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Why] 나는 개고기집 아들을 사랑했네

이주윤 작가 2017. 2.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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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윤의 너희가 솔로를 아느냐]
열아홉에 짝사랑했던 친구
어른 돼 다시 만나니 잠깐 설레
하지만 술 취해 개소리만..

내 나이 열아홉에 개고기를 좋아했다. 친구들과 분식집에 모여 앉아 떡볶이 한 접시를 나누어 먹어야 할 것만 같은 소녀가 즐기기에는 다소 거친 음식이 아닌가! 흠칫할 분들을 위해 재빨리 설명을 덧붙이자면, 여기서의 개고기는 멍멍 개고기가 아닌 사람 개고기를 뜻한다.

개고기면 개고기지 사람 개고기라니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뜨악할 분들을 위해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자면, 개고기라는 별명을 가진 보신탕집 아들을 좋아했다는 말이다. 모두가 그 애의 이름 대신 별명을 불렀다. 만일 내가 개고기였다면 소고깃집을 하지 않는 부모를 원망하거나, "개고기라고 부르지 말라고, 이 개××들아!" 친구들에게 성질 부리거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숱한 날을 방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고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성숙한 소년이었다.

소녀가 어른으로 자라나는 동안 많은 남자를 만났고 또 헤어졌다. 하지만 개고기만큼 마음 건강한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좋아한다고 말이라도 해볼걸, 수줍음 많았던 어린 내가 미웠다. 개고기가 못 견디게 그리운 건 아니었지만 매년 돌아오는 삼복더위마다 그 애가 떠오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머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개고기에게서 불쑥 연락이 왔다. 놀랍고 반갑고 괜스레 민망한 마음에 한참을 'ㅋㅋㅋ' 웃기만 하다가 안부를 물었다. 그는 취업 준비를 하며 부모님 가게에서 '개탕'을 만들고 있다고, 별명 따라 개고기 팔 줄은 자기도 몰랐다고, 빨리 취직이 돼야 할 텐데 큰일이라고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런 개고기의 모습에 적잖이 실망했다. 그가 변변한 직업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늘 당당했던 소년의 모습을 그에게서 더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인생의 굴곡을 겪는 법. 나는 그가 깊은 어둠을 지나는 중이라 여기며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취업에 목매지 말고 가업을 이어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며 농담 섞인 진담을 건네기도 했다. 훗날 시어머니가 끓여주신 개장국을 어떤 말로 사양해야 할지 고민스럽기도 했지만 '까짓것 눈 딱 감고 한 그릇 해치우면 그만이지 뭐.' 개장국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들깻가루부터 풀며 그와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늦은 밤, 술에 취한 개고기의 전화를 받은 나는 그 꿈을 깨끗이 접기로 마음먹었다. 개고기가 이토록 술주정이 심한 사람인 줄 전에는 몰랐었다. 열아홉 개고기는 술을 마시지도, 그리하여 주정을 부리지도 않았었거든….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다면 취했다는 말에 적당히 마시라며 걱정 섞인 잔소리를 했을 텐데. 보고 싶으니 나와 달라는 말에 헐레벌떡 택시를 잡아탔을 텐데. 오늘 밤 너희 집에서 재워달라는 말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못 이기는 척 그러마 했을 텐데. 하지만 서른셋의 나는 안다. 남자가 술에 취해 하는 모든 말은 순정이 아닌 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술에서 깨고 나면 기억조차 못 할 말들에 혼자서 가슴 설레 하는 바보짓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 나는 끝을 모르고 집적거리는 개고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술 마시더니 개소리를 많이 하는구나, 너." 속에 든 말을 뱉어놓고 나니 내가 너무 심했나, 아차 싶었지만 어차피 이 말도 기억 못 할 테니 아무렴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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