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빼고 행복하네"⋯ '카페인 우울증' 겪는 엄마들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입력 2017. 2. 8. 15:14 수정 2017. 2. 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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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보며 우울해하는 주부들 늘어나
전문가 "일상 아닌 '특별한 순간' 담긴 공간일 뿐"

“돌쟁이 아가를 키우는 육아맘이에요. 요즘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으면 육아는 물론, 일도 하고 얼굴도 예쁜 슈퍼우먼들이 왜 이리 많을까요. 저에겐 육아·살림·일 등 모든 것이 힘들기만 한데 말이죠. 이렇게 비교하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알지만,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져요. 결혼하기 전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젠 저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한심해 죽겠어요. 육아도 척척, 살림도 척척, 일도 척척 다 잘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지 않네요.” (신주희·가명·36·경기 성남)

◇'카페인 우울증' 겪는 주부들 많아져

최근 ‘카페인 우울증’을 겪는 주부들이 많다. 카페인 우울증은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SNS’)인 카카오스토리·페이스북·인스타그램의 앞글자를 딴 ‘카·페·인’으로 인한 우울증이다. 대개 주부들이 SNS를 시작하게 된 배경으로는 비슷한 나이의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과 소통하고 싶거나, 개인 공간에 아이의 성장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습관처럼 SNS를 드나들며 보게 된 타인의 ‘행복한 순간’은 상대적 박탈감으로도 이어진다. 주부 정지민(가명·32·여)씨는 어느 순간부터 SNS 속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SNS에선 우리 집만 빼고 다 행복하고 풍족한 것처럼 보인다”면서 “물론 ‘있어빌리티(우리말 ‘있다’와 영어로 능력을 뜻하는 ‘어빌리티(Ability)’를 합친 신조어로, 있어 보이게 만드는 능력이란 뜻)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주변 엄마들이 SNS에 올린 각종 '인증샷'과 내 모습을 비교하면 자괴감부터 든다”고 했다.

이런 사례는 육아에서 훨씬 도드라진다. 네 살배기 딸을 둔 워킹맘 김은지(가명·34·여)씨는 유치원에 처음 등교하는 아이를 위해 손수 바느질을 해 이름표를 만들어 주고, 함께 텃밭을 가꾸는 등 상대적으로 여유 있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SNS를 보면 마음이 울적하다. “맞벌이 부부라 아이 육아는커녕 집안일도 제때 하기 어려운데, SNS 속 엄마들은 마치 딴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아요. 아이의 끼니며 간식도 잘 챙겨 먹이고, 요리도 잘하고, 집안도 예쁘게 꾸미는 엄마들을 보면, 왠지 제가 많이 부족해 보여 아이에게 미안해요.”

SNS를 통해 유명인의 일상도 엿볼 수 있게 되면서 오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특히 자녀를 둔 여성 연예인들이 SNS에 공개한 육아용품이나 인테리어, 요리, 자녀의 패션 등은 연일 화제다. 두 살 된 쌍둥이 자매를 키우는 최혜란(가명·39·여)씨는 “평소 아이 넷을 키우면서도 똑 소리 나는 육아로 유명한 배우 A씨 인스타그램을 보고는 SNS를 끊게 됐다”고 했다. 그는 “전 매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온종일 아이와 씨름하기도 바쁜데, 아이 넷을 데리고 미술 활동도 하고 몸매 관리도 잘하는 A씨를 보며 괜히 우울해져 SNS 계정을 아예 삭제해버렸다”고 했다.

◇‘SNS, 행복에 악영향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실제로 SNS가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12월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보도한 코펜하겐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페이스북 사용을 일주일 이상 중단한 사람들이 본인의 행복수준을 더 높게 평가했다고 전했다. 일주일 이상 페이스북 사용을 중단한 실험 대상자들은 자신의 행복수준을 10점 만점에서 평균 8.11점을 줬다. 이번 실험은 페이스북 친구가 350명 이상인 109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대상자 가운데 86%는 여성이며, 평균 나이는 34세다.

실험을 끝까지 완료한 대상자들은 일제히 삶의 질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실험 시작 전 친구의 SNS 활동에 질투를 느낀다는 대상자들의 행복수준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큰 폭으로 개선됐다. 실험을 진행한 트롬홀트 교수는 “매일 같이 전 세계 사용자들이 페이스북에 수백만 시간을 쏟아 붇고 있다”며 “습관적으로 타인의 정보를 알고 싶어하고 연락을 주고받는 것은 우리의 행복에 악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SNS, 일상 아닌 ‘특별한 순간’ 담긴 공간임을 인지하라”

전문가들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SNS를 통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계속 활동하는 이유로 ‘외로움’을 꼽았다. 남과 나를 비교하며 내 삶이 초라하다 느낄지라도, ‘독박 육아’로 힘들고 지친 마음을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소통하며 공감 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신과 전문의인 윤홍균 윤홍균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은 SNS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교류할 수 있는 중요한 매체이긴 하지만, 감정적인 소통이나 위로를 받으려 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윤 원장은 “많은 엄마가 위로와 공감을 받기 위해 SNS에 몰입하지만, 단편적인 정보만을 주는 SNS에서는 만족할 만큼의 위로와 공감을 얻기 어렵다”며 “이런 생각은 다른 사람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존감만 낮출 뿐”이라고 했다.

윤 원장은 SNS를 보기 전에 먼저 마음의 준비부터 하라고 조언한다. 타인의 게시글 속 특정 순간이 그들의 일상일 거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는 “SNS에 올라온 게시글은 공들여 단장한 신부화장이나 오랜 기간 준비한 졸업전시회와 같은 특별한 순간이지, 일상이 아니다”라며 “SNS는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담긴 공간이라는 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우울감을 덜어낼 수 있다”고 했다.

감정을 배출하는 창구로 SNS 대신 ‘나만의 비밀 일기장’을 만들어보는 것도 추천했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근심이나 걱정들을 일기장에 글로 적어보며 실체화해보라는 것이다. 윤 원장은 “고민이 머릿속에 있을 땐 매우 커 보이고 아득하지만, 막상 글로 써보면 간략해지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며 “SNS와 같은 공개적인 공간에서 고민을 적기보단,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을 통해 억눌려 있던 감정을 쏟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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