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생태학, 한국에 뿌리 내리게..차기 원장도 꼭 학자가 맡았으면"

최병준 문화에디터·박주연 기자 2016. 11. 2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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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퇴임 앞둔 최재천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에게 듣는다

최재천 원장이 지난 17일 서천국립생태원 어린이 생태글방에서 벌집 모양의 서가에 들어가 책 읽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 원장은 “어린이들이 관람 후 궁금한 것들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전시실 앞 로비에 생태글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처음엔 이랬다. “갯벌 매립해서 공장이나 짓지 생태원은 무슨 생태원이야!”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거셌다. 군수도 앞장서 반대했다. 그런데 지금은 랜드마크다.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이 내달이면 개원 3년을 맞는다. 연간 100만명이 찾는다. 초대 원장은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62)다. 최 원장은 개원 전부터 생태원 설립에 관여했다.

지난 17일 국립생태원에서 최 원장을 만났다. 퇴임을 앞둔 그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1분도 못 쉰 날이 허다하다”고 했다.

- 2013년 10월 부임했으니 임기 3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서울에선 저녁 약속을 일절 안 하는 사람으로 유명해요. 여기 내려와선 관사에 일찍 들어가본 적이 없어요. 강연 요청이 오면 서천에 내려오면 해주겠다고 했죠. 관람객 유치해야 하니까. 1주일에 두서너 번씩 강연(3년 동안 238회)했죠. 김영란법이 생기기 전인 2014년부터 이미 무료로.”

- 주민들은 생태원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을 텐데요.

“개장 첫해 주민들이 쳐들어왔어요. 우린 땅 내줬는데, 생태원이 우리에게 뭘 해줄 거냐며 삿대질을 하고 소리를 질러댔죠. 2년 연속 100만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몰려오니까 주민들이 달라졌어요. 마을에 내려가면 먼저 다가와서 손을 붙잡고 원장님 떠나면 안된다고 해요. 농담이지만 (선거에) 출마하면 뽑힐 겁니다.”

최 원장은 생태원 설립에 “운명적으로 얽혔다”고 했다. 스토리는 이렇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이치범 환경부 장관이 몇 사람을 불러 환경정책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때 딱 하나 부탁했단다. “환경의 기초과학인 생태학이 한국은 너무 약하니 국립생태학연구소 하나 만들어주세요.” 환경부는 최 원장을 찾아왔고 2008년 결국 총괄기획을 맡았다.

- 2013년 10월 초대 원장으로 내려왔을 때 대학교수가 잘 운영하겠느냐는 우려도 있었어요.

“한 번도 책상에 앉아 업무 보고를 받거나 결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늘 직원들과 관람객 눈높이에 맞춰서 일하며 군림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했죠. 2주에 한 번씩 원장이 직접 바비큐를 구우며 직원들과 대화하는 ‘원격바’도 운영했죠. 노조 사무실도 불쑥 찾아가고. ‘내가 제일 열심히 일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실제 최 원장이 무릎을 꿇고 관람하러 온 어린이와 눈 맞추며 대화하는 사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회자됐다.

“기관장은 대차대조표 정도는 볼 수 있어야 한다기에 회계학 책도 사서 공부했습니다. 직원들에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않았지만 매일 밤 서류를 읽고 글도 고쳐주곤 했죠. 그랬더니 건성으로 일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뒤로 숨지도 않았다고 했다. 국회의원을 만나 읍소하고, 기획재정부나 환경부에 달려가 매달리고, 지역 주민들 달래는 것도 직원들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직접 달려갔단다.

초대 원장이니 비전과 핵심과제를 만드는 것도 모두 최 원장의 몫이었다. ‘생명사랑, 다양성, 창발, 멋.’ 이 네 가지가 그가 내세우는 생태원의 핵심 가치다.

최 원장은 “국립생태원처럼 짧고 임팩트 있는 이름이 한국에 없다”고 했다.

“돌아가신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제게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환경부를 생태부로 하면 좋을 것이라고. 환경은 둘러싸고 있는 주변이라는 거죠. 이름이 그러니까 학자들이 생물과 인간을 쏙 빼놓고 강에 가서 BOD(생화학적 산소요구량) 측정 같은 일만 한다고. 대신 환경과 생물의 관계인 생태를 연구해야 한다고. 소설만 쓰시던 분이 기막히게 정곡을 찌르셨죠.”

- 생태원이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한국은 그동안 개발문화 국가였어요. 자연을 변형시켜야 한다는 사람이 더 당당하고 목소리가 더 컸어요. 그래서 변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드러눕거나 단식까지 하죠. 그런 문화가 계속된다면 이 좁은 땅덩어리의 미래는 뻔합니다. 생태문화가 중심이 돼야 합니다.”그러면서 이런 예를 들었다. “지금 어린아이들이 아니라 100년 후 태어날 미래세대에게 잘살게 해주기 위해 우리가 여기를 고치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본다면 답은 뻔하죠. ‘놔두세요.’ 해서 제발 건드리지 말자는 것, 생태를 그대로 보전하는 게 ‘룰’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인터넷에 ‘생태문화’를 치면 3년 전엔 “뜨는 거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많다”고 했다.

- 정부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생태원과 낙동강생물자원관을 합치려고 합니다.

“학문 분류상으로 보면 생물자원관은 분류학입니다. 생태학은 그 분류된 생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찰하고 연구하는 분야죠. 엄밀히 말하면 다릅니다. 절대 합쳐서 안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구조에서는 통합이 결코 득이 될 수 없습니다. 합치라고 하니까 진행은 하지만….”

- 초대 원장으로서 생태원이 어떻게 가야 한다고 보나요.

“인천 국립생물자원관도 초대 원장은 서울대 교수였지만 이후에는 행정관료가 왔습니다. 틀을 잡으려면 2대, 3대 원장까지는 꼬장꼬장한 학자들이 하는 게 좋습니다. 생태학은 열악한 학문인데 연구기관이 생겨서 한국에도 생태학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나 학계의 기대가 큽니다. 행정관료가 오면 자율적 연구보다는 국가정책을 뒷받침하는 연구를 하라고 하겠죠. 그럼 학문의 발전이 저해돼요.”

국립생태원은 연구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네이처’를 비롯해 해외의 저명한 학술지에 72건, 국내 유명 학술지에 78건의 연구 논문을 게재했다.

전국 무인도에서 자연환경조사 중 전 세계에서 100개체 미만만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세계적 멸종위기종 뿔제비갈매기를 최초로 확인했다.

최 원장은 또 “전시가 생태원의 간판이 될 수는 없다. 연구가 죽으면 전시도 죽는다. 연구 기본이 안된 전시는 학예회 수준”이라고 했다.

- 경영을 매우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한 번 더 할 생각은 없나요.

“명색이 석좌교수인데 3년 동안 휴직하고 서천에 내려온다고 했을 때, 이화여대에서 허락을 안 해줘 환경부가 한 달 동안 발표를 못했어요. 전 대학으로 가야죠.”

최 원장은 “학자들은 경영능력이 없다는 편견이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며 “꼭 훌륭한 학자가 맡아 생태학이 뿌리를 내리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농사 짓는 잎꾼개미’ 아시아 첫 전시“1984년 코스타리카에서 잎꾼개미를 발견했어요. 감동했죠. 최초로 농경문화를 만든 것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개미입니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잎꾼개미를 들여오는 데 통관 때문에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관리를 잘못하면 황소개구리처럼 생태계에 교란을 일으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최 원장의 스승은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로 개미 연구의 권위자인 에드워드 윌슨 박사다. 하버드대 시절 은사다. 그래서 생태원에 국제 개미연구전시회 박람회의 일환으로 ‘개미과학기지로 떠나는 개미세계탐험전’을 열고, 불개미, 곰개미 등 국내 개미 9종과 지난 2월 아시아 최초로 잎꾼개미를 들여왔다. 6월부터는 호주푸른베짜기개미도 가져와 전시하고 있다. 세계 최초다.
지난 6월 열린 국립생태원 포토에세이 시상식에서 최재천 원장이 어린이 수상자에게 상장을 전달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잎꾼개미는 5000만년 전에 농사를 지은 것으로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인류의 존재조차 없던 때에 이미 잎꾼개미가 나뭇잎을 잘라 내어 개미굴로 끌고 들어와 버섯 재배를 하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다.



국립생태원은 에코리움 전시실 로비에 어린이 생태글방을 만들어놓았다. 벌집 모양으로 꿀벌처럼 들어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 아이들이 전시실에서 본 것을 책에서 찾아보도록 하겠다는 최 원장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최병준 문화에디터·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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