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황실의 성 '애신각라'는 신라를 생각해서 만든것?

만주족은 소와 양을 몰고 다니는 유목종족은 아니다. 이들은 반농반수렵 종족인데 흔히 유목종족과 혼동하곤 한다.
청나라는 처음 흥기했을 때 아이신 구룬(Asin Gurun)이라고 불렀다. 아이신은 황금을 뜻한다. 즉 우리에게는 익숙한 ‘후금(後金)’이다. 그러나 초대 군주인 누르하치의 뒤를 이은 홍타이지는 곧 아이신 구룬이라는 이름을 금지하고(이때 주션이라는 이름도 금지된다) 만주(滿洲)와 다이칭 구룬(Daicing Gurun), 즉 ‘대청국(大淸國)’이라 칭했다.
만주라는 이름은 문수보살의 ‘문수(文殊)’에서 온 말이라는 게 통설이다. 이들 청나라 황실의 성은 아이신기오로(Aisin-gioro)라고 하는데, 한자로는 애신각라(愛新覺羅)라고 한다. 애신각라라는 한자는 발음을 표기할 수 없는 한자의 특성 때문에 비슷한 음을 가져다 쓴 것인데 이런 표기 방법을 ‘음차(音借)’라고 한다.
그런데 유사역사학에서는 이 글자 안에서 신라(新羅)를 찾아내어서는 한자를 자기들 마음대로 해체해서 애신각라는 ‘신라를 잊지 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신’은 아이신, 즉 황금을 뜻하는 것이고 기로오는 족(族)을 의미한다. 각각 다른 단어일 뿐인데 그 두 개를 조합해서 없는 뜻을 찾아낸 것이다.
왜 청나라 황실은 아이신기로오 즉 ‘황금 종족’이라 칭한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선대인 금나라에서 유래한다. 그럼 여기서 다시 한 번 의문을 가져보자. 왜 여진족이 세운 나라인 금나라는 황금을 나라 이름으로 정했을까?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금나라 태조 아쿠타(Akuta) - 우리나라에는 아골타(阿骨打)로 알려진 - 가 직접 한 이야기가 있다. '금사본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한 번 보자.
“요나라는 빈철(좋은 철)로 국호를 삼았으니 굳셈을 취한 것이다. 강철이 비록 굳건하나 끝내는 변하고 부서진다. 오직 황금만이 변하지 않고 부서지지 않는다. 금의 색은 백색이고 우리 왕기얀(Wanggiyan)부도 백색을 숭상한다.”
요나라가 빈철을 나라 이름으로 정했다는 것은 아쿠타의 착각이다. 아무튼 당시 금나라는 요나라와 생존을 건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요나라를 이길 수 있는 나라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금사지리지'에는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금나라의 국호가 유래한 곳은 송화강의 지류인 아르추카 강이라는 것이다. 음차로는 안출호(按出虎)라고 쓴다. 이 강에서 사금이 나온다고 한다. 이 강이 있는 곳이 바로 아쿠타의 부족인 왕기얀부(한자로는 완안부(完顔部)라고 쓴다)가 있었던 곳이다. 자신들이 살던 지명으로 나라 이름을 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성계도 국호를 조선과 자신의 고향 이름인 화령(和寧) 중 하나로 정하고자 했었다.
단순히 금(金)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신라의 국성인 김(金)과 연관해서 금나라를 신라와 엮어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살펴본 바와 같이 이들과 신라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금나라 시조가 우리나라에서 건너갔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금사본기'에는 확실히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금나라 황실의 시조인 함보(函普)가 고려에서부터 왔다고 나온다. 이 고려는 고구려를 가리키는 것이다. 고구려는 장수왕 이후에 국호를 고려로 바꾸었다. 왕건은 고구려 계승을 천명하면서 국호도 그대로 사용했던 것이다.
고구려는 만주의 강자로 이때까지도 그 정치적 카리스마를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금나라는 자신들의 만주의 주인이었던 고구려의 후계로 자처한 것이다.
그러나 후일 세워진 청나라는 고구려의 흔적을 지워버리는데 몰두한다. 고구려의 계승국이 조선이라는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껄끄럽게 여겨졌던 것 같다. 건륭제가 명하여 만든 '만주원류고'에는 만주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나라들까지 모두 다루고 있는데 오직 고구려만 쏙 빠져 있다. 심지어 '금사본기'에 나오는 함보의 출신도 신라로 바꾸어놓았고, 금나라의 국호도 신라의 왕성인 김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사지리지'의 아르추카 강에서 국호가 나왔다는 주장도 견강부회라고 부정하고 있다.
강대한 나라인 고구려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게 더 좋지 않은가? 왜 굳이 신라로 자기들 선조의 나라를 일컬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일조를 하긴 했지만.
이런 경우에 다른 나라의 역사를 비교해 보는 것이 좋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자신들의 근원으로 문명과 종교의 나라인 그리스나 이스라엘을 삼지 않고 그리스에 멸망한 트로이를 들던 시절이 있었다. 트로이에서 달아난 왕족 아이아네스가 세운 나라가 로마라는 전설은 유명하다. 하나 더 들어보자. 13세기의 아이슬란드 시인 스노리 스투를루손은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에게는 트로르라는 손자가 있었는데, 이 트로르가 북구 신화의 토르라고 주장했다. 트로이 사람들이 북유럽인이 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스의 발전한 문명은 변방의 종족들에게는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그와 대항할 수 있는 문명을 취하여 그리스와 대등한 형태를 주장할 수 있는 정당성 획득의 욕망이 이런 주장들을 낳았으리라 생각한다. 이것은 중국문명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그에 대항했다는 전설의 주인공 치우를 선조라고 주장하는 행위와도 마찬가지다.
금나라 사람들은 고구려의 위대함을 계승하고 싶어서 자신들의 족보에 고구려를 끼워넣었는데, 후대의 청나라는 고구려의 영향력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청나라 때 동북공정이 바로 '만주원류고'인 셈이다.
'고려사'를 보면 고려 왕실은 당나라 숙종의 후예로 되어 있다. 이제 이런 기록이 있으니 고려는 중국의 역사라고 하겠는지?
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최근에 네이처 지에 청 황실 후예들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이들은 우리나라와는 별 관련이 없고 몽골과 관련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전설이 반영하는 것은 거대한 세력 간의 흐름일 뿐이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의 기록을 다룰 때는 후대의 기록으로 전대의 기록을 마구 뒤집어서는 안 된다. '만주원류고'는 당대로부터 한참 지난 뒤의 역사책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문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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