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에(萌え)가 모예요?

모에는 21세기 오타쿠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짚고 넘어가야 하는 개념이다. 지금은 '모에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1917년작 헤코나와 하나와의 명검 영상 링크 (1917년 만들어진 최초의 아니메 중 필름이 남아있는 건 '헤코나와 하나와의 명검' 뿐이다)
지난 100년 동안 아니메는 시대와 세대 아이콘으로서 일본인, 일본사회의 곁을 지켰다. 전후 피폐해진 세대를 위로했고(철완아톰), 투쟁의 동지였으며(내일의 죠), 성인들도 열광할 수 있는 문화이자(우주전함 야마토) '취미가 곧 주의(主義)'라는 선언과 함께 오타쿠 문화를 사회 현상으로 끌어올린 주역(기동전사 건담)이었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이야기나눌 수 있는 장수 콘텐츠이자 유대의 고리이기(도라에몽)도 했다.
이후 몇 차례에 걸친 애니메이션 붐으로 주요 소비자는 보편적인 다수의 아동에서 경제력을 갖춘 오타쿠 팬덤으로 이동했고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DVD, 캐릭터 상품 등 미디어믹스가 주요 수익 모델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쏟아져 나오는 작품들 사이에서 생산자(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생존과 성공을 위해 '팔릴 만한 요소'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모에는 아니메 산업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부상했다.
모에 코드가 자리매김한 이유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거대 서사가 상실되고 중심이 해체되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이야기가 사라진 자리를 연관성 없이 연속된 개별 사건들이 채우게 되는데, 아니메를 비롯한 서브컬처 텍스트 역시 서사의 빈자리를 캐릭터의 매력, 즉 모에 요소가 차지하게 됐다.
모에의 시대에는 캐릭터성과 이야기가 파편화돼 데이터베이스화되고 시청자들은 서사라는 뼈대 없이도 개인의 취향에 따라 조립한 캐릭터에 모에를 느끼는 것으로 작품을 소비한다. 창작자도 마찬가지다. 속성이니 요소니 하는 이름으로 정형화된 모에를 조합해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캐릭터에 의해 작품을 전개시켜 나간다. 창작자와 소비자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클리셰이자 맞춤형 문화 상품인 셈이다.
캐릭터 소설이라고도 하는 라이트노벨이나 근래의 (모에가 강조된) 애니메이션은 이 같은 공식에 충실하다.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그만큼 대중적이며, 재미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모에는 거들 뿐 탁월한 이야기와 흡입력 있는 전개로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은 수작도 많다. 다만,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감안해도) 당대 사회상이나 세대가 공유하는 정신을 담아낸 걸작들이 등장하기 어렵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가장 유명한 속성은 '츤데레(ツンデレ)'다. 평소엔 호감을 숨기고 일부러 쌀쌀맞게 굴지만(츤츤) 이후 마음을 열거나 둘만 있거나 하는 상황에서 살갑게 구는(데레데레) 캐릭터를 일컫는다. 좋아하는 대상을 오히려 괴롭히는 아동의 행동 패턴과도 유사하다. 우리말로는 새침데기, 깍쟁이와 유사하다. 한국 문학 작품 중에도 츤데레 속성을 가진 캐릭터가 많은데 '동백꽃'의 점순이, '소나기'의 소녀, 그리고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도 츤데레다. (국내 비공인 설문에서 김첨지가 츤데레 1위가 된 적도 있다) 아니메 중에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가 대표적인 츤데레 캐릭터다. 주요 대사는 "따, 딱히 널 위해 한 일은 아냐" 등이 있다. 츤데레의 강화형(?)으로 좋아하는 속내를 숨기려 욕설을 하는 욕데레가 있다. X발데레라고도 한다. 무한도전의 박명수가 대표적.


외모에 관한 모에 요소도 다양하다. 헤어스타일과 머리카락 색상 등은 앞서 설명한 레이의 사례처럼 머리카락 색상과 헤어스타일은 캐릭터의 성격을 암시해주기도 한다. 체형에 관련해 글래머 혹은 근육질, 슬림한 몸매 등에 대한 모에 요소도 있다.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안경 속성처럼 특정 액세서리에 관한 취향도 있다. 원래는 '지적인 캐릭터' '모범생' 등의 캐릭터를 부연해주는 장치에 가까웠지만 안경 자체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무려 '안경의 에로티시즘'이라는 책도 있다). 사람이 '고양이 귀'를 달고 있는 네코미미 속성도 있다.
연령에 대한 모에 요소도 있다. 서브컬처계 커뮤니티에서 가끔씩 벌어지곤 하는 '누님계(연상) vs 여동생계(연하)' 논쟁 같은 경우가 연령 모에 때문이다. 동갑내기도 속성 중 하나. 1990년대를 풍미했던 '오! 나의 여신님'에서는 히로인 베르단디를 비롯해 누님계, 여동생계 캐릭터가 모두 등장해 연령에 따른 캐릭터별 성향을 확립하는 데에 일조했다.
모에화(化), 모에선(線)이라는 표현도 있다. 모에와 거리가 먼 대상을 모에하게(=미소녀 의인화)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캐릭터는 물론 실존 인물부터 사물, 곤충(바퀴벌레도 있다), 맹수, 음식, 국가, 소프트웨어, 태풍(?) 등 상상을 초월하는 영역에서 모에화가 이뤄지고 있다. 보통은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되지만, 모에 산업이 자리 잡은 일본의 경우 공식적으로 자사의 상품을 모에화해 홍보에 활용하는 기업이 많다.

앞서 '동백꽃'의 점순이를 츤데레 캐릭터로 설명했듯이, 모에는 오랜 세월 다양한 콘텐츠에서 축적된 캐릭터성과 기호의 연장선이다. 다소 현학적으로 설명하기는 했지만, 포스트모던 시대 실종된 서사를 캐릭터가 채우는 현상은 비단 아니메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에 한국의 막장 아침 드라마만 봐도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들이 김치로 뺨을 때리고, "못난 놈"이니 "나다운 게 뭔데요?!"라며 싸우고 있지 않은가. 모에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모에와 서사, 상업성과 작품성의 균형점에서 아니메 100주년을 기념할 만한 작품이 나오길 빌어볼 따름이다.
[홍성윤 프리미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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