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경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꼭 정답은 아니다

김원장 2016. 12. 2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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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그런데 당신이 그 최대가 아니고 소수라면?

☞ 성공예감 똑똑한경제 다시듣기(2016.12.09)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집니다. 1억 원의 부가가치(가치를 새로 만들었다는 뜻이다/Added Value)를 과거 100명이 만들었다면, 이제 70명이 만들 수 있습니다.

당장 은행업종은 이 30명을 내보내려고 합니다. 이제 그 부는 이 효율적 시스템을 만든 기업이나 주주 또는 살아남은 근로자에게 더 쏠리게 됩니다. 시장의 부가가치는 그대로인데, 또는 더 높아지는데, 그럼 일자리를 잃은 나머지 30명의 근로자들은 어디로 갈까요? 시장경제에 닥친 큰 고민거리입니다.

시장경제에서 핵심은 '효율성(efficiency)입니다. 시장경제는 효과와 능률을 믿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일상 대부분의 행동이 효율적인 결과를 위한 것입니다.

기업은 100원을 투자해서 150원을 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근로자는 100원의 임금을 받고 150원의 생산성을 보여줘야합니다. 학생은 1시간 공부해서 2시간 반의 학습효과를 기대합니다. 정부 역시 효율적인 국가운영이 지상과제입니다.효율적인게 중요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은 '효율로 시작해 효율로 끝'납니다.

여기서 효율이란 일반적으로 ‘투입한 자본이나 노력(Cost)대비해서, 얼마나 혜택(Benefit)이나 효과, 수익이 나오느냐’입니다. 이 익숙한 이론은 벤덤(Jeremy Bentham)이나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같은 이론가들을 통해 확인되고 강화돼 왔습니다. 그것이 공리주의(功利主義)입니다. 다수가 좋다면 그것은 ‘善’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항상 정답일까?

[기독교인 검투사와 사자가 죽을 때까지 싸운다. 검투사가 느끼는 공포와 고통 불행의 값은 100점이다. 수많은 관객이 이 싸움을 지켜본다. 보고 소리지르고 즐긴다. 수만 명의 관객이 느끼는 희열과 즐거움은 모두 합쳐 1만 점이다. 다수의 행복에 비해 이 기독교인의 고통은 1/100 수준이다. 이제 대중은 기꺼이 이 검투사와 기독교인 검투사와의 사투를 즐길 것인가?]

그럼 우리 사회는 이 효율성이 높은 검투사 놀이를 매주 열까요? 장사도 잘되고 아마 수익성도 높을 텐데요. 이처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항상 ‘절대 반지’가 될 수 는 없습니다. 이유는 일단 1) 그 손실과 효용의 점수를 정확히 측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느 개발회사 사장님은 1억 원의 이익을 얻고, 작은 시골마을 학생들은 천만 원의 손해를 보는 사업이 있습니다. 최대의 행복을 위해 이 학교를 폐교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시골학교의 가치를 ‘어떻게 계산할까요?’ 그 학교에서 만약 미래의 스티브 잡스나 이세돌이 나오면 어떡하죠?

2) 그 최대다수의 수익을 계산할 때 , 자칫 ‘비도덕적 요소’가 개입할 수 있습니다. A라는 선택이 B라는 선택보다 다수의 선택이고 최선의 선택일 수 있지만, 만약 부도덕한 가치가 개입한다면요?

[‘10명의 친구가 A라는 식당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단 1명의 친구가 굳이 B식당을 가자고 고집한다. 우리는 당연히 10명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효과적이고 능률적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합리적인 시장참여‘다. 그런데 알고보니 A라는 식당은 탈세를 해서 가격이 저렴하다. 이 사실을 확인한 친구 중 7명은 여전히 A식당을, 나머지 4명의 친구는 B식당을 가자고 주장한다. 이들은 어떤 식당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선택인가?]

계산이 어렵습니다. 게다가 부도덕이라는 측정 불가능한 가치가 끼어듭니다.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지만, 인간 유전자에 동물 배아 주입하는 실험’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또 하나 3)효율적인 생산을 하더라도 분배가 잘 이뤄지면 좋은데, 이게 또 쉽지 않습니다. 인류가 누진세 등 수많은 장치를 개발했지만,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집니다. 그래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꼭 정답은 아닙니다. 정답일 때가 많을 뿐이죠. 인류는 얼마나 다수의 행복을 우선해 왔을까?

[1798년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인구론을 발표한다. 먼 훗날 인구과잉으로 식량부족이 필연시 되고, 인간은 빈곤과 죄악에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14세기 전 유럽 인구의 절반을 몰살한 페스트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오히려 부를 축적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식량 증산이 어렵던 시기, 그의 주장은 영국의 지배계층을 공포로 몰고 갔다. 영국의회는 결국 가난한 농민들을 위한 복지예산을 크게 줄인다. 소수의 가난한 계층을 희생해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결국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 성공예감 똑똑한경제 다시듣기(2016.12.20)

존 롤스(John Rawls). 정의가 무엇인가를 마이클 샌덜보다 30년 먼저 고민한 하버드대 교수


존 롤스는 하버드대 교수, 미국의 정치 철학자입니다. 그런 그가 경제학자들에게 관심을 모은 것은 지난 71년 정의론이라는 책을 펴내면서부터입니다.


△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회주의고, 능력에 따라 분배되면 자유주의 국가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그렇게 정의롭지 않다. △ 정의로운 사회에서 동등한 시민적 자유는 보장된 것이다. 정의에 의해 보장된 권리들은 그 어떤 정치적 거래나 사회적 이득에도 좌우돼서는 안 된다. △ 불평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우리사회 운으로 행운을 잡은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운이 없는 사람들,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혜택을 줘야 한다]

어떤 결정에 10명이 찬성하고 2명이 반대하면, 10명의 결정에 찬성하는 것을 합리적, 민주적이라는 기존의 정의와는 크게 다릅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걸 믿었습니다. 불과 200년 전 인류는 다수에게 이익이 되니까 아동의 하루 14시간 노동을 허가했었습니다. 공장주는 물론 아이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믿었습니다(영국에서는 1819년에야 9살 이하 아동들의 노동이 금지됐다). 롤스는 공리주의의 이런 단점을 배격합니다.

롤스의 정의론은 이런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창조적 능력을 갖은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경쟁은 공정해야 하고 능력이 뒤처지는 사람도 사회적으로 배려해야 한다는 거죠. 결국 가난한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이 가장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는 주장입니다.

롤스의 ‘정의론’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시장경제가 지나치게 다수의 이익을 신봉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사회로 이어집니다. 사회적 격차가 커지면서 그의 반론은 더 설득력을 갖습니다. 더 주목받습니다. 은행원 100명 중 책상을 빼야하는 30명에 대한 해법도 어쩌면 여기 숨어있을지 모릅니다.

다수의 일자리 유지를 위해 소수가 직장을 떠나도, 기술의 발전으로 오히려 더 높은 부가가치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렇게 만들어진 부가가치가 직장을 잃은 동료에게까지 이전되지 않는다면 그 시장은 썩 '정의'롭지 못합니다. 4차 산업혁명의 고용시장에 롤스의 정의론을 떠올리는 학자들이 늘어납니다. 40여년 전 한 정치철학자가 던진 질문은 지금 더 울림이 있어보입니다.

김원장기자 (kim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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