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의 지구 위에서 보는 인류사] 《가락국기》는 단순 설화일까?(상)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입력 2017. 2. 2. 17:03 수정 2017. 2. 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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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의 역사를 서술한 《가락국기》를 읽어보자.

고려 문종 때 편찬한 《가락국기》는 아쉽게도 완전한 내용이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기록에서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도 설화적인 요소가 추가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용비어천가》 같은 기록을 보면 설화적 요소가 가락국기 못지않게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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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적 표현 속에 담긴 진짜 역사 찾기가 '역사'

가락국의 역사를 서술한 《가락국기》를 읽어보자. 고려 문종 때 편찬한 《가락국기》는 아쉽게도 완전한 내용이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에 간단하게 기록된 것이 전해질 뿐이다. 

인도공주 가락국 왕비설이 진실인지 허구인지 판단하려면 일단 그 얘기가 나온 출처에 실린 대로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지점에서 『삼국유사』에 실린 이 대목을 원문을 그대로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삼국유사는 한문으로 쓰인 책이니까, 여기서는 <한국인문고전연구소>의 번역문을 빌리기로 한다.

 

ⓒ Pixabay

 

건무(建武) 24년 무신(서기 48) 7월 29일, 구간들이 조회할 때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이래로 아직까지 아름다운 배필을 만나지 못하셨습니다. 청하옵건대, 신들의 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골라 대궐로 들여보내 배필로 삼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왕이 말하였다.

“짐이 이곳에 온 것은 하늘의 명이고 짐의 배필로 왕후가 되는 것도 하늘의 명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너무 염려하지 마시오.”

그리고는 곧 유천간(留天干)에게 명하여 가벼운 배와 좋은 말을 가지고 망산도(望山島)에 가서 기다리도록 하고, 다시 신귀간(神鬼干)에게 명하여서 승점(乘岾)[망산도는 수도 남쪽 섬이다. 승점은 수도 아래에 있는 속국이다.]에 가도록 하였다. 갑자기 바다의 서남쪽 모퉁이부터 붉은색 돛을 달고 붉은색 깃발을 휘날리는 배가 북쪽으로 오고 있었다. 

(중략)

“저는 아유타국(阿踰陁國)의 공주입니다. 성은 허(許)이고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 본국에 있을 때인 금년 5월에 부왕께서 황후와 함께 저를 돌아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아비와 어미가 어젯밤 꿈에 함께 하늘나라의 상제님을 뵈었단다.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락국의 시조 수로를 하늘이 내려 보내어 왕위에 앉았으니, 신령스럽고 거룩한 이는 오직 그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새로 나라를 다스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배필을 정하지 못하였다. 경들은 모름지기 공주를 보내 그의 배필로 삼아라.’라고 하시고는 말씀을 마치자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단다. 눈을 뜬 뒤에도 상제의 말씀이 여전히 귀에 있는 듯하구나. 너는 여기서 얼른 부모와 작별하고 그곳을 향해 떠나거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증조(蒸棗, 신선이 먹는 대추)가 있는 저 바다 끝까지, 반도(蟠桃, 신선이 먹는 복숭아)가 있는 저 하늘 끝까지 당신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하여 모습을 가다듬고 감히 외람되이 용안을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왕이 대답하였다.

“짐은 태어나면서부터 자못 신성하여서, 공주가 저 멀리서부터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소. 그래서 신하들이 왕비를 들이라고 청하였지만 감히 따르지 않았소. 지금에서야 현숙한 분께서 이렇게 스스로 오셨으니 이 사람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오.”

(중략) 

드디어 혼인하여 맑은 밤을 두 번 지내고 하루 낮을 지냈다. 그리고 드디어 타고 왔던 배를 돌려보냈다. 뱃사공들은 모두 15명이었는데, 각각 쌀 10섬과 베 30필을 주어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8월 1일에 대궐로 돌아왔는데, 왕은 왕비와 함께 수레를 탔고 왕후를 따라온 신하의 부부도 나란히 수레를 탔다. 가져온 여러 물건들도 모두 수레에 싣고 천천히 대궐로 들어왔으니, 물시계가 정오에 가까웠을 때였다. 왕후는 중궁(中宮)에 거처하였고 신하 부부와 노비들도 빈 집 두 채에 나누어 들어가도록 하였다. 그밖의 종자들은 20여 칸 되는 집 한 채를 주고 인원 수에 따라 나누어 있게 하였으며, 날마다 필요한 물건을 넉넉하게 주었다. 그들이 가져온 보물은 대궐의 창고에 보관하고 왕후의 사계절 비용으로 쓰게 하였다. 

© MBC드라마 《김수로》 화면캡쳐

 

과연 인도까지 왕래했을까? 이 글이 사실일까 허구일까? 사실이라고 보기엔 황당한 요소가 적지 않다. 수로왕은 자기 배필이 수만리 파도를 헤치고 올 줄 어떻게 알았을까? 부모가 꾸었다는 꿈을 믿고 배를 타고 이역만리를 헤맨 공주의 멘탈도 비현실적이지만, 신선이 먹는 대추가 있는 땅 끝과 복숭아가 있는 하늘 끝이라는 표현도 지극히 설화적이다.

하지만 역사기록에서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도 설화적인 요소가 추가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전에 일어났던 일이 구전되는 동안에 재미와 권위를 덧붙이기 위해 설화적 요소를 넣는 경우도 많고, 아예 처음부터 내용의 권위를 더하기 위해 초인간적=설화적인 요소를 집어넣어 기록으로 남기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다 못 믿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성계가 조선을 창건한 것도 설화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용비어천가》 같은 기록을 보면 설화적 요소가 가락국기 못지않게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한 내용을 설화라고 단정하기엔 디테일이 상당히 살아있다. 날짜, 지명, 인명, 거리, 그리고 공주의 수행원들에게 내린 포상의 규모까지, 설화라면 그런 게 그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지정되지 않는 게 보통이다. 

(다음 편에 계속)​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press.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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