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기지엔 왜 미혼 남성이 들끓었나

김미영 2017. 1. 1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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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본 독일 '미군 기지' 연구
독일에선 예의바르고 '좋은 이웃'
한·일 기지촌 폭력과 범죄 부담
문승숙·마리아 혼 교수의 '역작'

[한겨레]

기지촌 내 두 연인, 서울 북부(1965). 그린비 제공

오버 데어-2차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 미군 제국과 함께 살아온 삶
문승숙·마리아 혼 엮음, 이현숙 옮김/그린비·3만7000원

미군 기지촌 ‘위안부’ 여성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소송 선고 공판이 20일 열린다. 2014년 6월25일에 소송을 제기한 지 2년 반 만의 일이다. 122명의 미군 기지촌 위안부들은 국가가 직접 기지촌을 만들고 ‘기지촌 정화대책’으로 여성들을 관리해왔으며, 성매매를 권유하고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피고 대한민국’은 이런 주장을 전면부인하고 있다.

<오버 데어>는 미국 영토 외부에 배치된 미군의 90%가 있는 한국과 일본(오키나와), 독일(서독)의 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미군과 주둔 사회간 상호관계를 중심으로 살폈다. 세계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미군 기지들은 주둔군지위협정(SOFA)으로 치외법권적인 공간을 형성했다. 군 기지의 특성상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 공간에선 인종, 계급, 성을 가로지르며 폭력적이고 불평등한 문제가 발생했고 쉽게 은폐됐다. 미국 바사대학교 문승숙 교수(사회학)와 마리아 혼 교수(역사학)는 미군 기지를 군사제국의 팽창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미군 기지가 각 사회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해외 미군 기지는 나라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에는 주로 젊은 독신 남성 군인을 1년간 배치한 반면, 일본과 독일에는 2∼3년으로 복무 기간을 조금 더 길게 두었고 아내와 자녀도 함께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국을 상시 전시지역으로 간주해, 가족을 함께 보내기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군과 각 주둔국 사회 사이의 관계도 다르게 형성되었다. 가족을 동반해 긴 복무기간을 부여받고 배치된 기혼 군인들은 미혼 군인들에 견줘 기지 주변 주민들과의 관계가 “훨씬 더 ‘정상적’”이었다.

공간적 합의도 중요하다. 한국과 일본의 미군 기지는 주로 소외된 지역에 자리잡았다. 경기도 평택·오키나와 등 기지촌 주민들은 미국 군대의 존재가 만든 성산업과 미군 범죄, 환경문제 등의 짐을 짊어져야 했다. 반면 독일의 미군기지는 “주민들 사이에 흩어져 있는 만큼 ‘좋은 이웃’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했다. 저자들은 “미국의 군사제국이 국가간의 경계와 주권을 흐리게 하는 혼성적인 공간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고, 이 “혼성공간은 치외법권적인 군사기지와 미군 병사와 지역주민들이 교류하는 곳인 ‘오버 데어’에 존재”한다고 봤다.

한국전쟁 당시 식량을 운반하고 있는 카투사. 그린비 제공

주둔국 정부와 미군 사령부는 성매매 체계를 암묵적으로, 또는 공공연하게 보장했다. 한국, 일본, 독일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각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하층 계급의 여성들을 동원해 미군 위안소를 운영했다. 위안소 곁엔 세탁소, 식당, 술집 등이 들어서며 지역경제를 떠받쳤다. 한국의 박정희 정권은 기지촌정화위원회를 설립하여 ‘깨끗한 성관계’를 위한 정화운동을 벌이면서 양국간의 굳건한 ‘섹스동맹’을 유지했다.

냉전시대가 끝난 지금, 주둔국 여성들을 이용해 군사적 긴장 상태를 해결하던 미국 제국주의의 시스템도 막을 내렸을까? 한국, 일본, 독일 모두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뤘지만 이 문제에서는 큰 변화는 없다. 성매매를 도맡던 하층 계급 여성들이 다른 국적의 여성들로 대체되고 있을 뿐, 기지촌 근처의 성매매 공간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책은 밝혔다.

나아가 한국의 특수성에도 눈길을 준다. 저자들은 “한국에서 미국의 신식민주의 경향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면서 주한미군에 배속된 한국 군인 카투사를 예로 든다. 한국전쟁 당시 심각한 인력부족을 타개하려고 만든 카투사는 그 뒤 값비싼 미군을 대체하는 용도로 쓰였다. 저자들은 카투사가 흡사 19세기 유럽 식민주의 군대가 원주민 군대를 배치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만들어졌다고 지적한다.

“오버 데어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저자들은 미군기지가 왜 아직도 필요한지, 존재해야 한다면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하는지 등 의견을 수렴하고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좀 더 평등하고 투명한 주둔국지위협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둔국에 대한 존중이 더 평등한 국제 권력구조를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라고도 덧붙였다. 특히 한국에 주는 애정어린 충고로 읽힌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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