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경의 베이징 리포트]중국판 '살인의 추억' 옥수수밭 살인사건, 21년만의 무죄

베이징|박은경 특파원 2016. 12. 2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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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1년전 강간 살인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녜수빈의 모습.

“공장에 난방 설비를 설치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그날 날씨가 정말 더웠어요. 멀리서 푸른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서른 살 정도 되는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게 보였죠. 옥수수 밭에 몸을 숨기고 그 여자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가까이 왔을 때 뛰쳐나가 자전거를 막아섰어요.”

2005년 살인·성폭행 혐의로 허난(河南)성 공안국에 체포된 38세 왕수진은 자신의 여죄를 자백했다. 1982년 성폭행으로 3년형을 받고 복역한 그는 이후 6명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중 하나가 1994년 여름에 일어난 옥수수밭 살인사건이었다. 10년이 지난 일이었지만 그의 ‘살인의 추억’은 매우 뚜렷했다.

왕수진의 자백은 옥수수밭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누명을 쓴 청년이 사형당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야 나왔다. 1994년 9월 21살 청년 녜수빈은 일하던 전기화학공장 기숙사에서 허베이(河北)성 공안국 경찰에 끌려갔다. 한 달 전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던 인근 공장 여공을 옥수수밭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는 혐의였다. 이듬해 3월 1심 재판, 다음달 열린 최종심에서 사형이 선고됐고, 선고 이틀 만에 사행이 집행됐다. 이것이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오심 재판으로 꼽히는 녜수빈 사건의 시작이다.

왕수진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녜수빈의 억울함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2007년 허난성 법원은 녜수빈 사건 혐의를 제외하고 3명의 살해 혐의만 적용해 왕수진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왕수진은 4건의 살인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자신의 자백이 사회에 기여한 점을 인정해달라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3년 녜수빈 사건을 재심한 허베이성 고급인민법원도 왕수진이 옥수수밭 살인 사건의 진범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왕수진의 기억이 명확하지 않으며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였다. 길고 긴 법정 싸움 끝에 이달 2일 중국 최고인민법원이 녜수빈에 대한 무죄를 선고했다. 사형이 집행된 지 21년이 지난 후였다.

녜수빈의 변호인들은 기소장과 심리기록 등에서 녜수빈의 서명이 위조된 사실을 발견했고 피해여성의 시신 옆에서 발견된 열쇠를 녜수빈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왕수진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녜수빈은 구타 등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거짓자백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영 매체들은 녜수빈의 무죄가 밝혀진 것은 “법치주의의 승리”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사건의 전말은 법치가 아니라 두 번의 행운 덕분에 밝혀질 수 있었다. 첫번째 행운은 2014년 10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의법치국(依法治國, 법에 의한 통치)를 선언하고 사법제도 수술에 착수하면서 녜수빈 사건은 다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두번째 행운은 허베이성 전 정법위원회 서기인 장위에(張越)가 지난 8월 뇌물 수수혐의로 낙마한 일이다. 정법위원회는 공안·사법·정보를 총괄하는 중국 공산당의 독특한 조직으로 당 중앙위원회와 함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사법과 공안을 함께 다스리는 상급기관의 체면 때문에 재판정에서 공안의 잘못된 수사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2007년부터 허베이성 정법위가 특별팀을 꾸려 옥수수밭 살인 사건을 조사했지만 어떤 후속 결과도 발표하지 않았다. 수사 과정에서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받아낸 공안의 잘못은 곧 정법위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법위 수장인 장위에가 낙마하면서 사법당국이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밑거름이 만들어졌다.

녜수빈의 어머니는 무죄 판결이 난 후 “공정한 법률과 왕수진의 양심에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14일 허베이성 고급인민법원에 1391만 위안(약 23억6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또 다른 운이 따라 법률이 공정하게 작동할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설사 배상을 받는다고 해도 21년간의 쓰라린 인생은 보상받을 수 없고 죽은 아들도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베이징|박은경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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