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색] "취업준비 하다가 페미니스트 돼요"..'취업 미궁' 갇힌 여성들

이창수 기자 입력 2017. 1. 5. 20:29 수정 2017. 1. 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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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전선 뛰어든 스물 넷 '닭띠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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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닭의 해’ 정유년(丁酉年)이 밝았다. 포근한 날씨가 이례적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젊은이들의 신음소리는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취업 빙하기’를 맞딱뜨린 취준생들은 “새해 희망같은 달달한 것이 아직 남아있느냐”며 반문한다. 특히 취업시장에서 냉대받고 있는 20대 여성들은 도둑처럼 온 새해가 두려울 따름이다. 닭의 해, 이제 막 취업전선에 뛰어든 스물 넷 닭띠 여성들도 하나같이 “미로에 갇힌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성전환하고 싶단 생각까지 들었어요”

지난해 하반기 대기업 공채를 준비했던 홍미연(24·여)씨는 해당 기업 홈페이지에 올라온 과거 신입사원 단체 사진을 보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고 한다. 사진 속에 환하게 웃고 있는 35명 중 여자는 단 5명뿐이었기 때문. 홍씨는 “원서를 쓸 때부터 ‘이 회사는 여자를 별로 안 뽑는 구나’는 생각에 절로 위축이 됐다”며 “전형 내내 ‘5명 안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고 말했다.

소위 ‘명문 사립대’를 졸업한 홍씨는 각종 대외활동에서부터 영어와 중국어 등에 능수능란한 ‘고스펙’ 자원이었지만, ‘취업문’은 열릴 생각을 않았다. 홍씨는 “대기업 인사팀에서 멘토랍시고 학교를 찾아 대놓고 ‘여자들은 힘들다’, ‘공기업 준비하라’고 하는 얘기까지 하더라”며 “동아리 선배들만 봐도 여자선배들이 훨씬 힘겨워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올 한해, 취직만 하면 된다. 이것이 유일한 소망”이라며 씁쓸해했다.


‘취업의 곡소리’는 남녀를 가리지 않았지만 20대 여성들에게 취업문은 특히 좁았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0대 여성의 실업률은 전년보다 1.0%포인트 오른 7.3%를 기록했는데, 이는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20대 여성 실업률은 지난해 1월부터 매달 1999년 이후 역대 최고치(동월 비교)를 경신했다. 반면 20대 남성 실업률은 9.1%로 1년 전보다 오히려 1.0%포인트 떨어져 대조를 보였다.

취업에 뛰어든 여성들 사이에서 “차라리 남자가 되고 싶다”는 자조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서울의 한 여대를 졸업하고 기업 입사를 준비하던 이가영(24·여·가명)씨는 아예 공무원 준비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말 대기업 면접 현장에서 ‘유리천장’을 직접 겪으면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이씨는 “어느 회사든 여성 합격자는 거의 없다. 어떨 때는 성전환까지 하고 싶더라”라며 “공무원은 ‘여자라서’ 차별 받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면접장에서 툭툭 튀어 나오는 성차별 질문들은 이씨가 마음을 돌리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 이씨는 “면접에 가면 꼭 여대의 장단점 같은 것들을 물어본다”면서 “남자지원자들도 ‘결혼하면 어떻게 할 거냐’, ‘아이 계획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 일이 많냐”며 반문했다.


지난해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청년구직자 1068명을 대상으로 한 ‘청년면접 실태’ 조사결과, 전체의 64.8%는 “면접과정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고 응답했다. 성차별 발언 등 불쾌한 면접으로 인해 구직자의 61.6%는 ‘높은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졌으며(46.9%), 구직의욕 저하(23.9%), 면접 두려움(14.6%)과 심지어 구직을 포기(1.9%)한 경우도 발생했다.

청년 구직자들은 △경력이나 학력 비하발언(48.2%) △개인사 질문(43.9%) △성차별 질문(42.1%) 등 부적절한 질문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면접 후에도 면접결과 미 통보(18.6%)나 일방적 출근 일정 통보 및 강요(9.0%), 통보 후 채용취소(4.3%)에 시달린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준비 3개월만 하면 ‘페미니스트’ 돼요”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그저 푸념으로만 치부하기엔 여성들 앞에 놓인 ‘취업 허들’이 낮지 않아 보인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2015년 484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 10곳 중 3곳은 신입 채용 시 특정 성별을 할당해 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채용 비율 기준이 있는 기업은 48.4%였고, 여성은 30.8%였다. 당시 상반기 대졸 신입 채용을 진행한 기업(166개사)이 밝힌 신입사원 성비는 평균 64:36(남성:여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유리천장’을 취업에 나서면서 비로소 실감했다는 여성이 적지 않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 중인 김보나(24·여·가명)씨는 최근 현직 PD로부터 “여성 PD들은 일은 못하고 핑계만 내놓는다”는 식의 비하발언을 면전에서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한다. 김씨는 “대학을 다닐 때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잘 못 느꼈다”면서도 “취업시장에서 여성을 암묵적으로 차별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체감한 것은 훨씬 달랐다”고 말했다. 이어 “우스갯소리로 ‘취업준비 3개월만 하면 다 페미니스트가 된다’고 얘기할 정도”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20대 여성 실업률이 높아지는 데에는 경제불황으로 신규 채용이 줄어든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대내외 불확실성 탓에 기업들이 경력직 채용을 늘리고 신입사원 선발을 줄이면서 고용 취약 계층인 여성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여전히 여성 고용을 ‘비용 상승’ 요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우리사회에 ‘출산과 육아, 가사는 여성이 맡는 것’이란 인식이 만연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당장 사회가 바뀌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여성들은 최소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랐다. 방송기자가 꿈이라는 대학생 김선영(24·여)씨는 “최근 대통령 때문인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들려오는데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사회가 먼저 공정한 기회를 주고 ‘울어볼 기회’라도 줬으면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가 저의 해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한다. 새해엔 취업을 고민하는 모든 청년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며 웃음 지었다.

이창수·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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