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스토리] 일 안해도 매달 '000원', 기본소득제 가능할까요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김유정 인턴기자 =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이 고언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한 제도의 등장으로 인해 사라질지도 모른다. 바로 기본소득제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나라가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제공한다. 기본소득제의 원래 정의다. 즉, 실업급여나 기타 복지 수당과는 달리 아무런 자격이 필요없다. 일찍이 1516년에 영국의 토머스 모어가 처음 제시했다.
최근 모양새만 보면 초기 취지와는 다소 다르다. 나라별로 경제 상황에 맞게끔 조건이나 단서 등을 달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조건부' 기본소득제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시범 도입을 하거나 논의 대상에 올리면서부터 화제로 떠올랐다. 대선주자들이 본격 행보를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조심스레 거론되고 있는 상태다. 기본소득제는 가능한 걸까.
◇ 유럽에서 시작된 기본소득제 실험

토마 피케티가 저서 <21세기 자본론>을 통해 강조했던 것은 빈부 격차 해소였다. 늘어난 빈곤층은 빚을 지기 쉽다. 따라서 소비가 힘들어지고 사회 전체에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다.
근거로 내세운 사례는 미국이다. 소득불평등이 최고조에 다다랐던 시기는 1928년과 2007년. 이 둘 모두 이듬해 미국에 심각한 경제 위기가 찾아왔다.
피케티가 기본소득제 공약을 내건 프랑스 사회당을 옹호하는 건 필연적인 일 일지 모른다.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파진영의 주장과는 달리 기본소득제 공약은 실현가능하며 막대한 비용이 들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는 다른 유럽 국가를 참고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기본소득에 대해 참고할 만한 대표적인 유럽 국가는 핀란드다. 핀란드는 올해부터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기본소득제 실험에 돌입했다.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은 25~58세에 해당하는 실업자 2천명을 무작위로 선발했다. 이들에게 월 70만원에 해당하는 돈을 지난 1월부터 지급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조건도 없다. 어디에 썼는지 보고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취업해도 돈은 계속 받을 수 있다.
핀란드가 부담에도 실험을 시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핀란드의 실업률은 8.1%까지 치솟았다. 실업상태에서만 주어진 복지급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면 창업이나 취업 등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거라는 해석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제가 제기된 또 하나의 이유. 피케티의 주장대로다. 심화되는 양극화로 인해 증가하는 최약층의 구제다.
◇ 불평등, 양극화가 부른 기본소득제

"사회적 화합에 가치를 두는 스위스 사회에서 불평등과 빈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이에 대한 우려가 기본소득 국민투표를 끌어냈다"
지난해 6월 스위스의 기본소득에 대해 찬반을 묻는 대국민투표 당시 영국 켄트대학의 파올로 다르다넬리 교수의 해석이다. 즉, 기본소득은 저소득층의 생존과 직결되는 제도라는 뜻이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의 요지도 같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사회적 불평등을 없애며 더 나아가 전체 복지비용을 줄일 것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눈앞에 다가온 여기엔 제4차 산업혁명, 즉 AI 시대도 기본소득 논의를 부채질했다. 똑똑해진 기계는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거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다보스포럼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5년 내 인공 지능 발전으로 전세계 일자리 710만개가 사라질 전망이다. 특히 단순 업무직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만큼 기본소득을 통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 관건은 재원 마련

관건은 돈이다. 스위스의 지난해 기본소득안 투표는 부결됐다. 77%의 국민이 반대표를 던졌다. 이전해에 이어 두 번째 부결이다. 기본소득으로 인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세금이 적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스위스 정부는 월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때 연간 약 250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프랑스 사회당 대선 후보인 브누아 아몽은 공약으로 월 600~750유로(약 75만~94만원)의 기본소득 보장을 내걸었다. 반대 진영에서는 "이를 도입하려면 3천500억 유로(426조원)가 필요한데 어디서 마련할 것이냐"고 묻고 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최저생계비인 1만1천770달러를 전국민에게 지급한다면 연방정부 예산과 맞먹는 3조8천억달러가 필요하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우리 정부가 전국민에게 월 11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국내총생산(GDP)의 23%를 더 걷어야 할 것으로 예측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세율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나타났다.
◇ 여전히 남는 의문

먹고살 만한 중산층 이상까지 기본소득을 줘야 할까. 즉, 빈곤층에게 집중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말 그대로 '어느 정도 살 만한' 금액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을 대상으로 의료비를 제외한 사회보장제도를 모두 폐지하고 이 재원으로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얼마나 지급할 수 있는지 계산했다. 수치는 지난해 기준이다.
조사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스웨덴, 룩셈부르크 등 유럽 7개국만이 연간 1만달러(약 1천157만원) 이상을 지급할 수 있다. 매달 833달러(약 96만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연간 5천달러(약 578만원)를 지급하기 힘든 나라는 14개국에 달했다. 특히 멕시코는 연 900달러(약 104만원)에 불과했다.
우리는 어떨까. 연 2천200달러(약 254만원)로 예측됐다. 멕시코, 칠레(1천500달러), 터키(1천700달러)에 이어 네 번째로 적은 금액이다. 월간 단위로 따지면 약 21만원이다. 올해 책정된 월 최저임금인 135만2천원보다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반면 선별적 복지보다 기본소득이 낫다는 의견도 있다. <기본소득 도입 모델과 경제적 효과>란 논문에 따르면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 부자들이 내는 세금은 4배 이상 증가한다. 소득 재분배 효과 면에서 기본소득이 선별적 복지보다 효과적일 것이란 주장이다.
반론도, 비판도 많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크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최근 "기본소득은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본소득이 처음 제시된 지 50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지구촌 곳곳에서 빈번히 논의되고 있다는 근거에서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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