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셰프' 박찬일 "진정한 미식은 생명존중 수반돼야..먹방·쿡방, 현실 호도"
[경향신문] ㆍ에세이집 ‘미식가의 허기’ 출간

“진정한 미식은 생명에 대한 ‘교양’과 ‘존중’이 수반됩니다. 교양은 형식적 에티켓이 아니라 마음이죠. 맛을 논하기 전에, 가령 달걀 한 개의 소비자가격이 130원일 수 있는 것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즉 양계장 닭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생을 마감하는지 알고 자비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거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존중과 감사의 마음으로 음식을 아껴먹게 됩니다. 이는 소·돼지 등 기꺼이 인간의 먹이가 되는 다른 생명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돼요. 해물전골에 낙지를 투입하면서 적어도 낙지춤을 묘사한다거나 하는 희롱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글 쓰는 셰프’로 유명한 박찬일씨(51)가 그동안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 에세이집 <미식가의 허기>(경향신문)를 펴냈다. 사계절이 뚜렷한 이 나라의 주방장으로서, 오감으로 느낀 이야기들을 졸깃하고 맛있는 문장으로 엮었다. 이 땅의 서민들의 고단한 삶에 위안을 주는 뒷골목의 먹거리, 그 식재료를 생산하거나 조리해내는 노동자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씨실과 날실로 엮여 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몽로’에서 박 셰프를 만났다. ‘몽로’는 서교동 ‘로칸다 몽로’에 이어 최근 문을 연 그의 일터다. 그는 “음식 한 그릇엔, 그리고 그 값엔 수많은 정치·경제 문제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칼럼을 썼다”고 말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 창궐로 닭 2000만마리가 ‘살처분’이라는 생경한 말과 함께 생목숨을 잃는 현실 탓일까. 박 셰프의 얼굴엔 고민의 그림자가 짙어 보였다.
“더 많은 이윤창출을 위해 속도와 효율이 중시되는 시대잖아요. 그 결과 동물윤리는 도외시되고, 우리는 더 싼값에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지 모르죠. 하지만 옳지 않아요. 대신 우리가 덜 먹어야 합니다. 한 해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수조원이라고 하잖아요. 이건 곧 생산이 아니라 분배의 문제임을 방증하는 거죠. 아프리카 국가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것도 분배가 잘 이뤄지지 않아서이고요. 분배만 잘 이뤄지면 동물윤리를 준수해 음식값이 좀 더 오른다고 해도 모두가 사먹을 수 있습니다. 기본급과 시급을 올려 구매능력을 높이면 되니까요. 그러면 경제도 더 잘 돌아갈 겁니다.”
박 셰프는 TV의 음식방송, 이른바 ‘먹방’ ‘쿡방’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는 “방송사는 왜 음식을 다루는가, 현재의 음식문화가 가진 딜레마는 무엇인가에 대한 실체적 고민 없이, 단지 시청률에 급급해 현란한 테크닉으로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애·결혼·출산·집·인간관계까지 포기해 ‘5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시대입니다. 저임금 노동자와 가난한 독신가구도 늘고 있죠. 사실 먹방, 쿡방 시청자의 상당수는 방송에 나온 음식을 사먹을 돈도, 시간도 없는 가난한 이들입니다. 방송사는 음식에 대한 이들의 욕망을 대리만족시켜주고, 이들은 음식방송을 포르노를 보듯 끊임없이 소비하는 거죠. 현실에선 컵라면이나 39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으면서요. 과연 편의점 도시락이 맛있어서겠습니까. 형편상 그것밖에 먹을 수 없기 때문이죠.”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수개월 전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설탕을 처발라서 팔든 먹든 그건 자유다. 문제는 방송이다”라고 일갈했다. 요리연구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그가 출연하는 요리방송을 겨냥한 발언이다. 이와 관련해 박 셰프는 “온당한 평가”라고 말했다. 그는 “제대로 만든 깊이 있는 음식의 제조비용을 한 방에 허물 수 있는 게 자극”이라며 “설탕과 조미료, 공장식 장류를 배합해 만든 음식은 싸구려 쾌락을 제공하지만 그런 음식에 익숙해지면 건강을 해치고, 제대로 된 음식에 대한 감별력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인간의 쾌락은 단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단 음식에 익숙해지면 혀가 음식이 가진 다른 요소에 반응하지 못해 점점 더 단것을 찾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했다. 서양식 코스요리에서 단 음식을 맨 마지막에 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미 우리의 입맛은 산업화된 음식에 익숙해 있어요. 백종원씨가 만든 레시피가 아니라 사회에서 통용된 레시피죠. 모두 그걸 감추며 쉬쉬했는데, 백종원씨는 그걸 자신의 캐릭터로 가져온 거죠. 어쩌면 솔직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산업화된 음식이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저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이유로 몸에 안 좋은 설탕과 조미료를 듬뿍 넣는 조리법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분명 문제가 큽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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