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전 신라 천년 고도 경주의 문화재들

장영태 2017. 2. 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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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전 경주의 문화재 사진들이 대거 공개됐다.

경주학연구원은 일본 나라시 아스카엔(飛鳥園)에서 보관해 오던 1920년대 말∼1930년대 초의 한국 관련 문화재 유리건판 필름 700여장을 재촬영해 공개했다고 1일 밝혔다.

이중 700여장이 한국과 관련한 사진과 실측도면이며, 그외 일본과 중국의 문화재 사진인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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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전 경주의 문화재 사진들이 대거 공개됐다.

경주학연구원은 일본 나라시 아스카엔(飛鳥園)에서 보관해 오던 1920년대 말∼1930년대 초의 한국 관련 문화재 유리건판 필름 700여장을 재촬영해 공개했다고 1일 밝혔다.

일본인 노세 우시조(能勢丑三, 1889~1954)씨가 일제강점기에 경주 등지를 방문해 유리건판에 남긴 이 사진은 당시 우리 문화재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정비되기 전의 실태를 확인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경주학연구원은 지난 2014년부터 아스카엔 측과 교섭한 끝에 지난해 12월 유리건판 3700여장을 복제 촬영했다. 이중 700여장이 한국과 관련한 사진과 실측도면이며, 그외 일본과 중국의 문화재 사진인 것으로 밝혀졌다.


노세 우시조는 1926년 경주 서봉총 금관 발굴 현장을 찾은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의 수행단 일원으로 처음 경주에 왔다. 당시 교토제국대학 공학부 건축학교실 조수였던 그는 37세였다. 이 짧은 경주 방문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 경주의 문화유산에 흠뻑 빠지게 된다. 특히 십이지신상에 매료돼 12지와 관련된 국내 유적지는 모조리 찾아다니며 유리건판 사진으로 남겼다. 그가 사비를 털어가며 촬영과 발굴, 복원까지 벌일 수 있었던 것은 교토의 재력가 자제였기 때문이다. 고대학협회 이사장이자 동료 학자였던 쓰노다 분에이(角田文衛)은 ‘고고학 교토학파'라는 글에서 “노세는 열정적으로 조선 고고학과 일본 석조공예사, 회화사를 연구했다”며 “특히 그는 신라 문화재만 보면 감격을 해서 당시 경주에서의 애칭이 ‘감격선생’으로 불리었다”고 소개했다.

이번에 소개된 사진을 보면 1928~1931년 원원사(遠源寺) 터에 완전히 붕괴된 채 벼랑 아래로 방치돼 있던 삼층석탑재를 수습하고 탑지를 발굴 조사한 뒤 이를 바탕으로 복원하는 전과정을 도면과 함께 유리건판에 남겨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동서 석탑 터를 실측하고 발굴한 모습과 각종 부재를 모아 놓은 사진, 석탑을 복원하기 위해 모형을 만들고 가조립한 장면, 노세가 직접 그린 평면도와 석탑 모형도까지 원원사터 관련 사진만 300여장에 달한다.


이밖에 헌덕왕릉과 구정동 방형분, 진평왕릉, 흥덕왕릉, 경덕왕릉, 성덕왕릉, 김유신장군묘 등 신라 왕릉을 비롯해 개성 고려왕릉에 대한 조사도 병행해 사진으로 남겼다. 경북 예천 개심사지 석탑, 전남 구례 화엄사 석탑 등의 십이지상을 최초로 주목한 것도 노세였다. 노세는 한국 십이지상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파악하고 그와 관련한 선구적 업적을 남긴 연구자였던 것이다.

노세 우시조가 원원사 석탑 복원에 얼마나 정열을 쏟아 부었는가는 그의 조사행적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경주 황복사지 십이지상과 헌덕왕릉 십이지상을 수차례 걸쳐서 발굴조사를 했다. 원원사 십이지상과 관련해서 예천 개심사지 석탑, 구례 화엄사 서탑, 경주시 미방리 폐동곡사지, 암곡리 무장사지 등의 십이지상을 최초로 주목한 것도 노세 우시조였다. 또 경주의 십이지상뿐 아니라 개성의 고려시대 왕릉 및 중국과 일본의 십이지상을 망라해서 비교 검토했던 것도 그의 연구 업적의 하나이다.


이번 사진자료 발굴은 지금처럼 정비·복원되기 이전의 신라 왕릉 옛 모습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일제강점기의 경주 유적이 처한 상황을 입증하는 기록이기 때문에 향후 문화재 연구를 위해 보고서 발간 및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경주=장영태 기자 3678jy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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