느낌이었죠. 상대가 누구든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주먹을 휘두르고, 상대가 이를 버텨내고 엉키면 무릎으로 찍어 버리든지 내동댕이쳐버렸습니다. 약물 의혹이 늘 따라다녔지만, 경기 스타일만 놓고 보면 가장 매력적이던 시기였을 겁니다.

브록 레스너를 두들기는 오브레임

그런데, 오브레임이 안토니오 실바, 트래비스 브라운 등에게 연패를 당하며 이 ‘상마초 스타일’의 약점이 만천하에 공개됩니다. 프라이드 시절 ‘오분의 힘’이라는 놀림 섞인 별명까지 국내 팬들에게 받을 정도로 문제였던 지구력의 부재가 여전했기에, 초반에는 강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전투력이 뚝 떨어진다는 게 드러난 거죠. 거기다 계속 강화되는 약물 검사 때문인지 오브레임의 몸은 점점 작아져 갔습니다. 물론 본인은 지구력 강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체중을 줄인 거라 얘기했지만 예전 싸움 스타일에서 풍기던 무시무시한 아우라가 떨어진 건 분명했고, 상대를 압도할 만한 힘도 예전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근육이 예전같지 않은 최근의 오브레임

연패를 당하며 체육관도 이곳저곳 옮겨 다니던 오브레임은 명가로 꼽히는 그렉 잭슨 팀으로 들어간 후 깜짝 변신을 시도합니다. 좀 더 영리하고 테크니컬한 아웃파이터로의 변신이었는데, 너무나 놀랍고도 재미있는 사실은 그전까지 헤라클레스처럼 무시무시한 인파이팅을 펼치던 오브레임에게 정반대의 아웃파이팅 스타일이 맞춤 정장마냥 딱 들어맞았다는 점입니다. 복싱으로 치면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갑자기 무하마드 알리처럼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기 시작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잘하는 격인 거죠. K-1 챔피언에 빛나는 정상급 타격 능력 뿐 만 아니라 오랜 동안의 경험으로 쌓인 격투기 내공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겁니다.

오브레임 왼쪽에 있는 사람이 명코치 그렉 잭슨입니다.


존 존스나 카를로스 콘딧, 컵 스완슨 등 그렉 잭슨 팀 선수들의 아웃파이팅 타격을 보면 UFC로 세계 격투기의 중심으로 옮겨온 지금, 사각 링이 아닌 팔각 케이지에서 활용해야 할 MMA 타격의 교과서 같습니다. 일단 이들은 풋워크를 굉장히 많이 활용합니다. 정통 복서나 킥복서들과 달리 스탠스도 자유롭게 전환합니다. 이런 스타일은 널찍한 케이지 공간을 모두 쓴다는 걸 전제로 깔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킥복싱이 전진 압박을 기본 뼈대로 삼는 것과 달리, 이 새로운 스타일의 MMA 타격가들은 전진을 고집하기보다는 일단 멀찍이 거리를 잡고 스탭을 최대한 활용하며 상대의 빈틈을 엿봅니다. 중심이 앞으로만 실려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후좌우 모든 방향으로의 전환이 가능하고, 심지어는 뒤로 빠지면서 카운터를 치는 것도 가능합니다.

오브레임이 새롭게 몸에 익힌 이 스타일의 장점은 무엇보다 전진 스타일에 비해 안전합니다. 상대방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계속 부딪힐 필요가 없거든요. 그 안전한 거리에서 여러 가지 타격을 셋업하기 좋은게 이 스타일인데, 이미 세계 최정상급의 타격가인 오브레임은 갖가지 미끼와 그물을 보유한 낚시꾼입니다. 아웃파이터 오브레임은 인파이터 오브레임과는 달리 존 존스가 잘 구사하는 오블리크 킥도 많이 쓰고, 필요할 때는 등을 돌리고 달려서 도망가는 듯 하다가 갑자기 플라잉 니킥이나 돌려차기 같은 변칙 기술을 날리기도 합니다. 가끔 상마초 시절보다 좀 체면이 안 서는 장면도 종종 나오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분명히 더 까다롭습니다.

최근 오브레임은 이렇게 발을 많이 움직입니다

헌트 전에서도 오브레임은 아웃파이팅을 십분 활용했습니다. 메인이벤트에 등장했던 스티븐 톰슨과 마찬가지로 오브레임은 어제 경기에서 왼손잡이 자세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는데, 상대가 단신의 하드펀쳐로 오른손이 강력하다면 이는 아웃파이터 입장에서 굉장히 좋은 카운터 전략이 됩니다. 상대의 주무기인 오른손으로부터 한껏 멀어지니까요. 2라운드에 팔꿈치 공격 맞춘 것 빼면 헌트는 그런 오브레임을 거의 잡지 못했습니다.

오브레임은 이런 아웃파이팅 전략을 펼치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오히려 먼저 들러붙어 클린치 상황을 만든 후 케이지에 헌트를 가둬놓기도 했습니다. 3라운드의 니킥 KO 장면도 바로 그런 상황에서 나왔죠. 이미 설명한대로 오브레임은 원래 클린치가 굉장히 강한 선수인데, 최근 경기를 보면 클린치 활용을 상당히 줄였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은 그렉 잭슨이 결정했든 본인이 했든 신의 한 수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뭘까요? 바로 체력을 아끼기 위해서입니다. 클린치에서 겨드랑이를 파고, 목을 잡고, 무릎이나 팔꿈치를 날리는 등의 몸싸움은 본질적으로 지구력을 소모할 수 밖 에 없는 형태의 싸움입니다. 예를 들어 1분 동안 한 팀은 케이지에서 몸싸움만 하고 다른 한 팀은 오픈된 공간에서 스탭 밟으며 타격 수싸움을 시키면 몸싸움을 한 팀이 훨씬 더 숨이 찰 겁니다. 오브레임의 고질적인 지구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클린치가 굉장히 강함에도 불구하고 그 활용 폭을 대폭 줄여 장기전을 좀 더 원활하게 치를 수 있도록 만든 거죠.

종합격투기에서 클린치는 절대 쉬는 시간이 아닙니다.

오브레임이 체력이 떨어진 후 클린치로 들어가는 순간 안면이 빈다는 점도 아마 그런 선택에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헉헉 숨이 찰 때 클린치를 시도하려 하면 누구나 느리고 빈틈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오브레임은 지치면 이런 약점이 더욱 심해지고 스탭도 멈춰 버리거든요. 어쨌든 선수가 큰 그림을 보고 본인이 잘하는 부분을 과감히 포기한다는 건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이기에 때문에 개인적으로 오브레임이 ‘클린치 욕심’을 버린 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헌트 전에서 오브레임은 오랜만에 클린치를 한껏 활용했습니다. 일단 헌트가 본인과 같은 타격가 출신이기에 레슬러 출신의 상대들과는 달리 몸싸움에서 부담이 없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거기다 오브레임이 헌트보다 키가 훨씬 더 크고 팔도 길다는 점도 있습니다. 원래 케이지에서의 몸싸움은 신장이 크고 팔이 길면 굉장히 유리하거든요. 멋진 KO를 만든 공격은 니킥이었지만, 그 장면이 나올 수 있었던 토양은 바로 오브레임의 강한 클린치였다고 보시면 되겠네요.

헌트에게 무시무시한 니킥을 적중시키는 오브레임

오브레임은 경기 전 헌트를 이기고 다시 한 번 타이틀 도전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바 있습니다. 오는 5월 UFC 211에서 치러지는 스티페 미오치치와 주니어 도스 산토스 간의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도스 산토스를 응원하겠다고 도 했죠. 미오치치에게는 졌고, 도스 산토스에게는 이긴 적이 있기 때문에 도스 산토스가 챔피언이 되어야 오브레임 입장에서는 재대결을 요구할 명분이 생기니까요. 오브레임의 바램대로 헤비급 전선이 흘러갈지, 과연 다음 상대는 누가 될지 궁금하네요. 아, 그리고 패배한 노장 헌트도 얼른 부상을 회복하고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