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륭의 원사이드컷]리버풀의 압박, 맨시티의 생각까지 통제했다.

'맨오브더매치' 결승골의 주인공 바이날둠 (LFC.com)

‘박싱데이’ 최고의 빅매치에서 리버풀이 웃었다.

양팀이 서로 골을 주고 받는 난타전을 예상한 전문가들도 많았지만 전반 8분 터진 조르니지오 바이날둠의 헤더가 결승골이 되었다. 상대 팀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의 능력을 냉정하게 인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던가. 맨시티의 과르디올라 감독은 리버풀의 지난 라운드인 스토크시티 전을 현장에서 관람하며 평소보다 세밀하게 경기를 준비했지만 2003년 이후 14경기 동안 이어진 맨시티의 안필드 원정 무승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박싱데이의 시작이였던 지난 18라운드는 상위 6개 팀이 모두 승리하며 순위표에 변화가 없었지만 오늘 경기의 결과로 리버풀과 맨시티의 승점은 넉점차로 벌어졌다.

박싱데이 중반, 상위 6개팀의 순위표

# 불안요소가 많았던 쪽은 맨체스터시티

리그 2위 리버풀, 리그 3위 맨시티. 팀 득점 1위 리버풀, 2위 맨시티. 하지만 상위 6개 팀 중 실점이 가장 많은 두 팀 역시 리버풀과 맨시티다. 플랜A에 대한 완성도와 조직은 리버풀이 낫다. 하지만 완성도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경 될 수 있는 전술 옵션은 맨시티가 더 많았다. 두 팀 모두 공을 점유하는 것과 상대를 압박하는 것을 선호한다. 올 시즌 리버풀의 전진 성향과 높은 위치에서 시작되는 수비는 때때로 빌드업 과정에서의 기초적 실수와 수비 뒷공간 노출에 대한 리스크를 동반했다. 반면 맨시티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다양한 전술적 접근이 여전히 선수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 같다. 이번 시즌 현재까지 맨시티가 혁신적인 전술을 몇 차례 보여줬지만 과르디올라가 클럽에 부임한 지 이제 겨우 6개월이 지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맨체스터 시티의 패스 맵, 4231 기본에 충실했으나 2선 자원들의 영향력은 미비했다.

양 팀의 공통적인 불안요소는 수비였다. 리버풀은 최근 마팁의 부상 공백을 비교적 잘 메꾸고 있는 클라반이 센터백 위치에서 진정한 시험무대에 올랐다. 한 자리를 제외하면 스쿼드 상 큰 불안요소가 없었다. 이번 라운드를 앞두고 맨시티가 리버풀보다 24시간 더 회복할 여유가 있었지만 박싱데이 일정이 시작되기 전, 모든 팀들은 일주일 넘게 정비하며 휴식을 취했다. 불안요소는 맨시티가 많았다. 앞선 경기에서 무릎에 타박상을 입은 존 스톤스는 오타멘디와 짝을 이뤄 센터백으로 선발 출전했다. 콜라로프와 사발레타가 좌우 풀백에 포진했고 최근 귄도간의 자리에서 그럭저럭 활약 중인 야야 투레가 페르난지뉴와 3선에 배치됬다.

리버풀은 팀 내 에너지 레벨이 리그에서 가장 우수한 팀이다. 높은 지점에서 적절한 상황에 다같이 수비를 시작하며 상대 진영에서 공을 빼앗기면, 공에서 가장 가까운 선수가 100% 스프린트로 압박을 바로 시도한다. 많이 뛰고 폭발적인 풋볼 액션이 뛰어난 팀을 상대로 경기를 제어하려면 상대보다 더 많이 뛰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공을 다루는 기술적 부분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과르디올라 체재에서 맨시티는 과거보다 분명 건강해졌지만 현재 스쿼드 구성으로는 리버풀보다 더 많이 뛰긴 어렵다. 그렇기에 오늘 경기에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 중 두 번째 요소에 비중을 둔 것 같다.

사실 누군가에게 불안요소로 느껴지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요소가 될 수 있다. 맨시티의 좌우 풀백과 3선에 배치된 투레를 불안요소로 꼽은 이유는 이들이 리버풀의 속도와 폭발력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기술적인 능력을 극대화 시켜 리버풀의 압박을 개인 기술로 풀어냈다면 경기 양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맨시티 입장에서는 불행하게도 긍정보다는 부정적 요소들이 많이 발생했다.

골 장면에서 맨시티 수비의 형태, 사발레타의 포지셔닝

오늘 경기의 첫 골이자 결승골이 된 바이날둠의 골 장면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랄라나가 측면 돌파를 시도 할 때, 첫 번째 수비수인 사발레타는 지연 행위를 하며 계속 물러났다. 두 번째 수비수인 스털링이 빠르게 가세했지만 랄라나는 자신이 상대의 협력 수비 범위에 들어가기 직전, 좋은 크로스를 연결했다. 수비수는 자신보다 상대 공격수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인지하면 거리를 두고 진행이 예상되는 방향으로 미리 무게 중심을 이동시킨다. 상대가 치더라도 공간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짧은 순간의 수 싸움에서 랄라나는 사발레타의 생각을 역이용했다. 골 장면에서도 나왔지만 경기 내내 리버풀의 공격이 측면에서 진행 될 때, 사발레타와 콜라로프는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과르디올라가 선택 할 수 있었던 선수 옵션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리버풀은 과르디올라가 분석한 것보다 빠르고 폭발적이였다.

리버풀이 '압축' 시킨 공간에서 맨시티는 높은 점유율에도 불구, 좋은 형태를 만들지 못했다. (후스코어드닷컴)

# 리버풀의 ‘압박’, 맨시티의 ‘시간’을 빼앗다.

리버풀의 압박은 특히 전반전에 빛났다. 맨시티는 ‘풀백-3선 미드필드-2선 미드필드’ 순서로 공이 전개 되길 바랬다. 다양한 포메이션을 사용하는 과르디올라 감독이지만 오늘 맨시티는 4231을 바탕으로 기본에 충실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리버풀의 압박 강도가 빠르고 강하다보니 풀백(콜라로프, 사발레타)에서 3선(투레, 페르난지뉴)으로 연결되는 패스의 질이 좋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투레와 페르난지뉴는 공격 방향으로 첫 터치를 진행하지 못했고 맨시티가 자랑하는 2선(데브라이너, 실바, 스털링)은 공격할 기회조차 잘 잡지 못했다. 맨시티 입장에서 전반전은 악순환의 연속이였다. 리버풀 스리톱은 맨시티의 풀백을 귀찮게 했고 거기서 어렵게 공이 살아나와도 투레와 페르난지뉴는 공격적으로 공을 잡아 놓지 못했다. 3선에서 불리한 자세로 터치가 많아지자 리버풀 압박의 공략 지점은 더욱 명확해졌다. 최후방의스톤스와 오타멘디가 최전방 아게로를 향해 롱 패스를 시도하며 리버풀의 전진을 제어하려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리버풀의 잘 압축된 간격
경합 상황에서의 '한 발' 앞선 적극성은 세컨드 볼 상황에서 리버풀의 유리함을 이끌어냈다.


리버풀의 패스맵, 풀백들의 높은 전진, 풀백들과 전방 공격 자원간의 네트워크

확실히 안필드에서 리버풀은 더 강하다. 리그 19라운드 현재 홈에서 7승 2무, 모든 대회로 범위를 확대하면 작년 1월 스토크시티와의 리그컵 패배 이후 24경기동안 홈에서 패하지 않았다. 전반전, 리버풀은 공수 모든 상황에서 맨시티보다 좋은 형태를 유지하며 공수 간격을 최소화하며 공간을 최대한 압축시켰다. 맨시티가 1차 빌드업을 시도할 때, 모니터 화면 안에 양 팀의 모든 필드 플레이어가 다 보일 정도로 간격이 압축되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공을 갖고 있는 팀이 더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발 밑에 있는 공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판단을 해야 하는데, 판단을 하려면 우선 생각 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리버풀은 맨시티가 활동 할 수 있는 공간을 잘 압축시켰고 상황 인식을 위해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까지 빼앗아버렸다.


전체 점유율은 맨시티가 앞섰지만 액션 존에서 나타난 분포도는 고른 편이다. (후스코어드닷컴)

# 과르디올라의 반응

전반전의 영향력은 리버풀이 더 강했다. 밀너의 패스를 받은 피르미누의 터치가 조금만 세밀했다면 하프타임에 양 팀의 스코어 차이는 두 골이 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맨시티 쪽에서 전술적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했다. 축구 경기에서 전반전 첫 번째 플랜은 코칭스텝들이 수많은 고민 끝에 내린 최선의 결정이다. 그것이 필드에서 계획대로 펼쳐지면 좋겠지만 문제는 항상 그렇지 못 할 경우에 발생한다. 하지만 경기 시간이 흐를수록 개선 될 여지가 있다면 플랜을 수정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지만 맨시티는 전반전에 힌트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시티는 전반과 동일한 플랜으로 후반전을 시작했다.

후반전을 중계하는 내내 궁금한 것은 두 가지 였다.

“맨시티가 어느 시점에 포메이션에 변화를 줄까?”

“리버풀의 에너지가 언제까지 유지 될 수 있을까?”

골이 필요한 쪽은 맨시티였지만 오히려 과르디올라는 먼저 변화를 주는 대신, 리버풀의 에너지가 떨어지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후반 10분 이후 맨시티는 중원에서 전후 볼 소유 작업을 통해 공격의 활로를 만들어 나갔다. 리버풀의 에너지가 전반에 비해 조금씩 떨어지면서 간격이 벌어졌고 맨시티의 패스에도 생각이 담기기 시작했다.

먼저 변화를 준 것은 리버풀 이였다. 후반 11분, 발네 이상을 느낀 핸더슨 대신 오리기가 투입되면서 랄라나가 중앙 미드필더로 내려왔다. 교체 투입 된 오리기는 남은 30분 내내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후반전 시간이 갈수록 맨시티는 무게 중심을 공격 쪽에 두었다. 하지만 오타멘디와 스톤스 사이에 위치했다가 측면으로 반복적인 움직임을 진행한 오리기 때문에 맨시티 수비진은 종료 휘슬이 울릴 때 까지 스트레스를 받았다. 핸더슨과 오리기의 후반 이른 시간 대 교체는 아마 클롭 감독의 계획에 예정되어 있지 않았겠지만, 리버풀에게는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반면 후반전, 변화무쌍한 전술 변화가 예상된 과르디올라 감독의 첫 번째 교체는 경기 종료 4분 전에 이루어졌다. 오늘 맨시티 교체 명단에 공격 유닛은 나바스와 이헤아나초가 전부였다. 두 선수가 경기 막판 연속으로 투입되며 맨시티는 3412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꾀했다. 하지만 반응을 기대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후반전 중반 이후, 중계 카메라는 과르디올라 감독을 여러 차례 비췄다. 현장에서 벤치 상황을 살필수 없으니 추측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였다. 무언가 생각은 많아 보였지만 제스쳐나 표정은 정적이였다. 과르디올라는 바이에른 뮌헨 시절에도 가끔 그런 경우가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법칙 중 유명한 것이 생각난다.

“혼란스로운 상황에서는 단순한 것을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