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을 '평등문화침해사건'으로 표현한 녹색당..피해자 탈당, 가해자 여전히 활동

이재덕 기자 2016. 11. 2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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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젠더·성소수자·페미니즘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던 녹색당이 당내 성폭력 사건에 부적절하게 대응한 것으로 확인됐다. 녹색당 하부조직인 청년녹색당은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을 평등문화 침해사건으로 지칭했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는 2차 피해를 겪고 당을 떠났다. 반면 가해자는 계속 조직에 남아 페미니즘 관련 글을 기고해 왔다.

24일 녹색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청년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인 가해자 ㄱ씨와 청년녹색당 활동가인 피해자 ㄴ씨는 연인사이였다. 피해자 ㄴ씨는 지난 6월25일 청년녹색당 운영위원회에 ㄱ씨에게 ‘데이트 폭력’, ‘원치않는 성관계’ 등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가해자 ㄱ씨는 청년녹색당 페이스북에 “임기 중에 평등문화 침해사건에 연루됐다. 녹색당의 강령에 명시된 가치들을 어겼으며, 이로 인해 사건에 연루된 피해당원님께 큰 상처를 드렸고 녹색당 및 청년녹색당의 명예도 심각히 훼손했다”며 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하지만 ㄱ씨는 해당 사건을 ‘성폭행 사건’이 아닌 ‘평등문화침해 사건’으로 지칭하고, 글의 제목도 ‘사과문’이 아닌, ‘사퇴 경위서’로 적었다.

출처 : 청년녹색당 페이스북

청년녹색당 운영위원회 역시 이번 사건을 성폭력이 아닌 평등문화 침해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운영위원회는 사건 대응기구를 조직하고 가해자 ㄱ씨와 피해자 ㄴ씨를 분리조치 시켰다. 하지만 사건 대응기구는 가해자의 지인인 내부 인사 3인으로 구성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시키면서 피해자를 보살피고 입장을 대변할 대리인을 지정하지 않았다. 운영위원회는 7월9일 낸 ‘평등문화침해사건 경과와 운영위원회의 입장’이란 글에서 “운영위와 대응기구에 대한 어떠한 요구들은 부당함이 있지는 않은가”라고 썼다. 피해자가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출처: 청년녹색당 홈페이지

청년녹색당에서 활발히 활동을 해온 피해자를 운영위원장인 가해자와 분리시킨 조치는 피해자를 오히려 고립시켰다. ㄴ씨는 최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당시) 가해자 측근들인 대변인과 대책위가 무서웠고, 대책위도 가해자도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병실과 자취방에 혼자 고립되는 그 느낌이 무서웠다. 혹여나 ‘걸레’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강간 사실을 털어놓으면서도 너무나 공포스러웠다”고 밝혔다. 당시 ㄴ씨는 자살까지 시도했지만, 청년녹색당 운영위원회는 이를 피해자의 ‘자살 위협’ 이라며 비난했다.

피해자의 글

ㄴ씨가 SNS에 청년녹색당과 가해자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자 청년녹색당의 일부 구성원들은 “비난이 과도하다”며 피해자 ㄴ씨의 사과를 요구했다. 청년녹색당 측은 피해자인 ㄴ씨의 사과도 받아냈다. 결국 ㄴ씨는 녹색당을 떠났다. 반면 위원장직을 사퇴한 가해자 ㄱ씨는 “내가 탈당을 하면 가해자로서 처벌을 받지 않게 된다. 당규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당원을 유지했다. 탈당한 피해자 ㄴ씨는 녹색당에 ㄱ씨의 성폭력 행위에 대한 제소를 포기했고 가해자 ㄱ씨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ㄱ씨는 지난달 녹색당의 민중총궐기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언론사에 페미니즘 관련 글을 수차례 기고하기도 했다.

청년녹색당의 피해자 ㄴ씨에 대한 “자살 위협”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상위조직인 녹색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녹색당은 지난 21일 ‘2016년 6월 호소된 청년녹색당 전 운영위원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 관련 전국당 운영위원장단의 입장’을 내고 “사건이 공론화 된 후 당의 부적절한 대처로 인해 피해자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며 “피해자 분께 말로 다할 수 없는 사죄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문제가 불거진 지 5개월이 지나서야 해당 사건을 ‘성폭력 사건’으로 규정하고 입장문을 발표한 것이다. 2차 가해자인 청년녹색당도 사과문을 냈다.

▶[입장문] 2016년 6월 호소된 청년녹색당 전 운영위원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 관련 전국당 운영위원장단의 입장

출처: 녹색당 페이스북
출처: 청년녹색당 페이스북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사건 발생 직후 녹색당이 전국당 차원에서 대책위를 꾸리고,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당시 당내에서는 청년녹색당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에 이를 들여다볼 생각을 못했다.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당의 부적절한 대응은 변명이 될 수 없다. 모든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고 말했다.

녹색당의 한 간부는 “청년녹색당에서 일어난 일이라 중앙 차원에서는 사건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당시 만해도 ‘데이트 폭력’ 수준으로 봤다”며 “청년 녹색당 차원에서 일단락이 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앞서 녹색당은 1년 전 ‘탈핵운동’을 진행하면서 성폭력 사건을 겪었다. 당시 녹색당 공동운영위원단은 “초기 대응이 미흡했고, 전국당이 발빠른 대응을 못해 피해자들이 더 깊은 상처를 받았다”며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1년도 못 가 녹색당 하부조직에서 유사한 일이 또 벌어졌다. 일부 녹색당원들은 전국당과 청년녹색당이 사건을 덮기에 급급하다며 탈당을 추진 중이다. 한 당원은 페이스북에 “여성,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정당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고 이로 인해 당이 추구하던 가치는 크게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녹색당은 24일 청년녹색당 운영위원을 전원 사퇴시키고 징계 절차를 밟기로 했다.

출처: 녹색당 페이스북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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