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RE YOU?] '스마일슈터' 김훈 "농구 부활에 힘 보태야죠"

곽현 2017. 2. 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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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곽현 기자] 신년을 맞아 프로농구와 농구대잔치 시절 우리를 울리고 웃겼던 선수들을 소환해보는 코너를 준비했다. 첫 주인공은 ‘스마일슈터’ 김훈(44)이다. 김훈은 1990년대 한국농구를 들끓게 했던 연세대학교 간판선수 중 한 명이었다. 프로농구 선수를 거쳐 은퇴 후 그가 택한 무대는 프로농구가 아닌 생활체육 무대였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프로 코치도 거절, 유소년 강사로 활동
90년대부터 농구를 봐온 팬들이라면 그를 기억할 것이다. 파란색 독수리 군단의 한 축으로 정확한 3점슛을 자랑했던 김훈을 말이다. 프로에서도 10년이나 뛰었지만, 아직도 그를 ‘연세대 김훈’으로 기억할 만큼 당시 활약은 강렬했다. 간간이 농구 관련 행사에 모습을 보였지만, 그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재 그는 수원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김훈농구교실’을 운영 중이다.  

“2009년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에 반응이 괜찮았어요. 200명 넘게 지원했죠. 근데 그 때 신종 플루가 닥친 거예요. 순식간에 200명에서 70명으로 줄었죠. 여기서 그만 해야 되나 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시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어렵게 이끌고 왔는데, 결국 지금까지 왔네요.” 김훈농구교실은 수원에서 본점과 3개의 분점을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고, 계속해서 규모를 확장할 계획이다.  

“전국적으로 가맹점을 늘리려고요. 저희 모토는 ‘김훈 없는 농구교실’이 아니에요.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한 번은 제가 꼭 가서 직접 지도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게 시간이 지나면 쉬워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재밌게, 다음엔 더 재밌게 해줘야 하니까 계속해서 연구를 해야 해요.” 최근 프로농구 무대에는 그와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이들이 대부분 감독, 코치로 활동 중이다. 그렇다면 김훈은 프로 지도자 생활을 꿈꾼 적은 없었을까? “사실 코치 제의가 온 적이 있어요. ‘거기(농구교실)서 뭐하냐’고 하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이게 뭐 어때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프로 감독, 코치가 돼야만 보람을 느낄까?’라고 생각 했죠. 여기서 절 도와준 분들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믿고 아이들을 보내주시는데 대한 보답을 하고 싶었죠. 열심히 노력한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훈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농구의 매력’을 전파하고 있었다. 대학 강단에서는 농구지도법과 생활스포츠를 지도하고 있다. ‘농구는 재미있는 운동’ 이라는 걸 알리고 싶단다. “차라리 학생들 가르치는 건 더 편해요. 제가 점수를 줘야 하니까 말을 잘 듣죠(웃음).” 최근에는 tvN에서 방영예정인 농구프로그램 「버저비터」에도 출연 중이다. 김훈을 비롯해 우지원, 현주엽, 양희승 등 농구대잔치 스타들이 감독을 맡아 연예인들을 훈련시켜 겨루는 프로그램이다. “선수들 가르치는 것에 대한 맛만 보고 있어요. 감독님들이 이렇게 가르치시겠구나 하죠. 잘 됐으면 좋겠어요. 이런 프로그램이 잘 되면 농구에 대한 관심도 늘어날 거라 생각해요.”

동호회무대의 ‘스마일슈터’
그는 선수 은퇴 후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유명했던 선수들이 대중들한테 잊히면 되게 힘들어해요. 술, 담배에 많이 의존하죠. 저 같은 경우도 은퇴를 하고 나니까 허무하더라고요. 몸무게가 82kg에서 100kg까지 쪘어요. 밖에 나가기도 싫고, 뭘 해야 하나 고민되더라고요. 한 번은 초등학교 체육관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밤 10시가 됐는데도 불이 켜져 있는 거예요. 뭐하나 들어가 보니까 동호회팀이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저보고 오라고 하는 거예요. 인원수가 부족하니까 같이 하자고요. 절 알아보고는 다들 놀라시더라고요. 그리고요? 그 후부터 거의 매일 나갔어요.”  

어떤 일을 할지 막막했던 그에게 동호회농구는 ‘사회’를 알려줬다. 일반인으로 살아가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다시 뭔가를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뭘 했을지 모르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거구나라고 느꼈어요.” 이후 그는 생활체육에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고, 지금까지도 ‘공포의 3점 슈터’로 활약 중이다. 2016년 열린 아디다스 크레이지코트 무제한급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동호인들 수준이 높아요. 요즘엔 선수 출신들이 많아요. 예전엔 저 혼자였는데…. 이제는 생활체육에서도 은퇴해야 하냐고 하죠(웃음).”  

그는 최근 젊은 선수들이 일찌감치 은퇴하고 생활체육으로 건너오는 현실이 안타깝다고도 전했다. “아직 쌩쌩한 선수들이 많은데, 너무 빨리 은퇴하는 것 같아요. 놀레벤트 이글스가 연세대를 이기면서 화제가 됐잖아요. 그렇게 실업팀이라도 있어서 선수들이 갈 곳이 늘어나면 어떨까 싶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제가 실업팀을 운영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다들 농구로 인생을 보냈는데, 아쉽잖아요. 꿈은 이뤄진다고 하는데, 그런 친구들 모아놓고 농구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제 닉네임인 ‘스마일슈터’처럼, 같이 웃으면서 농구 했으면 좋겠어요.”

진정한 프로는 아니었다
김훈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선수 시절, 그토록 치열하게 운동하고, 경쟁했던 자신이 신기하다고 말한다. “제가 큰 그릇은 아닌 것 같아요. 유소년 농구는 같이 뛰어주고 즐겁게만 해주면 되는데 프로는 아니에요. 이겨야 하고, 지면 낙오되죠. 그런 생활을 너무 오래 했어요. 내가 그동안 농구선수를 한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독수리 5형제라고 불렸는데, 지금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주전으로 뛰지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경은, 이상민, 서장훈 등 그런 좋은 선수들과 같이 뛰었다는 게 참 신기해요(웃음).”  

김훈은 프로 원년인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프로선수로 활약했다. 그가 돌이켜보는 자신의 프로생활은 어떨지 궁금했다. “진정한 프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프로라면 자신의 몸값은 자기가 올리고, 인정을 받아야 해요. 절대 남이 먼저 알아주는 게 아니죠. 미국 같은 경우는 직접 개인트레이너도 고용하고, 술, 담배도 자제해요. 코트 위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철저하게 관리하죠. 근데 전 그렇게 못 했던 것 같아요. 저희는 초반에는 실업팀이나 다름없었어요. 프로로 가는 과정이었죠. 돈에 대한 개념이나 성공 욕심이 그렇게 크지 않았죠. 술, 담배 하는 선수도 많았고요. 이제 진짜 프로가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프로다운 생활을 하고 은퇴를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두고두고 아쉽죠.”  

김훈은 아쉬웠던 선수생활을 뒤로 하고 농구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운동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예전 농구가 재밌었다고 하는데, 그때도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선수를 좋아했지, 농구 자체를 본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농구가 정말 재밌는 운동이란 걸 알리고 싶어요.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농구를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농구의 재미를 알리고 싶어요.”

bonus one shot_ 힘들 때 잡아준 상민이형
농구 인기가 절정이던 90년대 중반, 연세대 재학 시절 이야기도 궁금했다. 그는 신입생 시절 기억을 들려주었다. “연세대를 선택한 이유는 최희암 감독과 (정)재근이 형의 멋진 모습 때문이었어요. 감독님은 늘 웃고 계셨고, 재근이 형은 사나이 같았잖아요. 다른 선배들도 다 따뜻해 보였고요. 그런데 처음 가자마자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는데 아무도 안 받는 거예요. 그 때부터 신입생 길들이기가 시작된 거였죠.” 연세대의 선후배 관계는 보기완 달리 엄격한 면이 많았다. 하지만 힘든 생활 속에서 따뜻한 정도 있었다. “학생들이 잔디밭에서 놀고 있는 거 보면 정말 부러웠죠. 우리는 땀 뻘뻘 흘리면서 운동하는데요. 그 때 (이)상민이 형 학번이 없었고, 저희 학번도 많이 그만두고 그럴 때에요. 1학년 때 늘 허드렛일은 상민이 형과 제가 도맡아서 한 거예요. 상민이 형이 그러더라고요. 조금만 참으라고요. 자기 4학년 되면 터치 안 할 테니까 제발 남으라고요. 상민이 형이 달래준 덕에 힘든 시간을 참을 수 있었죠(웃음).” 김훈을 다독여준 이상민이 없었다면 연세대의 황금멤버는 유지되지 못 했을 것 같다.

김훈은…
1973년생으로 서대전초-대전중-대전고-연세대에서 농구를 했다. 연세대 재학시절 3점 슈터로 활약하며 황금기를 이끌었고, 늘 웃는 표정 덕에 ‘스마일슈터’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1997년 대우에 입단해 SBS, 전자랜드, LG에서 활약했고, 2007년 은퇴했다. 프로 통산 3,477점, 649리바운드, 482어시스트, 324스틸, 3점슛은 540개를 기록했다. 3점슛 성공개수는 KBL 역대 26위에 랭크돼 있다. 은퇴 후 2009년부터 수원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김훈농구교실을 운영 중이다.

#사진 - 유용우 기자

  2017-02-02   곽현(rocker@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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