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진심을 다해 진료하겠단 다짐, 진상 환자 앞에선..
과잉진료 했다고 성화
병원비 못 내겠다 억지
그중에 최악은 성희롱..
기내 난동 탑승 거부처럼
진료 거부하고 싶어져
꽤 오래전 큰딸이 중이염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경과가 좋아 퇴원해도 된다는 말을 들은 아내가 의사에게 무엇인가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학교 선배이기도 한 그 의사에게 술이나 한번 사면 된다며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나 몰래 양주 한 병을 선물한 모양이었다.
환자나 가족들이 의사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 한다면, 아마도 그러지 않을 경우 치료에 뭔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그러는 것일 게다. 그런 심정이 선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의사 입장에서는 그런 선물이 환자를 대하는데 딱히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어떤 환자는 내키지 않는 마음이 들 때도 있고, 어떤 환자에겐 괜히 친밀감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후자의 경우가 바람직한 환자와 의사의 관계일 것이다.

환자 중엔 진료실 안과 밖의 태도가 다른 사람도 있다. 접수대에서 직원들을 막 대하다가도 진료실 문을 열면서부터는 공손하게 바뀐다는 것이다. 가끔은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동네 병원에 올 때마다 대기실에 비치된 인스턴트커피나 녹차를 한 움큼씩 집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직원들이 정중하게 말리면 "뭐 이깟 걸 갖고 그러느냐"고 오히려 성을 낸다고 한다. '뭐 그깟 것'을 굳이 뭉텅이로 가져가시려고 하는지 원.
대낮에 술 취한 사람의 행패를 당하는 일도 있다. 기운이 없다고 해서 영양제를 맞고 있는 환자의 아들이 술에 취해 병원에 들이닥치더니 대기실에서 큰 소리를 치며 공포 분위기를 만든 적이 있었다. 진료실에 있다가 나가 보니 그 40대 남자는 직원들이 자기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누워서 영양제를 맞고 있던 환자가 무안해하며 맞던 수액도 뺀 채 죄송하다며 술 취한 아들을 데리고 나갔다. 그럴 때는 경찰을 불러야 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한 여자 환자의 혈액검사를 했더니 고지혈증이 발견돼 자세한 상황을 알기 위해 검사 항목을 추가했다. 환자가 가고 난 뒤 1시간쯤 됐을 때 환자의 남편이 와서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에게 쓸데없는 검사를 하고 돈을 더 받았다"고 고성을 질렀다. 대기실에 있던 환자들이 그 소리를 들을 테니 나로서는 항변해야 마땅하지만, 당장 진료하고 있는 환자 때문에 나가볼 수도 없었다.
가전제품이 고장 나 서비스 기사를 부르면 부품을 교체하지 않아도 출장비를 주는 것이 상례다. 진료를 받은 뒤 처방이 필요 없다고 판단했을 때, "처방이 없는데 왜 진료비를 받느냐"고 따지는 환자들도 제법 있다. 그럴 때면 진료실과 수납처가 멀리 떨어져 있고 업무도 분명히 구분돼 있는 대학병원이 부럽기도 하다.
환자 가운데 최악의 '진상'은 직원에게 성희롱하는 사람들이다. 주사를 맞을 때 꼭 무릎까지 속옷을 내리는 남자도 있고, 직원의 몸을 습관적으로 만지려고 하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진료가 끝났는데도 직원들에게 실없이 농을 거는 환자도 의외로 많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절대 두루뭉술 넘어가지 말고 단호하게 거절하라"고 지시한다. 최근 기내 난동으로 탑승이 거부된 사람처럼, 그런 환자는 '진료 거부' 대상이다.
대학과 임상에서 배우고 공부한 대로 진심을 담아 최선의 진료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병원에서 이런 일을 당할 때면 환자에 대한 진심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물론 내가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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